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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플레이션과의 전쟁, 절반의 성공: 2001-2006년 일본은행의 양적완화 정책의 진실 [김성민의 일본 위기 딥리뷰]

김성민 교수(전.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교수)

smkim54@gmail.com

기사입력 : 2026-11-09 06:00

디플레이션과의 전쟁, 절반의 성공: 2001-2006년 일본은행의 양적완화 정책의 진실 [김성민의 일본 위기 딥리뷰]
2000년 8월 제로금리 정책을 성급하게 종료했던 일본은행은 경기 둔화와 디플레이션 압력이 심화되자 2001년 2월 금리를 사실상 다시 제로 수준으로 되돌렸다. 그러나 이미 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인하한 상황에서 전통적인 금리 인하 정책은 더 이상 활용할 여지가 거의 없었다.

2001년 3월 16일 일본 정부는 일본 경제가 완만한 디플레이션 상태에 있음을 공식 인정했다. 이러한 경제 상황에서 일본은행은 3월 19일 통화정책의 운용 목표를 무담보 1일물 콜금리에서 금융기관들이 일본은행에 예치한 당좌예금 잔액으로 전환하는 파격적인 조치를 단행했다. 이는 중앙은행이 공급하는 유동성의 '양(Quantity)'을 직접 조절하는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라는 새로운 통화정책의 출발점이었다. 주요 선진국 가운데 최초로 통화정책의 운용 목표를 단기금리에서 중앙은행 당좌예금 잔액으로 전환한 역사적 실험이었다.

그러나 양적완화 정책은 도입 초기 은행권의 부실채권과 자본 부족이라는 구조적 제약으로 인해 기대한 정책 효과를 거두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은행권의 부실이 충분히 정리되지 못함에 따라 2003년까지 은행의 경영 위기와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지속되었다. 은행들은 자본 부족과 부실채권 문제로 신용 중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기업들 역시 버블 붕괴 이전에 누적된 과잉설비와 과다부채를 해소하는 데 주력하면서 신규 투자와 차입을 늘릴 유인이 사실상 거의 없었다. 일본은행이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하더라도 민간 대출과 소비·투자의 확대로 이어지기 어려웠던 이유이다.

2003년 이후 후쿠이 도시히코 총재 체제에서 금융안전망이 정비되고 금융시스템의 불안이 어느 정도 진정되면서 양적완화의 운용 여건도 달라졌다. 일본은행은 당좌예금 잔액 목표를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하고 장기국채 매입을 대폭 확대하며 전례 없는 규모의 유동성을 장기간 공급했다.

그렇다면 2001년 3월부터 2006년 3월까지 만 5년간 지속된 이 전례 없는 통화정책 실험은 일본 경제에 어떤 성과와 한계를 남겼을까? 양적완화는 금융시스템의 불안을 완화하고 금융시장의 안정을 뒷받침하는 데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민간의 신용 수요와 투자를 되살리고 지속적인 물가 상승을 유도하는 데는 한계를 보였다.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만으로는 은행의 대출 여력과 기업·가계의 차입 수요를 동시에 회복시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금융시스템의 안정과 디플레이션 극복이라는 두 가지 과제 가운데 전자에서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후자에서는 뚜렷한 한계를 드러냈다. 바로 여기에 2001~2006년 일본은행의 양적완화 실험이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받는 이유가 있다.

양적완화의 세 가지 축: 금리에서 유동성으로

2001년 3월 19일 일본은행이 도입한 양적완화 정책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되었다.

첫째, 통화정책의 운용 목표를 초단기금리에서 금융기관의 일본은행 당좌예금 잔액으로 전환했다. 둘째, 당좌예금 잔액을 확대하기 위해 장기국채 매입 한도를 대폭 늘려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했다. 셋째, 물가가 안정적으로 상승세로 돌아설 때까지 양적완화를 지속하겠다는 정책 약속을 통해 시장의 기대를 관리했다. 이는 금리 조절에 의존하던 전통적 통화정책에서 벗어나 대규모 유동성 공급과 정책 지속에 대한 조건부 약속을 결합한 새로운 통화정책 운용체계였다고 볼 수 있다.

