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KAIST
첫번째 기부금은 대한민국에 융합교육의 씨를 뿌리는 바이오 및 뇌공학과 설립에 쓰였다. 그런데 정문술 회장은 기부할 때 매우 이례적인 조건을 달았다. 반드시 이광형이 이 금액을 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번째 기부에도 똑 같은 조건이 달렸다. 도
대체 왜 정문술은 그토록 이광형을 신뢰하는 것일까?
1996년 이광형 교수는 석사, 박사과정 학생 7명을 데리고 천안에 있는 미래산업 본사를 방문했다. 기술사관학교라 알려진 미래산업이라는 벤처기업이 정도경영, 거꾸로 경영을 실천하고, 회사를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을 보고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이광형이 다짜고짜 전화해서 이루어진 방문이었다.
당시 미래산업은 하드웨어쪽은 진용을 갖추었는데 소프트웨어가 취약했다. 그런데 이광형이 마침 요청 하지도 않았는데 제 발로 찾아와 연구개발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정문술은 이광형을 미래산업의 석좌교수로 잡아 놓기 위해15억원을 석좌교수 기금으로 출연했다.
이제 갓 부채를 정리한 상태라 여유도 없었고 지금까지 그만한 돈을 써본 적도 없었다. 이광형의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은 정문술은 1년뒤에 “왜 다른 교수들처럼 연구비를 달라고 하지 않느냐?”라고 물었다.
이때 이광형의 답이 정문술이 카이스트에 기부를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장학금을 받으면서 카이스트를 다녔고 모교 교수까지 되었으니 이미 많은 혜택을 받았습니다. 좋은 회사의 성공에 도움을 주는 것이 빚 갚는 길이죠”
세계 최초로 바이오 및 뇌공학과를 개설
2011년 1월 2일 정문술은 미래산업을 창업했지만 마르고 닳도록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은퇴를 선언하고 회사 지분을 모두 처분했다. 갑작스러운 은퇴소식이 전해지자 일곱 군데의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겠다고 했지만 모두 거절했다.2011년 2월 2일 정문술은 이광형에게 물었다.“우리나라가 정보통신이 떠서 먹고 사는데 그 다음은 무엇으로 먹고 살까?”
“글쎄요, 바이오라는데 우리나라가 약해서요”
“바이오와 정보통신을 융합하면 어떨까? 카이스트가 그런 걸 구상하고 있어? 이교수가 한번 구상해보시오”
재단을 만들어서 뒤로 자식들에게 빼돌리는 것을 많이 본 정문술은 초기에 10억원 정도 생각했던 이광형에게 300억원을 기부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반드시 학과를 만들고 이광형 주도로 집행이 되어야 한다고 못박았다.
2011년 7월 기부협정서 체결식에서 정문술은 3가지를 강조했다.
둘째, 비범한 사람을 모아야 한다. 비범한 사람은 괴짜이니 인내심을 가지고 잘 모셔야 한다.
셋째, 이 돈으로 골고루 나눠 쓰는 화합을 하면 안된다. 이광형 교수가 이 돈을 쓸 때 불협화음이 나오면 돈을 잘 쓰고 있다고 생각하겠다.
학과 이름은 ‘바이오시스템학과’로 정해졌고 2007년에 ‘바이오 및 뇌공학과’로 바뀌었다. 당시만 해도 MIT, 스탠포드 대학에도 없던 분야에 카이스트가 첫발을 내딛었다. 2009년 바이오 및 뇌공학과에서 자신 있는 기술이 나왔다. 당뇨병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장비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정문술은 카이스트에 올 일이 있어도 쳐다보기만 했던 정문술 빌딩을 처음으로 방문했다.
