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은행이 서로 만족할만한 공신력을 확보한 제3의 실사 기관을 선정하는 것부터 실사에서 다뤄야 할 내용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기까지 두 은행의 입장차가 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금융계 일각에서는 합병선언 이후 실사를 추진해 결과를 얻고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합병작업을 추진, 실제로 두 은행이 합쳐지는 시기는 빨라야 내년 5월 이후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한미 하나은행이 합병을 성사시켜 어느 정도의 시너지 효과를 거두게 될 지 모르지만 1년 넘게 합병이 지연되는 데 따른 계량화할 수 없는 손실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나은행과 한미은행의 합병이 지연되면서 직원들의 불만이 커지고 업무 집중도가 떨어지는 등 생각하지 못했던 부작용이 야기되고 있다. 상대방 은행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미은행 관계자는 “합병도 하기 전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낭비해 합병이 이뤄져도 제대로 업무를 진행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며 “한미 하나은행이 직원 정서가 비슷하고 기업문화도 유사하다고 하지만 이렇게 합병이 지지부진한 것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20일을 전후해 합병선언을 기대했지만 한미은행의 내부 문제로 1주일 이상 지연됐다”며 “김승유 행장은 합병선언을 위해 출장일정을 미루기까지 했지만 결국 성사돼지 못했다”고 아쉬워 했다. 이에 관련 한미은행 관계자는 “지난 17일경 합병선언문 초안을 하나은행에 보냈다”며 “이번주중 선언문 검토작업이 마무리되면 곧바로 합병 선언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계는 하나·한미은행의 합병선언이 진통을 겪는 것은 외견상으로는 실사 문제 등을 둘러싼 의견 조율 때문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통합은행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고도의 전술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하나은행은 일찌감치 한미은행과의 합병을 공론화하며 합병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듯한 모습이지만 결국은 한미은행의 합병지연 전략에 휘말렸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IT 부문의 전략적 업무제휴 협약이 체결된 이후 지금까지 실질적으로 하나은행이 합병을 주도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한미은행은 DR 발행을 계기로 충분한 효과를 얻었다. DR 발행을 합병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워 정부와 하나은행의 합병 요구 압력을 무마시킨 것은 물론 자본납임금이 늘어나 대등한 입장에서 하나은행과 합병을 논의할 수 있게 됐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두 은행 중 어느 은행도 확실하게 합병의 주도권을 잡았다고 단정하기 어려워 실사결과만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두 은행은 실사결과가 나오기 전에 대외적으로 합병을 선언하고 세부적인 합병 작업은 실사결과를 바탕으로 추진한다는 방침 아래 활발하게 물밑 접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준식 기자 impark@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