자료: 일본은행의 당좌예금 잔액 목표치 추이

자료: 일본은행의 당좌예금 잔액 목표치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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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통화정책의 운용 목표를 바꾼 것이었다. 일본은행은 기존의 무담보 1일물 콜금리라는 가격 변수를 조절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금융기관의 일본은행 당좌예금 잔액이라는 양적 변수를 새로운 운용 목표로 채택했다. 일본은행은 당시 약 4조 엔이던 당좌예금 잔액 목표를 아홉 차례 상향 조정한 끝에 2004년 1월 30조~35조 엔 수준으로 확대했고 이 목표는 양적완화가 종료된 2006년 3월까지 유지되었다. 이는 은행들이 법정 지급준비금을 충족하는 데 필요한 수준을 훨씬 상회하는 자금을 공급해 단기 자금시장의 유동성 부족 가능성을 차단하고 콜금리를 사실상 0% 수준에 유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두 번째 축은 장기국채 매입을 통한 유동성 공급의 확대였다. 당좌예금 잔액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본은행은 공개시장 운용을 통한 장기국채 월별 매입 한도를 2001년 초 4,000억 엔에서 2002년 10월 1조 2,000억 엔까지 단계적으로 늘렸다. 장기국채 매입에는 두 가지 주요 기대효과가 있었다. 첫째, 국채 수익률을 낮춰 다른 장기 시장금리의 하락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가계와 기업의 차입 비용을 줄이는 것이었다. 둘째, 일본은행의 국채 매입으로 민간이 보유할 수 있는 장기국채 물량을 줄여 투자자들이 회사채와 주식 등 다른 금융자산으로 투자 대상을 전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포트폴리오 재조정 효과(Portfolio Rebalancing Effect)를 통해 자산 가격 상승을 유도하고 민간의 투자와 지출을 촉진하려는 의도였다.

세 번째 축은 물가가 안정적인 상승세를 보일 때까지 양적완화 정책을 지속한다는 조건부 약속이었다. 도입 초기 일본은행은 근원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0% 이상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때까지 양적완화를 지속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미래의 단기금리 예상 경로를 제시해 장기금리 상승을 억제하려는 시도로 오늘날 선제안내(Forward Guidance)의 초기 사례로 평가된다. 다만 1999년 제로금리 정책에서도 이와 유사한 정책 지속 약속이 제시되었으므로 이를 최초의 선제안내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도입 초기에는 양적완화 정책의 종료 조건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아 시장에서는 이 정책이 언제까지 지속될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남아 있었다. 이에 일본은행은 2003년 10월 양적완화의 종료 조건을 보다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양적완화 종료를 위해서는 실제 근원 물가상승률이 수개월 연속 0%를 상회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은행 정책위원 과반수가 향후 물가상승률도 0% 이상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해야 했다. 아울러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더라도 경제·금융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양적완화의 지속 여부를 판단한다는 기준을 마련했다. 물가의 일시적 반등에 성급히 정책을 철회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처럼 일본은행 당좌예금 잔액을 목표로 한 정책 운용, 장기국채 매입, 조건부 정책 지속 약속은 서로 다른 경로를 통해 장기금리를 낮추고 금융여건을 완화하려는 상호보완적인 정책 수단이었다. 양적완화 정책이 금융시장을 거쳐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 파급 경로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장기국채 매입에 따른 포트폴리오 재조정 경로이다. 중앙은행의 대규모 국채 매입으로 국채 수익률이 하락하면 투자자들은 수익률 저하를 막기 위해 회사채나 주식 등 위험자산으로 투자 대상을 전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회사채 금리와 위험 프리미엄이 낮아지는 한편 주가 등 자산 가격이 상승하면서 기업의 자금 조달 여건이 개선되고 자산효과(wealth effect)를 통해 민간 소비와 투자가 촉진될 수 있다.

