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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나카 개혁의 성과와 대가: 레소나은행과 다이에이의 구조조정 [김성민의 일본 위기 딥리뷰]

김성민 교수(전.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교수)

smkim54@gmail.com

기사입력 : 2026-10-26 14:30

다케나카 개혁의 성과와 대가: 레소나은행과 다이에이의 구조조정 [김성민의 일본 위기 딥리뷰]
2002년 10월 발표된 이른바 다케나카 플랜으로 지칭되는 ‘금융재생 프로그램’은 일본 금융시스템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던 부실 처리를 미루는 관행을 종식시키려는 시도였다. 은행의 자산을 엄격하게 평가하고 부실채권에 따른 손실을 지체없이 인식하도록 한 이 정책은 일본 금융시스템의 부실채권 정리를 본격화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부실채권의 손실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은행의 자본 건전성을 회복하고 채무기업의 상환 능력을 개선하는 일까지 이루어져야 금융시스템을 정상화할 수 있다는 점이 입증되었다.

그러나 부실채권 정리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비용이 발생했다. 손실이 드러나면서 은행권은 자본 확충과 대규모 채무 감면이라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고 과도한 부채에 시달리던 기업들 역시 사업 재편과 채무 조정을 피할 수 없었다. 부실 정리를 통한 금융시스템의 건전성 회복은 은행과 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했지만 기업의 경영 활동과 고용에도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겼다.

대형 은행인 레소나은행은 2003년 자본 부족 문제로 대규모 공적 자금을 지원받았으며 이에 따라 정부의 경영 개입과 경영진 교체가 이루어졌다. 유통 대기업 다이에이 역시 누적된 부채와 경영 부진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규모 채무조정과 사업 재편을 추진해야 했다. 두 사례는 금융기관의 부실 정리와 기업 구조조정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다케나카 개혁의 의의를 평가하려면 부실채권 정리와 금융시스템의 건전성 회복이라는 성과뿐 아니라 정책 집행 과정에서 드러난 한계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부실 정리가 불가피하더라도 그 속도와 방식에 따라 금융기관의 자본 확충 부담, 기업의 경영 정상화 가능성,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레소나은행과 다이에이의 사례는 이러한 정책적 선택의 결과를 구체적으로 검토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레소나은행 사태: 공적 자금 투입과 금융개혁의 전환점

2002년 10월 발표된 금융재생 프로그램은 일본 금융 시스템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던 부실 정리의 지연 관행을 종식시키려는 시도였다. 은행의 자산을 엄격하게 평가하고 부실채권에 따른 손실을 신속히 인식하도록 한 이 정책은 일본 금융시스템에서 부실채권 정리를 본격화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2002년 10월 금융재생 프로그램 발표 당시 이연법인세자산을 은행의 자기자본으로 인정하는 범위를 제한하는 방안은 정치권과 은행들의 반발로 구체적인 한도 설정이 추후로 미뤄졌다. 특히 은행이 자기자본비율을 계산할 때 산입할 수 있는 이연법인세자산을 어느 정도로 제한할 것인지가 핵심 쟁점이었다.

2003년 3월 결산을 앞두고 이 문제가 다시 부각되었다. 다케나카 금융담당 장관은 공식적인 규정 변경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도 감사법인의 엄격한 자산 평가를 통해 수익 전망이 불투명한 은행의 이연법인세자산에 대해 보수적으로 자본금으로 인정하도록 유도하려고 했다. 이에 자민당 내 보수파는 공식 규정에도 없는 기준을 사실상 강요하고 있다며 반발했고 결산 직전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면 많은 대형 은행들이 자본 부족에 빠질 수 있다는 이른바 ‘3월 위기설’을 제기하며 다케나카의 퇴진까지 요구했다.

감사법인들은 다케나카의 엄격한 부실 정리 요구와 이에 반발하는 자민당 내 보수파의 움직임 그리고 이연법인세자산의 자기자본 인정 기준 강화에 따른 은행의 자본 부족 우려가 맞물린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들은 회계 원칙의 엄격한 적용이라는 원칙론과 그 결과가 은행의 자본 건전성과 금융시장에 미칠 파장 사이에서 복잡한 딜레마에 직면해 있었다.

이러한 팽팽한 대립 관계는 2003년 5월 레소나은행의 자본 부족 사태를 계기로 결국 수면 위로 불거졌다. 감사법인이 이연법인세자산이 향후 실제 절세 효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엄격하게 검증하면서 이를 자기자본으로 인정하는 범위가 대폭 축소되었다.

