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법원이 잇달아 한국거래소의 상장 폐지 결정에 제동을 걸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거래소와 금융당국은 부실기업 정리를 위한 정당한 절차란 입장이지만, 법원은 해당 결정들이 기업과 투자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중대한 만큼,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사진=한국거래소
4일 한국거래소 공시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장 폐지 최종심의 건수는 37건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3배나 늘었다. 이는 금융당국이 발표한 ‘상장 폐지 제도개선 방안’에 따른 것으로, 2028년부터는 시가총액 기준도 대폭 상향된다.
하지만 거래소의 심의 결과, 실제 상장 폐지로 이어진 경우는 전체의 30%에 불과하다. 나머지 기업들은 상장 유지 결정이나 개선 기간 부여, 또는 법원에 상장 폐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통해 상장 폐지를 일시 중단시킨 상태다.
일부는 법원 판단에 불복해 항고 절차를 밟기도 한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금융당국과 일부 시장 전문가들은 "법원이 거래소의 전문성을 무시하고 있다" 며 우려한다. 하지만, 일각에선 법원의 개입이 오히려 투자자 보호 및 기업 회생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장치로 기능한다고 보기도 한다.
실제 과거 ‘감마누(현 오늘이엔엠)’ 사례는 대표적이다. 거래소가 감사 의견 거절을 이유로 상장 폐지를 결정했다. 하지만, 법원이 가처분을 인용하고 본안 소송에서도 기업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해당 기업은 2020년 거래를 재개할 수 있었다. 당시 손실을 입었던 소액 주주들도 이후 주가 회복으로 일부 회복의 기회를 가졌다.
법조계 관계자는 “상장 폐지가 기업에게는 사실상 사형 선고다” 며 “수많은 개인투자자에게는 재산권 박탈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이 같은 중대한 결정에 대해 법원이 임시로 효력을 정지시키는 것은 시장 질서 훼손이 아닌 오히려 민주적·사법적 감시 장치로 기능하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또한 가처분이 인용된다고 해서 기업이 무조건 상장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후 본안 판결에서 거래소의 판단이 타당하다고 인정될 경우 결국 상장 폐지로 이어지게 된다. 이는 법원의 판단이 단순히 ‘상폐 지연’이 아닌, 실질적 검토 기회 제공임을 시사한다.
한편, 소액주주들 사이에서는 거래소의 일방적인 상폐 결정에 대한 불신이 여전하다. 상장 유지 여부를 판단하는 주요 자료가 비공개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고, 기업의 회생 의지나 개선 여지를 고려하지 않은 채 ‘정리’에 나서는 경우도 있는 탓이다.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부실기업 퇴출이라는 원칙이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당성과 공정성이 보장되어야 시장 신뢰가 유지된다”며 “법원의 가처분 제도는 상장기업 생태계 내에서 최소한의 균형추 역할을 수행한다”고 평했다.
김희일 한국금융신문 기자 heuyil@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