둘째는 조건부 정책 지속 약속을 통한 신호 효과(Signaling Effect)다. 물가상승률이 안정적인 상승세를 보일 때까지 초저금리를 유지하겠다는 중앙은행의 약속은 시장 참가자들이 미래의 단기금리 경로를 낮게 예상하도록 유도한다. 이는 현재의 장기금리에 하락 압력을 가하는 동시에 디플레이션 기대를 완화하고 기대인플레이션을 높임으로써 실질금리를 낮출 수 있다.

금융기관과 기업의 신용중개를 뒷받침한 보완 조치

그러나 일본은행이 금리를 낮추고 시장에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지만 이것이 은행 대출 확대와 기업의 자금 조달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당시 일본 은행들은 부실채권 정리가 지연되는 가운데 보유 주식의 가치 하락으로 자본이 추가로 훼손될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고 민간의 신용 수요 역시 극도로 위축된 상태였다. 중앙은행이 공급한 유동성이 은행의 당좌예금 잔액 증가에 주로 머물고 민간 대출 확대로 이어지지 못하자 일본은행은 은행의 대출 여력과 자산 건전성을 개선하기 위해 은행 보유 주식과 자산담보부증권(ABS)과 자산담보부 기업어음(ABCP)을 직접 매입하는 이례적인 조치에 나섰다.

2002년 9월 일본은행은 은행의 자기자본 부담을 완화하고 금융중개 기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은행들이 보유한 주식을 직접 매입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고 그해 11월 이를 실행에 옮겼다. 당시 일본 은행들은 기업과의 오랜 상호출자 관행으로 대규모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가가 하락하면 은행이 보유한 주식에서 평가손실이 발생해 자기자본이 감소하고 주가 변동에 따른 시장위험도 커졌다. 이러한 자본 감소와 시장위험 증가는 은행의 재무건전성을 악화시키고 신규 대출을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일본은행은 총 2조 180억 엔 규모의 주식을 직접 매입해 은행의 주가 변동 위험에 대한 노출을 줄이고 부실채권 정리와 신규 대출을 제약하던 부담을 완화하고자 했다.

이와 함께 2003년 6월에는 중소기업 금융을 지원하기 위한 ABS와 ABCP 매입 방안을 확정하고 7월 28일부터 매입을 시작했다. 은행의 신용 중개 기능이 약화되어 중소기업의 자금난이 심화되자 일본은행은 기업의 매출채권이나 대출채권 등을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ABS와 ABCP를 직접 매입했다. 이는 기업이 은행 대출 외에도 자산유동화증권과 자산담보부 기업어음 등을 활용해 금융시장에서 직접 자금을 조달하는 경로를 확대하려는 시도였다. 일본은행은 총 매입 잔액 한도를 1조 엔으로 설정하고 매입 대상 증권의 기초자산 가치 중 50% 이상을 중소기업 관련 채권과 기업어음으로 구성하도록 했다. 중앙은행이 민간의 신용위험을 직접 부담하면서까지 신용 경색을 완화하고 중소기업의 자금 조달을 지원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매우 파격적인 정책 실험이었다.

엔화 약세를 통한 디플레이션 탈출 구상과 외환시장 개입

엔화 약세를 유도해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물가 상승을 뒷받침하는 방안도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한 중요한 정책적 고려 대상이었다. 명목금리가 제로에 도달한 상황에서 엔화 가치를 낮출 수 있다면 수입물가 상승,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 회복, 기대인플레이션 제고 등을 통해 경기를 부양할 수 있다는 구상이었다.

