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당국의 체크카드 활성화 정책에 따라, 우선적으로 체크카드 사업에 주력할 방침이다. 다만 카드사업 분사를 앞둔 일부 겸영 카드사들이 체크카드 활성화 정책을 명목으로 시장 선점을 꾀하고 있어 또다시 과당경쟁이 촉발될까 걱정된다.” A카드사 전략기획담당 본부장
내년부터 체크카드를 많이 쓰면 개인신용등급이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이 체크카드 사용 실적을 개인신용평가에 가점 요인으로 반영하도록 제도 개선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정책에 따라 카드사들은 체크카드 사업 강화에 적극 나설 계획인 것으로 전해져 귀추가 주목된다.
◇ 내년부터 체크카드 많이 쓸수록 신용도 오른다
금융위원회는 체크카드 이용 실적을 개인 신용평가에 반영하는 내용을 담은 ‘신용평가체계 개선안’을 이달 말 발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금융위 이해선 중소서민금융정책관은 “체크카드 이용 실적이나 기간, 액수에 따라 신용평가에 어느 정도 가점을 줄지에 대해 기준안을 마련하고 있다”면서 “이르면 내년 초 시행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동안 체크카드 이용 실적은 신용거래로 인정되지 않아 신용등급에 반영되지 않았다. 체크카드는 신용카드와 달리 자신이 보유한 계좌 내의 예금으로 결제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가계부채 연착륙의 일환으로 체크카드 활성화를 추진하면서, 금융위는 개인신용평가사와 함께 체크카드 사용 실적을 신용도에 반영하는 내용을 논의해왔다. KCB, NICE신용평가정보 등 개인신용평가사들은 금융위가 기준안을 발표하면 그에 따른 시스템을 개발해 최대한 서둘러 도입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신용카드를 쓰지 않는 고객도 체크카드 사용만으로 좋은 신용등급을 부여받을 수 있게 된다.
◇ 체크카드 활성화 정책에 맞춰 경쟁 본격화
이처럼 금융당국의 체크카드 활성화 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카드사들은 체크카드 시장에 활기를 불어 넣기 시작했다. 특히 카드사업 분사를 추진 중인 우리금융은 정부의 체크카드 활성화 정책에 착안, 체크카드 시장을 활성화 하겠다는 명목으로 카드 분사에 속도를 냈다. 분사 승인을 받으면 체크카드에 신용카드 기능을 접목시킨 하이브리드카드도 출시할 계획이다.
KDB산업은행도 연말까지 독자 체크카드를 출시할 예정이다. 이 은행은 그동안 롯데카드, 현대카드와 협약을 맺고 제휴 체크카드를 발급해 왔지만, 개인고객 유치를 위해 연말에는 독자적으로 카드를 발급한다는 방침이다. 겸영 카드사 뿐만 아니라 전업 카드사들도 은행들과 손잡고 체크카드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삼성카드는 KB국민은행과 포괄적 양해각서(MOU)를 맺고 체크카드 출시를 준비 중이다. 삼성카드 관계자는 “국민은행에서 발급받고 출입금이 가능한 체크카드를 출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 롯데카드는 전업 카드사 업계 최초로 대형 시중은행과 손잡고 입출금이 가능한 ‘하나은행 롯데 포인트플러스 그란데 체크카드’를 선보였다. 전월실적 제한 없이 혜택을 제공하고, 가맹점과 업종 구분 없이 결제금액의 0.5%를 롯데포인트로 적립해주면서 호응을 얻고 있다. 체크카드 1위로 기존 강자인 KB국민카드의 ‘KB노리카드’는 올해만 170만좌를 팔아치우며 345만좌를 돌파했다.
KB국민카드 관계자는 “앞으로도 이 카드만큼 혜택을 담기 어려울 것”이라며 “타사들이 경쟁적으로 체크카드를 출시하고 있지만, 시장 판도에 위협적인 요소는 아니다”고 말했다.
여기에 KB국민카드는 오는 24일부터 체크카드에 소액신용결제서비스를 도입할 수 있도록 약관을 변경한다는 안내메일을 최근 고객들에게 보냈다. 체크카드와 연계된 계좌에 잔액이 없으면, 본인에게 부여된 한도만큼의 소액신용결제가 가능하다는 것이 약관변경의 주된 요지다. 단, 소액신용결제 한도는 최대 월 30만원으로 제한했다. KB국민카드 외의 타 카드사들도 이와 같은 내용의 약관변경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체크카드에 신용결제 기능을 부과하는 것은 금융당국이 신용카드 발급기준을 대폭 상향한 것과 관련된다. 신용카드 발급이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만큼, 아예 신용카드 발급이 어려운 고객들을 위한 최소한의 서비스다.
