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 경영컨설팅팀 생활도 벌써 3년 반, 좋게 말하면 신념이 넘쳐나고 나쁘게 말하면 고집쟁이들이기 일쑤인 중소기업인들 다루는 노하우가 몸에 쏙 배었다.
안민제 차장은 “화장실이 기업생산성에 얼마나 차지하는지 분석해본 건 아니지만 이런 것이 경영혁신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나면 사장과 임원들이 흉금을 털어놓기 마련”이라고 말한다.
기업인들에겐 그 회사가 자기 일생의 전부나 다름 없기에 애착이 대단한데다 제왕적으로 군림하던 입장이어서 처음엔 마뜩잖게 받아들이기 일쑤란다. “심지어 ‘당신들이 이 업계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런 소리냐’며 화까지 내십니다. 그럴수록 ‘부담갖지 마시고 맘 편히 무슨 소리들을 하나 한번 들어 보십시오’라고 설득해 설명을 드리다 보면 맘이 통하는 순간이 꼭 옵니다”
열정으로 넘치는 기업인들은 프리젠테이션과 질의응답에 예닐곱 시간 마라톤 진행으로 가는 경우도 숱하다고 그는 전한다. 나중엔 식당까지 옮겨 갔다 나오면서 뭘 먹었는지 기억이 안나는 경우도 있다는 것.
“임직원들이 솔직하게 털어놓게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경영진 의사에 반하는 의견을 냈다가는 곧바로 해고당할 수 있는게 중소기업들의 풍토다 보니 말문을 트기 힘들지만 일선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문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거든요”
컨설팅팀 모든 멤버들은 지방출장이 잦고 밤 늦도록 술 마시는 강행군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CEO부터 직원들까지 마음의 문을 열고 보면 이 회사가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겠구나 하는 게 보이기 시작한단다.
짧으면 한 달 길게는 반년 정도 기업의 환골탈태 처방전을 마련해 주고 나면 CEO들은 대개 수시로 전화를 걸어 온다고 한다. “한번 신뢰를 얻고나니 고민이 생기면 어김 없이 도움을 청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주변 임원이나 직원들은 속시원하게 이야기를 못하잖아요?”
“요즘은 제조업이면 고부가가치화 니즈 아니면 관광·레저·고령화 등의 업종으로 확장하려는 니즈가 많다”고 그는 전했다.
“일단 해당 산업이 처한 상황과 여건 등 매크로 한 영역은 하나경제연구소 전문인력들이 지원해 줍니다. 우리(컨설팅팀 요원들)는 주어진 케이스의 개별성에 ‘줌-인’ 해서 분석하는 작업을 맡아요”
일단 컨설팅을 받은 고객은 보통 두 종류의 분석결과를 받게 된다. 그리고 한 번 이 맛에 빠져들면 자꾸만 찾게 되는 중독성을 띤다.
안 차장은 컨설팅팀에 자원했다. “사업확장 기회를 엿보는 기업, 대기업 못지 않은 위상으로 도약하고 싶어하는 기업, 사업중심축을 옮기고 싶어하는 기업 그 모든 기업들이 꿈을 이루는데 함께하고 싶었거든요”
그냥 평범한 기업여신 영업맨이던 시절 안 차장은 근본적 물음에 빠지곤 했다. 업무상 사정과 형편을 잘 알게된 중소기업들을 도와줄 수 있는 길이 금리를 좀 더 싸게 해주고 돈을 가능한 한 많이 빌려주도록 하는 것 밖에 없는 걸까? 과연 그것 뿐인가?
“어느날 갑자기 애지중지했던 거래기업이 갑자기 떠났는데 단지 금리가 싸다는 이유였단 걸 알고 절망감마저 느낀 일도 있었죠”
그래도 이젠, 노하우와 업력이 쌓여서 컨설팅 요청이 끝 없이 밀리고 있다고 했다. “RM이나 지점장님들의 성화가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그분 들에겐 가장 소중한 고객이시니 미래의 꿈을 어서 빨리 나누고 상생하는 발전의 길을 걷고 싶은 심정이시죠. 하지만 인력에 한계가 있으니 안타까울 때도 많습니다. 1~2명 충원받을 예정인데 숨통을 좀 틀 수 있겠죠?”
안 차장의 웃음엔 경영컨설팅팀 초반에 6개월마다 존치할 필요가 없다는 주변의 압박에 시달렸던 지난날이, 주름으로 살짝 진다. 하지만 그건 팀원 모두의 열과 성으로 상황을 반전시킨 관록을 증명하는 아름다운 표정의 일부일 뿐이다.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