대표적으로 스톡홀름대 라스 스벤손(Lars E. O. Svensson) 교수는 2000년 7월 일본은행 주최 국제학술회의에서 중앙은행이 일정한 물가수준 목표 경로를 설정한 뒤 엔화 가치를 의도적으로 낮추고 일정 기간 새로운 환율 수준에 고정(Peg)하는 이른바 '확실한 탈출 방안(Foolproof Way)'을 제안했다. 물가수준이 목표 경로에 도달하면 환율 고정 정책을 종료하고 물가수준 목표제 또는 인플레이션 목표제로 전환한다는 구상이었다. 엔화 약세를 통해 실질환율을 낮추고 기대인플레이션을 높이면 실질금리가 하락해 소비와 투자가 늘어나고 총수요 회복을 거쳐 디플레이션 탈출을 촉진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다만 스벤손이 제안한 정책 구상과 일본 정부가 실제로 시행한 외환시장 개입은 정책 수단과 운용 방식에서 차이가 있었다. 스벤손이 제시한 '환율 고정을 동반한 물가목표제'는 정책으로 채택되지 않았다. 대신 일본 정부는 엔화 강세를 억제하기 위해 대규모 외환시장 개입을 단행했다. 법적 권한을 지닌 재무성의 지시에 따라 실제 시장 개입은 일본은행이 대행하는 구조였다.

재무성은 2003년 1월부터 2004년 3월까지 엔화 강세를 저지하기 위해 약 35조 2,600억 엔을 투입해 달러를 매입하고 엔화를 공급했다. 이는 당시 일본 GDP의 약 7%에 해당하는 전례 없는 규모였다. 이 조치는 엔화 강세로 인한 수출 기업의 수익성 악화 부담을 줄이는 한편 외환 매입 과정에서 엔화 자금이 방출되면서 본원통화 증가에도 기여했다. 이 과정에서 외환시장 개입은 일본은행의 양적완화와는 별개의 정책이었지만 금융기관의 일본은행 당좌예금을 늘려 양적완화와 유사한 유동성 공급 효과를 가져왔다.

금융시장은 안정시켰지만, 디플레이션은 끝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일본은행이 시행한 역사상 전례 없는 양적완화 실험은 금융시장과 실물경제 전반에 어떤 파급효과를 미쳤을까? 일본은행의 우가이 히로시는 2001년 3월부터 2006년 3월까지 시행된 양적완화 정책의 효과를 분석한 주요 실증연구들을 종합해 정책의 파급 경로와 경제적 성과를 평가했다. 그는 이 정책이 금융시장 안정과 금리 하락 측면에서는 뚜렷한 효과를 나타냈으나 은행 대출과 기업 투자의 활성화와 나아가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파급 효과는 제한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양적완화가 거둔 가장 분명한 성과는 은행의 자금 조달 불안을 완화하고 단기 자금시장의 경색을 방지한 것이다. 일본은행은 당좌예금 잔액 목표를 단계적으로 높여 은행 간 단기 콜금리를 사실상 0% 수준으로 유지함으로써 은행들이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지 못할 위험을 크게 줄였다. 그 결과 2003년 레소나은행의 자본 부족 사태와 아시카가은행 국유화 등 잇따른 금융 불안에도 금융시스템 전체가 마비되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양적완화는 개별 은행의 부실채권 정리나 자본 확충과 같은 구조적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이러한 과제는 공적자금 투입과 경영 정상화 조치 등을 통해 별도로 해결해야 했다. 대신 양적완화는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동안 은행에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해 자금 거래 경색을 막고 유동성 및 신용위험 프리미엄을 낮춤으로써 금융 불안이 시스템 전체로 확산하는 것을 차단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통화정책의 핵심 파급 경로로 기대되었던 포트폴리오 재조정 효과는 실증연구마다 그 존재 여부와 영향력에 대한 평가가 달랐으며 전반적으로 그 효과도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국채 매입으로 국채 물량이 줄어들고 금리가 하락하더라도 버블 붕괴 이후 극심한 과다부채와 과잉투자에 시달리던 기업들은 신규 차입과 설비투자에 나설 유인이 없었다. 은행 역시 부실채권과 자본금 부담 속에서 풍부한 당좌예금을 적극적인 대출로 전환하지 못했다.