오이원 여사의 100억원 기부
2009년 이광형교수와 알고 지내던 증권사 직원이 ‘굉장히 연세가 많은 여자분이 남은 재산을 사회에 어떻게 환원할까 고민하고 있다’고 하며 오이원 여사와 만남을 주선했다. 처음 몇 번은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고 후에는 이교수의 부인도 같이 만났다.처음에 이광형을 만났을 때 경계심도 들었지만 정문술 회장의 이야기도 듣고 이광형 교수의 눈을 들여다보더니 ‘이 교수님 눈을 자세히 보니까 믿어도 되겠다’며 재단을 설립하는 것 보다는 카이스트에 맡기는 것이 안전할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기부금 관리위원회에 오여사의 손자이름과 이광형의 이름을 넣고 100억원을 바로 기부했다. 그 기부금은 유능한 조교수를 선발하고 격려금을 주는데 활용되고 있다.
MT비용이 장학금이 된 사연
처음으로 이광형을 통해 기부금이 들어온 때는 1998년쯤이다. 이광형이 맡았던 어느 석사과정의 부모님이 카이스트를 방문하여 이야기를 나누다 설렁탕집에서 식사를 한 후 이교수가 식사 값을 지불하니 학생의 부모님이 굉장히 민망해 했다. 그리고 2주뒤에 또 만나자고 연락이 왔고 이번에는 본인들이 식대를 내겠다고 했다. 그리고 ‘스키장 MT를 간다고 하지 않았냐’며 학생들 맛있는 것 사주라며 봉투를 주는데 도저히 뿌리칠 수 가 없었다.주머니에 넣어두었다가 옷을 갈아입는 바람에 잊어버리고 보름이 지나서야 봉투를 열어보니 천만원이 들어있었다. 이광형이 전화를 해서 도저히 못 받는다고 했더니 상대방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에 기부를 하겠다고 했더니 학부모는 학생이 학부 4년, 석사 2년 6년간 무료로 다닌데 대한 보답으로 일년에 400만원씩 등록금을 계산하여 2,400만원을 기부했다.
그 기부금으로 ‘창의활동상’을 만들어 매년 개교기념일에 시상을 하니 학부모는 너무 적다고 생각했는지 금액을 5천만원으로 올렸다. 당시에는 ‘기부’라는 것이 별로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첫 단추가 끼워지자 다른 단추가 계속해서 채워지면서 카이스트에 고액기부가 늘게 되었다.
이광형은 바이오 및 뇌공학과를 만들며 미래학의 필요성을 느꼈다. 신설학과를 설립당시 반대하던 사람들은 왜 그랬을까? 차이는 ‘미래를 보느냐, 현재를 보느냐’에 있다. 바이오 및 뇌공학과가 안정을 찾자 이광형에게 다시 미래학이 떠올랐다. 미래전략대학원은 2013년에 개강을 하였다.
좋은 교육은 우수한 교수진에서 나오고 우수한 교수는 연구를 통해서 길러진다. 그러니 박사과정이 없고 전임교수를 뽑을 수 없으면 우수한 교수진을 구성할 수 없다. 이광형은 가끔 만나는 정문술 회장에게 고민을 토로했다.
정문술 회장은 이교수가 추진하는 것이 옳다. 내가 도와줄 테니 해보라고 격려했다. 이렇게 해서 정문술 회장의 2차 기부 약정식이 열렸다. 카이스트가 미래전략대학원을 출범시키면서 국내에서 미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국회에서는 미래전략최고위과정을 개설하여 국회의원과 국장급이상 고위공무원을 교육시켰다. 과정에 참여한 국회의원은 ‘이제야 비로서 눈이 떠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2014년부터 발행하는 <카이스트 미래전략>은 어느 덧 한국의 중요한 미래전략 보고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해마다 약 4,000부가 팔리고 있다. 이광형은 ‘책의 집필기조를 선비정신에 두고 있다’고 한다. 어떠한 정파나 압력집단의 영향이 없이 오직 국가와 사회를 위해 옳은 말만 하는 것이다.
출처 및 인용: 이광형 카이스트의 시간
윤형돈 센터장(한국금융신문 네트워킹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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