◇ 신용카드 버금가는 체크카드 수수료율논란도
정부가 신용카드 대신 체크카드 사용을 적극 장려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카드사들의 체크카드 수수료가 너무 높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국이나 다른 국가들과 비교할 경우 최대 8배나 높다는 것. 일단 신한카드, KB국민카드, 삼성카드, 현대카드, 롯데카드, BC카드, 하나SK카드 등 대형 카드사들의 체크카드 평균 수수료율은 영세가맹점이 1.0%, 일반가맹점이 1.5∼1.9%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관리비용 등이 더 들어가는 신용카드 수수료와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특히 일부 업종에서는 신용카드와 체크카드의 수수료율 차이가 거의 없다. KB국민카드가 유류판매 업종에 적용하는 수수료율이 신용카드는 2.0%이고, 체크카드는 1.9%이다. 또 백화점과 슈퍼마켓에 대한 수수료율도 신용카드는 2.1%와 2.0%로, 체크카드는 1.7%로 부과하고 있다. 이 밖에 유통업과 상품권에 대한 수수료율이 신용카드는 1.85%, 체크카드는 1.75% 수준이다. 다른 카드사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에 카드소비자 단체들은 신용카드는 카드사가 미리 돈을 내고 나중에 돌려받는 구조로 관리비용 등이 필요하지만 체크카드는 이런 비용이 없다며 수수료를 낮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부가서비스도 신용카드에 비해 많지 않아 수수료를 높게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외국과 비교해서 체크카드 수수료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수수료율이 신용카드는 2.0%인 데 비해 체크카드는 0.7%에 불과하다. 또 영국(신용카드 1.65%, 체크카드 0.3%)과 독일(1.75%, 0.3%)도 수수료율 격차가 크다. 반면 한국은 올해 1월 기준으로 신용카드(1.93%)와 체크카드(1.23%) 평균 수수료율이 비슷하다.
하지만 이에 대해 카드업계는 외국의 카드업계 시장 구조가 우리와 달라 일률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반박한다. 선진국은 카드 발급사와 매입사가 구분된 구조이지만 한국은 발급사와 매입사가 통합된 형태라는 것이다.
최현 여신금융협회 카드부장은 “외국에서는 카드사 회원들에게서 계좌관리 수수료를 별도로 받는 등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비용이 있고 국내 카드사들은 결제대행사(VAN) 관련 비용 등을 추가로 물어야 된다”며 “이런 사항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국내 체크카드 수수료가 결코 높은 수준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기업계 카드사 한 관계자 역시 “체크카드의 수수료율이 높다기보다 신용카드의 수수료율이 낮은 것”이라며 “체크카드의 경우 오히려 은행에 0.2~0.3%를 계좌이용 수수료로 내고, 1만원 이하 소액결제의 경우 역마진이 나기 때문에 최대한 내릴 수 있는 만큼 내렸다”고 말했다.
정부도 카드업계의 주장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중소금융과장은 “해외와 비교하기에 시장 구조가 다르고, 지난해 3월 체크카드 수수료율을 인하해 합리적인 수준으로 조정했다”며 “국내 카드사들이 부가서비스를 많이 주는 만큼 수수료율을 낮추려면 소비자들이 부가서비스 혜택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체크카드 시장 급성장 ‘왜’
한편 국내 경기침체 장기화와 정부의 활성화 정책 등에 기인해 체크카드 이용실적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례로 올 들어 지난 3분기까지 체크카드 이용액은 61조 2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0조 2000억원)보다 22.0% 늘어났다. 〈표 참조〉
반면 전체 신용카드 이용액은 415조 1000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385조 4000억원) 7.7% 성장하는 데 그쳤다. 이처럼 체크카드 시장이 급성장한 배경에는 우선 경기 불황으로 주머니 사정이 팍팍해진 서민들의 소비 성향 변화가 우선 꼽힌다. 무분별한 소비를 유발하는 신용카드 보다는 본인의 은행 계좌에 들어있는 돈의 범위 내에서만 소비를 할 수 있는 체크카드를 선호하는 것이다.
여기에 가계 부채 축소를 위한 정부의 체크카드 활성화 정책이 고객들의 이용을 부추기고 있다. 정부는 지난 8월 세제 개편안 발표를 통해 신용카드의 소득공제율은 기존 20%에서 15%로 낮게 적용하는 반면, 체크카드는 30%로 소득공제율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특히 올 초 금융위원회에서 전업계 카드사의 은행 계좌 이용 수수료율을 기존 0.5%에서 0.2%이하 수준으로 일괄 인하함으로써 체크카드 시장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춘 것도 영향을 미쳤다.
〈 체크카드 이용실적 및 증가율 추이 〉
(단위 : 조원, %, %p)
* 체크카드 이용실적 / (체크카드 이용실적 + 신용판매 이용실적)
(자료 : 금융감독원)
김의석 기자 eskim@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