반면 물가 상승 안정세가 확인될 때까지 완화를 지속하겠다는 선제안내는 상대적으로 뚜렷한 성과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03년 10월 물가 실적과 향후 전망을 연계한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한 선제안내는 중·단기 수익률 곡선을 낮추고 시장의 미래 금리 기대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데 기여했다. 이는 제로금리 하한에 직면한 중앙은행에 미래의 정책 경로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시장의 신뢰를 확보하는 일이 단순한 본원통화 확대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대외 부문에서 환율 경로를 통한 통화완화 역시 실효성을 거두는 데 한계를 드러냈다. 2003년 1월부터 2004년 3월까지 재무성이 GDP의 7%에 육박하는 35조 2,600억 엔을 쏟아부어 대규모 외환시장 개입을 단행했으나 본원통화의 증가가 곧바로 지속적인 엔화 약세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환율은 국가 간 금리 차, 글로벌 자본 흐름, 대외 경기 등 복합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가격 변수여서 통화 공급 확대와 대규모 개입을 통해 환율의 흐름을 원하는 방향으로 장기 지속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2001~2006년 일본은행의 양적완화는 금융시장의 붕괴를 막고 초저금리 환경을 정착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디플레이션을 근본적으로 종식시키지는 못했다. 자산 버블 붕괴 이후 민간 부문은 과잉부채를 줄이고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이른바 대차대조표 조정(balance sheet adjustment)에 주력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장기금리와 회사채 수익률이 하락해도 기업들은 신규 차입과 설비투자를 늘리려 하지 않았다. 은행 역시 부실채권과 자기자본 부족 문제로 대출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기 어려웠다. 일본의 경험은 중앙은행이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하더라도 민간 부문의 부채 조정과 은행의 부실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통화 완화가 실물경제의 회복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교훈을 남겼다.

약속의 이행인가, 성급한 철수인가: 2006년 3월의 출구전략

2006년 3월 9일 일본은행은 5년간 이어온 양적완화 정책을 종료했다. 통화정책의 운용목표를 당좌예금 잔액에서 다시 무담보 1일물 콜금리로 되돌린 것이다. 다만 양적완화 정책 종료가 즉각적인 금리 인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일본은행은 콜금리를 0%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시장의 초과 유동성을 수개월에 걸쳐 단계적으로 흡수했고 2006년 7월에 이르러서야 콜금리 목표를 0.25%로 상향 조정했다. 이 결정은 사전에 제시한 출구 조건을 충족했다는 점에서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평가와 디플레이션 탈출의 확실성이 검증되지 않은 시점에서 감행된 조급한 정책 전환이라는 비판 사이에서 거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일본은행이 2006년 3월을 출구 시점으로 선택한 첫 번째 이유는 양적완화의 종료 조건이 충족되었고 시장에 약속한 물가 기준에 따라 양적완화 정책을 종료함으로써 중앙은행의 신뢰성을 지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근원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2005년 11월 플러스로 전환했고 2006년 1월에는 0.5%를 기록했다. 일본은행 정책위원 대부분은 물가 상승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 등을 바탕으로 사전에 제시한 종료 조건이 충족되었다고 판단했다. 당초 제시한 기준에 따라 양적완화를 마무리하는 것이 시장 신뢰와 통화정책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나카하라 신 위원이 물가 흐름을 추가로 확인할 필요가 있고 회계연도 말 금융시장 안정도 고려해야 한다며 4월 연기를 주장했으나 결국 양적완화 종료안은 8명 중 7명의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두 번째 이유는 실물경제와 금융시스템이 회복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일본은행의 판단이었다. 2002년부터 시작된 장기 경기 확장세는 수출 증가와 기업 실적 개선을 이끌었다. 또한 버블 붕괴 이후 일본 경제의 회복에 가장 큰 장애물로 작용했던 기업 부문의 과잉부채·과잉설비·과잉고용 이른바 ‘3대 과잉’도 어는 정도 해소되고 있었다. 기업들은 부채를 줄이고 불필요한 설비와 인력을 정리하면서 재무구조와 사업 구조를 개선했으며 이러한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면서 설비투자도 다시 늘리기 시작했다. 은행 부문에서도 부실채권 정리가 일단락되면서 자산 건전성이 개선되고 기업 대출이 확대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었다.

