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9월1일 부터 예금자보호 한도가 현행 5000만 원에서 1억 원으로 상향된다. 사진=금융위원회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예금자보호 한도 상향은 2001년 이후 24년 만의 개편으로,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개인과 기업이 금융기관에 맡긴 자산 중 보호 받을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는 점에서 예금 선호 현상이 더 강해질 수 있다.
하지만, 반대편에 있는 자본시장, 특히 증권사들의 경우 마냥 반길 수 만도 없는 입장이다. 유동성 위축과 고객 이탈 우려가 동시에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 "안전자산 선호 심화"… 증권사 유동성 비상
예금자보호 한도 상향은 기본적으로 은행 예·적금 상품의 매력을 대폭 끌어올리는 조치다. 특히 그동안 5000만 원이라는 한도에 묶여 여러 금융기관에 자산을 분산하던 투자자들이 한 곳에 보다 많은 금액을 몰아넣을 수 있게 됐다. 단일 은행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질 가능성도 커졌다.
문제는 이같은 흐름이 증권사의 CMA, MMF, RP 등 단기 투자상품에서 자금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CMA 계좌의 경우 상품 종류에 따라 예금자보호 대상이 아니거나 제한적 보호만 적용되는 만큼, 상대적으로 안전자산인 은행 예금보다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
■ 펀드·ELS 투자 위축? 보수적 자금 이탈 가능성
예금자보호 한도가 확대되면 리스크 자산에 대한 회피 심리도 커진다. 특히 고령층이나 자산 보존을 중시하는 투자자들이 수익률보다 원금보장에 무게를 둘 경우, 증권사가 취급하는 펀드, 리츠, ELS 등 간접투자 상품의 판매 위축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한도 상향은 일반 소비자에게는 호재겠지만, 증권사 입장에선 단기 유동성 감소와 함께 신규 자금 유입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 며 “투자 심리가 약해진 상황에선 이런 정책 변화가 시장에 더 크게 작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장기적으로는 ‘기회’ 될 수도… 관건은 정책 균형
증권업계 일각에선 예금자보호 한도 상향이 반드시 증권업계에 악재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기도 한다. 정부가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한 세제 혜택 확대, ISA 개편, 장기 투자 유도 정책 등을 병행해 준다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오히려 ‘선택과 집중’이 가능한 시장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한다.
특히 투자자들이 안전자산과 투자자산을 명확히 구분하게 되면서, 증권사 입장에선 차별화된 포트폴리오 제안과 자산관리 역량이 중요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 증권사의 전략적 대응이 성패 가른다
이미 일부 증권사들은 예치금 이탈을 대비해 예금자보호가 가능한 CMA 종합계좌 확대, 고금리 RP 제공 등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퇴직연금 시장 진출, WM 사업 고도화, 디지털 자산 연계 상품 개발 등을 통해 새로운 수익 기반 마련을 위한 움직임에도 나서고 있다.
■ '기회인가, 위기인가'… 변곡점에 선 증권업계
예금자보호 한도가 1억 원으로 상향되는 이번 조치가 자산가는 물론 일반 투자자에게도 큰 변화를 의미한다.
금융소비자 입장에선 분명히 환영할 만한 소식이다. 하지만, 증권사 입장에선 단기적으로 유동성 위축과 수익성 저하의 ‘이중고’를 맞게 될 수도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예금자보호 한도 상향으로 증권사가 웃을 수 있을지 아닐지는, 자금 유출을 최소화하고 새로운 투자 수요를 어떻게 창출하느냐하는 여부에 달렸다”며 “9월 이후 펼쳐질 ‘1억 원 시대’의 금융 판도 변화 속에서, 증권사들이 대응 전략을 어떻게 마련하느냐 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김희일 한국금융신문 기자 heuyil@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