
국내 은행업은 장기근속자 비중이 높고 기본급의 연공급 특성으로 임금의 하방경직성이 높다. 때문에 은행들이 임금부담을 덜기 위해 명예퇴직제도를 내세운 조기퇴직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면서 숙련된 우수인력들이 조기에 빠져나가는 일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고령 근로자들의 임금체계 개편을 통해 임금구조를 합리화하고 이들이 수행할 수 있는 직무를 적극 개발해 공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한국금융연구원은 5일 오후 서울 중구 YWCA에서 ‘은행의 바람직한 성과주의 확산 방안’ 세미나를 개최했다.
◇ 중고령 근로자 위한 직무 개발해야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날 발표를 통해 국내 은행들의 비용관리 전략으로 비정규직 비율이 타 산업에 비해 높고 신규채용자 비율은 낮은 반면 근속연수는 길고 임금수준이 높은 점을 지적했다.
지난해 산업전체 비정규직 비율은 32.4%인 반면 금융업은 42.1%에 달했다. 신규채용자 비율에서도 은행(8%)이 산업전체(14%)에 비해 고용창출 측면에서 사회적 기여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10년 이상 근속자수 비중은 은행이 47.8%로 산업전체(31.6%)에 비해 훨씬 높았다. 임금도 전 산업의 임금수준을 100으로 봤을 때 금융업은 2006년 129.7%에서 2014년 139.4%로 전체산업 평균에 비해 약 40% 정도 높은 수준이었다. 권 교수는 “연공형 호봉제가 지배적인 은행업의 임금체계는 임금의 하방경직성이 강하고 변동성이 약해 급변하는 시장환경 대응에 어려움이 있다”며 “현행 연공형 임금체계를 직무와 성과 중심 임금체계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중고령 근로자들의 고용안정 기회와 청년층 고용여력을 확대할 수 있고 비정규직 최소화에 순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최근 임금피크제 도입에 있어 근로자들의 성과평가 결과와 연동해 적용여부를 결정하기로 한 신한은행의 사례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기업이 중고령 근로자들이 수행할 수 있는 직무를 적극적으로 개발해 공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현재의 직무구조로는 정년을 연장하더라도 할 수 있는 업무가 매우 제한적이고 대부분의 고령근로자들이 후선업무에 집중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조기퇴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일으킨다.
따라서 직무 개발 및 할당→직무와 임금 연계강화→숙련 인력 활용 강화→중고령 근로자 노동생산성 향상→은행 경쟁력 강화 등 선순환의 인적자원 관리체계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권 교수는 제안했다.
◇ 직무급 비중 확대해 임금경직성 축소해야
서정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은행의 낮은 수익성 및 경비 탄력성이 외부충격에 대한 완충력 및 대외경쟁력 하락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서 선임연구위원은 은행 성과체계가 개인이 아닌 영업점 등 조직 중심으로 이루어지다보니 저성과자를 가려내기 어려워 이들에게 고임금을 지불하는 구조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또한 인적자원의 고령화 추세 역시 인건비 상승요인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비대면 금융거래 비중 확대로 인력조정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 선임연구위원은 조사 결과 현재 은행들이 성과연동 보상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이에 대한 만족도도 비교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다만 경영관리부서나 관리자급 직원 위주로 이루어지면서 일부 성과 낮은 부점장 급여가 부하직원보다 적은 역전현상이 발생해 부점장 발령 기피현상이 일어나거나 영업점 간 내부경쟁이 과열되는 등 부작용도 있다고 지적했다. 기본급에 대한 유연성 없이 성과급 비중만 늘릴 경우 오히려 추가재원이 소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서 선임연구위원은 “고령·저성과자에 대한 관리체계 개선과 직무급에 대한 직원들의 인식전환이 시급하다”며 “우선 직무급 비중을 확대해 임금 경직성을 축소하고 실질 근속기간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외부충격에 대한 은행의 완충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성과연봉이 은행 전체실적에 따라 일정부분 연동되도록 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소요자본 대비 성과를 핵심 KPI로
JP모건체이스, BOA 등 글로벌 선도 은행들의 경우 전문 직군제를 시행해 직군 및 직급의 특성에 따라 채용, 평가, 보상체계가 다르다. 인사 권한 역시 각 직군에 둔다.
따라서 동일 직급이라도 각 직군별로 보상체계가 달라 IB업무 담당 직원이 고객서비스 담당 직원에 비해 수십 배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 서 선임연구원은 성과평가 시 사업단위 및 거래의 리스크를 반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소요자본 대비 성과를 핵심 KIP로 하여 RAROC(Risk-adjusted Return on Capital) 지표를 활용하는 것이다. RAROC=수익-예상손실-제비용/경제적 자본이다. 이를 성과평가에 반영할 경우 업무성격에 따른 성과평가의 불공정성 시비가 줄고 사업단위, 거래 별로 최소수익률(hurdle rate) 운영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
또한 성과평가를 할 때 승진대상자 등에 대해 높은 고과를 부여하지 않도록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노사 간의 적극적 대화 채널 구축 및 협의도 요구된다.
김효원 기자 hyowon123@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