세 번째는 선제안내 효과의 약화와 초과 유동성의 부작용이었다. 금융시장이 안정을 찾으면서 막대한 당좌예금 잔액을 유지할 필요성이 줄어들었고 물가가 반등하면서 정책을 지속한다는 약속이 장기금리를 낮추는 효과도 현저히 약화되었다. 오히려 장기간의 초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이 단기 자금시장의 거래를 위축시키고 신용위험에 따른 금리 차별화 등 시장의 가격 결정 기능(Price Discovery Function)을 마비시킨다는 우려가 커졌다.

그러나 일본은행이 양적완화 정책 종료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부와의 마찰은 피할 수 없었다. 재무성과 내각부는 디플레이션 종식을 확신하기에는 이르다며 3월 단칸 조사와 4월 주요 지표를 확인한 뒤 신중히 결정할 것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행은 독립적 중앙은행으로서 정책 판단의 책임을 다한다는 명분 아래 조기 출구를 강행했다.

문제는 출구전략 단행 직후 발생했다. 2006년 8월 소비자물가지수 기준연도 변경 결과 출구전략의 결정적 근거였던 과거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하향 조정되면서 지표가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이다. 일본은행은 출구전략 결정 당시 공표된 통계에 기초해 정당한 절차를 밟았으나 결과적으로 일본은행은 결과적으로 오류가 드러난 개정 전 통계에 의존해 디플레이션 탈출을 오판하고 정책을 전환한 셈이 되었다.

이후 일본은행은 2007년 콜금리를 0.5%까지 인상했으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초대형 대외 악재가 발생하자 일본 경제는 다시 디플레이션에 빠졌다. 2006년의 출구전략을 디플레이션 재발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당시의 경제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전망한 나머지 성급하게 정책을 전환했다는 비판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2006년 3월의 출구전략은 중앙은행에 중요한 정책적 과제를 남겼다. 사전에 제시한 정책 약속을 준수해 통화정책의 신뢰성을 지키는 동시에 디플레이션이 완전히 종식되었는지 확인할 때까지 신중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일본은행은 양적완화 종료 조건부 약속의 이행에 충실했으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침체와 물가 하락이 심화되면서 일본 경제는 다시 디플레이션에 빠졌다. 이러한 경험은 중앙은행이 양적완화 정책의 출구를 모색할 때 단기적인 지표 개선뿐만 아니라 경제의 자생적 회복력과 예상치 못한 충격에 대응할 정책 여력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미완의 실험, 세계 중앙은행의 교훈이 되다

