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하듯이 자본시장통합법은 자본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을 매우 추상적으로 정의하고, 이것을 거래하는 금융기관의 업무 역시 매우 원론적으로 정의한 후 어떤 금융기관이 어떤 금융업무를 영위할 수 있는가를 규제하는 법이다. 금융기관간에 업무를 배분하는 대원칙은 각 금융권역이 수행하는 업무를 고유업무와 부수업무로 구분한 뒤, 고유업무는 해당 권역의 금융기관들만 수행하되, 부수업무는 원칙적으로 모든 금융기관이 적절한 건전성 조건만 충족한다면 제한없이 영위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시장통합법에는 이 법의 취지와 전혀 상관이 없는 뚱딴지같은 조항이 하나 들어가 있어서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다. 그것은 현재 은행이 수행하고 있는 지급결제업무를 증권회사에도 허용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은 증권회사에 지급결제업무를 허용해 주는 것을 기정사실화라도 하듯이 보험회사에도 지급결제기능을 부여할 뜻을 언론에 밝히기도 했다.
물론 일부에서는 증권사에 지급결제업무를 허용해 주자는 논거를 자본시장통합법의 전체 논리체계와 부합하도록 만들기 위해 억지 논리를 발명하기도 한다. 그것이 소위 “지급결제업무는 은행(혹은 수신취급 금융기관)의 고유업무가 아니다” 라는 대담한 주장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은행의 주된 업무는 예금을 수취하고 대출을 제공하는 것이고, 지급결제업무는 소위 부수업무에 해당되기 때문에 꼭 은행만이 수행할 것은 아니고 증권회사 심지어는 보험회사도 원칙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다. 왜냐 하면 지급결제업무와 예금수취업무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어떤 금융기관이 지급결제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일반적 수용성이 있는 유동성 부채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증권회사가 지급결제를 하기 위해서는 증권회사의 특정한 부채가 제3자에게 일반적인 수용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부채에 대해 청구권이 있는 고객이 그 청구권을 제3자에게 양도할 수 있으면 그 때 비로소 지급결제 업무가 완성된다.
그런데 이 과정을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것은 정확하게 요구불 예금의 수취업무와 동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구불 예금이란 금융기관의 부채 중에서 고객이 언제나 명목 계약금액의 범위내에서 인출할 수 있는 옵션이 부가된 부채를 말하는데 고객이 이 인출권을 제3자에게 양도하게 되면 그것이 지급결제가 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급결제 업무는 요구불 예금이라는 부채자산과 전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노벨상을 수상한 바 있는 힉스가 지급결제를 설명하면서 “(금융기관의) 부채에 의한 (여타 거래에서 그 지급의무가 발생한) 부채의 지급”이라고 갈파하면서 금융기관의 부채인 예금이 지급결제와 동전의 양면 관계에 있음을 강조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예금수취가 은행 등 수신 금융기관의 고유업무이므로 지급결제 업무 역시 수신 금융기관의 고유업무라고 보아야 한다.
물론 혹자는 예금이 아닌 부채를 가지고도 얼마든지 결제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금융기관의 다른 부채가 제3자에 대한 고객의 지급의무를 결제하는데 일시적으로 사용될 수는 있어도 그것이 일반적 수용성을 가지고 반복적으로 사용된다면 이미 그것은 실질적으로 예금이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머니마켓펀드 같은 금융상품이 일반적, 반복적으로 결제업무에 사용된다면 그것을 예금으로 간주하고 있다.
지급결제업무를 둘러싼 이번 논란은 결국 증권업계의 이해관계가 현저하게 반영된 해프닝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자본시장을 제대로 발전시키는 방향은 이런 식으로 이권을 재배분하는 갈라먹기식의 발상이 아니라 시장 참가자들이 경쟁을 통해 주어진 금융업무를 조금 더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는 데 있다는 점을 재경부는 다시 한 번 명심할 필요가 있다.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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