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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부상한 '에너지의 저주'...유로존 스태그플레이션 공포

장종회 기자

jhchang@fntimes.com

기사입력 : 2026-04-17 09:44

중동戰 길어져 성장↓ 물가↑
ECB 금리인상 딜레마 봉착
국제금융센터 보고서 진단

[한국금융신문 장종회 기자] 중동 전쟁이 예상 밖으로 길어지면서 유럽이 다시 한번 '에너지 충격'이라는 오래된 악몽을 마주하고 있다.

올해 초만 해도 유로존 경제의 분위기는 사뭇 낙관적이었다. 에너지 가격 하락세가 이어지고, 독일이 대규모 재정 지출 확대에 나서면서 오랜 침체의 터널을 빠져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팽배했다. 상황을 급반전시킨 것은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이다. 단기간에 끝낼 것이라며 전쟁을 시작한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의 끈질긴 저항과 호르무즈해협 봉쇄라는 복병으로 인해 자칫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졌다. 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려는 이란에 대응해 미국마저 역봉쇄 카드를 들고 나오면서 휴전 협상이 마무리된다고 하더라도 에너지 위기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짙어졌다.

에너지 단기 정상화 요원

국제금융센터(KCIF)가 최근 낸 ‘유로존 스태그플레이션 압력 증가’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란간 휴전 협상이 진행 중이지만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은 전쟁 이전에 비해 50% 이상 높은 수준이다. 블룸버그 서베이를 기준으로 올해 평균 브렌트유 가격 컨센서스는 배럴당 78.9달러, 천연가스는 MWh당 46.4유로로, 각각 전년보다 16%, 28%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생산시설과 사회간접자본시설 피해에 리스크 프리미엄이 확대되면서 에너지 가격의 단기적인 정상화는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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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런 상황이 단순한 에너지 가격 충격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성장과 물가가 동시에 엇나가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의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어서다. 유럽중앙은행(ECB)와 유럽연합(EU) 관계자들은 중동전쟁이 장기화하면 부정적 여파가 커진다며 유럽에 스태그플레이션 압력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주요 투자은행(IB)들도 유로존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전쟁 이전에 1.3%로 잡았던 것을 0.8%로 낮추고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1.8%에서 2.9%로 대폭 올렸다.

유로존 성장 둔화 가속

유로존 성장 둔화의 신호는 가계 부문에서 먼저 나타나고 있다. 물가상승 우려가 커지면서 3월 EC 소비자신뢰지수는 -12.3에서 -16.3으로 급락했고, 소비재 구매의사도 -13.3에서 -14.3으로 뚜렷하게 약해졌다. 유럽 각국이 재정지원책을 발표하긴 했지만 2022년과 달리 이미 높아진 부채 부담과 금리로 인해 충분한 지원이 이뤄지긴 어려운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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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선 확장 국면이 유지되는 듯한 모습이 보이지만 선제적 재고 확충과 공급망 차질에 따른 일시적 착시일 가능성이 크다는 진단이다. 유로존 전체 에너지 소비에서 수입 화석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61.4%에 달하는데다 중국 기업과의 경쟁도 심해져 에너지 충격과 공급망 차질 타격이 불가피하다. 특히 독일은 수입 화석연료 비중이 66.8%에 달해 에너지자립도가 낮고 제조업이 총산업부가가치의 19.9%를 차지할 정도여서 에너지 충격에 취약한 국가로 꼽힌다. IB들이 독일의 성장률 전망치를 2월 1.2%에서 4월 0.7%로 낮춘 게 이를 반영한 것이다.

물가 쪽은 더 심각하다. 3월 유로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에너지 물가가 -3.1%에서 4.9%로 반전되면서 1.9%에서 2.5%로 크게 튀어 올랐다. 에너지 가격이 휴전 여부와 관계없이 당분간 고공행진을 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유론존 물가상승률 전망 컨센서스도 전쟁 이전에 1.8%였던 게 2.9%로 크게 올라갔다. 여기에 기업과 노조가 가격·임금을 빠르게 조정하기 시작하면 근원 물가까지 자극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시장선 6월까지 금리인상 확률 100% 육박

통화정책 딜레마도 깊어지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3월 통화정책회의에서 중동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충격이 2022년에 비해 완만할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물가 충격에 대한 우려와 함께 기대 인플레이션 상승을 경계하고 있다. 물가 충격이 성장 충격을 압도해 올해 안에 2번 이상 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하는 투자은행들이 많다. 시장에서는 이미 6월까지 정책금리가 인상될 확률을 100%에 육박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중동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금리인하 기대가 남아 있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문제의 본질은 더 깊은 곳에 있다. 유럽의 에너지 공급구조 취약성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최가윤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유로존 '화석연료 인플레이션(fossilflation)'이 반복되면서 물가안정이 요원하다고 진단했다. 금리 인상이 물가를 잡기보다 에너지 전환비용을 높이는 역설적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최 연구원은 “유럽이 청정에너지 전환 추진 중인데 금리인상이 이뤄지면 인프라 투자비용이 증가해 지체될 수 있다”며 “정책적 방향성을 명확히 하기 위해 예측가능한 정책환경을 조성하고 적절한 인센티브 제공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럽이 에너지 자립이라는 근본 과제를 풀지 못하는 한 중동의 화약고에서 터지는 불씨 하나가 유럽 경제 전체를 흔드는 구조는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럴 때마다 스태그플레이션의 망령이 유럽을 다시 맴돌 수 있는 만큼 청정에너지 전환을 가속해야 할 시점이다. 유럽의 이런 상황은 해외 에너지 의존도가 최상위권에 속하는 한국 경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장종회 한국금융신문 기자 jhcha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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