2001년 일본은행의 양적완화는 제로금리 제약 속에서 대규모 유동성 공급과 정책 지속 약속을 결합한 사상 최초의 비전통적 통화정책의 실험이었다. 이 정책은 금융시스템을 안정시키고 초저금리 환경을 정착시키는 데는 성공했으나 민간의 신용 수요와 투자를 근본적으로 되살려 디플레이션을 종식시키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은행권의 부실채권 누적과 버블 붕괴 이후 기업·가계의 '대차대조표 조정'이 맞물린 상황에서는 중앙은행이 아무리 막대한 본원통화를 풀더라도 실물경제의 자생적 회복으로 이어지는 데는 구조적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절반의 성공'이 현대 통화정책사에 남긴 유산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일본의 경험은 제로금리 하한에서 선제안내가 향후 금리와 통화정책의 방향에 대한 시장의 기대를 관리하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유동성 공급만으로는 경제 회복을 이끌 수 없으며 금융시스템의 건전성과 민간의 재무구조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2006년의 섣부른 출구전략은 세계 중앙은행들에 결정적 반면교사가 되었다. 일시적인 물가 반등이라는 단기적 지표에 얽매 양적완화 정책을 서둘러 종료하기보다 물가 상승의 지속 가능성과 예상치 못한 대외 충격에 대응할 정책 여력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일본은행의 선구자적 정책 실험은 디플레이션 퇴치라는 목적을 완수하지는 못했으나 비전통적 통화정책의 효과와 한계를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금융위기와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하면서도 물가가 안정되면 이를 적절한 시점에 정상화해야 하는 오늘날의 주요국 중앙은행들에 일본의 고통스러운 정책 실험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귀중한 교훈이다.

김성민 교수(전.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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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디플레이션과의 전쟁, 절반의 성공: 2001-2006년 일본은행의 양적완화 정책의 진실 [김성민의 일본 위기 딥리뷰] 2000년 8월 제로금리 정책을 성급하게 종료했던 일본은행은 경기 둔화와 디플레이션 압력이 심화되자 2001년 2월 금리를 사실상 다시 제로 수준으로 되돌렸다. 그러나 이미 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인하한 상황에서 전통적인 금리 인하 정책은 더 이상 활용할 여지가 거의 없었다. 2001년 3월 16일 일본 정부는 일본 경제가 완만한 디플레이션 상태에 있음을 공식 인정했다. 이러한 경제 상황에서 일본은행은 3월 19일 통화정책의 운용 목표를 무담보 1일물 콜금리에서 금융기관들이 일본은행에 예치한 당좌예금 잔액으로 전환하는 파격적인 조치를 단행했다. 이는 중앙은행이 공급하는 유동성의 '양(Quantity)'을 직접 조절하는 양적완화(Quantita 2 저축은행, 부실 넘어 ‘체력’ 키워야 “부실을 다 정리해도 다시 부실이 새로 생깁니다.”최근 만난 한 저축은행 관계자가 올해를 돌아보며 한 말이다. 쌓아야 할 충당금은 다 쌓고 손실도 털어냈지만, 새로 생기는 부실이 계속 발목을 잡는다는 얘기다.부실채권을 정리하려면 담보 부동산을 팔아 자금을 회수해야 하지만 이마저 쉽지 않다. 매수자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 거래가 번번이 틀어진다. 주거용 오피스텔은 보유 주택 수에 포함돼 세금 부담이 커 임대 수요가 있어도 선뜻 사려는 사람이 드물다. 부실 정리가 예상보다 늦어질 수밖에 없다.이러한 고민은 비단 한 회사만의 일이 아니다. 저축은행은 은행 문턱을 넘기 어려운 서민과 중소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만큼 경기 변 3 선즉제인(先則制人)의 시간 맞은 탄소크레딧 시장 사마천의 《사기》 〈항우본기〉에는 ‘선즉제인(先則制人, 後則爲人所制)’ 고사가 나온다. 진나라 말기 회계군 태수 은통이 항량에게 반란을 제의하며 건넨 말이다. 먼저 하면 제압하고, 뒤처지면 제압당한다는 뜻이 담겼다. 국제 탄소크레딧 시장에는 이 말이 딱 들어맞는다. 준비가 늦으면 탄소 비용만 더 치르는데 그치지 않는다. 남이 만든 규칙을 따라야 한다. 시장의 주도권까지 내줄 수 있다.탄소 규제는 이미 기업의 장부에 들어왔다. 당장 내년에는 국제항공 탄소상쇄·감축제도 (CORSIA)가 2단계에 들어간다. 국제선을 운항하는 항공사가 정해진 기준보다 탄소를 더 배출하면 초과분만큼 탄소크레딧을 사서 메워야 한다.박지혜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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