그 결과 레소나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은 급격히 하락했으며 숨겨져 있던 자본 부족 문제가 정식으로 표면화되었다. 수정된 결산을 기준으로 레소나그룹의 연결 자기자본비율은 3.8%로 하락해 국내 영업 은행에 요구되는 최소 자기자본비율인 4%보다 낮았다. 이는 예금보험법에 따른 공적자금 투입 요건에 해당하는 수준이었다. 이 사례는 이연법인세자산을 자기자본으로 인정할 수 있는 범위를 엄격하게 평가하면 은행의 자본 부족이 드러나고 정부의 개입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3년 5월 17일 고이즈미 총리가 주재한 금융위기대응회의는 예금보험법 제102조에 따라 레소나은행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정부는 은행의 자본 부족이 금융시스템 전반에 대한 신뢰 저하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공적 자금 투입을 통한 자본 확충을 결정했다. 다케나카는 이 조치가 은행의 파산을 막고 회생을 지원하는 한편 금융위기가 확산된 뒤 사후적으로 수습하기보다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대응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공적 자금 투입이 은행의 회생과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점을 시장에 전달하려 했다.

이 조치는 과거의 은행 자본 확충 방식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1990년대 후반 활용되었던 ‘금융기능조기건전화법’은 의결권 없는 우선주 인수를 통해 기존 경영권을 유지해 주는 온정주의적 지원에 가까웠으며 이 법은 2001년 3월로 시한이 만료된 상태였다. 이후에도 은행권의 자본 부족이 지속되자 정부가 새로 꺼내 든 카드는 예금보험법 제102조에 따른 공적 자금 투입이었다. 레소나은행은 5월 30일 공적자금을 정식으로 신청했고 금융청은 6월 10일 총 1조 9,600억 엔의 자본 확충을 승인했다. 이번 지원은 의결권 있는 보통주(2,964억 엔)와 의결권부 우선주(1조 6,636억 엔)를 대량 인수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로써 정부는 레소나그룹의 의결권 70% 이상을 확보하며 은행을 사실상 국유화했다.

그러나 대규모 공적 자금 투입만으로 은행의 경영 정상화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다. 레소나은행이 공적 자금을 상환하고 경영을 정상화하려면 수익성을 높이고 자산 건전성을 개선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경영진의 책임을 묻고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조치를 병행했다. 레소나은행은 경영진 교체와 인력 및 비용 감축 등을 포함한 경영 정상화 계획을 제출했으며 6월 27일 주주총회에서는 이사회 개편과 새로운 경영 체제 구성이 승인되었다. 이 과정에서 동일본철도회사 부사장 출신의 호소야 에이지가 새로운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이는 기존 경영진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외부 인사를 통해 경영 정상화를 추진하려는 조치였다.

레소나은행에 대한 공적 자금 투입과 경영진 교체 및 지배구조 개편은 부실 은행을 처리하는 정부의 원칙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음을 보여주었다. 부실채권에 따른 손실을 회계에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미루더라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며 엄격한 자산 평가로 손실이 드러나 자본 부족이 확인되면 정부의 개입과 경영진 교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이는 공적 자금 투입의 목적이 은행의 자본 부족을 해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경영 책임을 묻고 필요한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데까지 확대되었음을 의미한다.

레소나은행 사태의 의미를 평가할 때는 부실채권 비율의 변화와 정부의 부실 은행 처리 원칙에 나타난 변화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공적 자금 투입이 이루어지기 전인 2002년 9월부터 2003년 3월 사이에도 주요 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은 이미 하락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후의 부실채권 정리를 레소나은행 사태의 직접적인 결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 사건의 의미는 부실채권 비율을 낮추는 데 직접 기여했는지 여부보다 부실 처리를 미루어 왔던 은행의 관행에 제동을 걸고 손실 인식과 경영 책임에 관한 정부의 대응 원칙을 구체적으로 드러냈다는 데 있다.

도쿄대학의 호시 다케오는 레소나은행 사태를 일본 은행들의 부실 처리 관행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온 계기로 평가했다. 실제로 감사법인의 엄격한 이연법인세자산의 평가가 은행의 자본 부족을 표면화하고 이에 따른 공적 자금 투입이 정부의 경영 개입과 경영진 교체로 이어졌다. 이 사건은 부실채권에 따른 손실을 충분히 인식하지 않은 채 처리를 미루는 방식으로는 은행의 자본 부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결국 정부의 개입과 경영진 교체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후 주요 은행들이 이연법인세자산을 보다 보수적으로 평가하고 관련 정보의 공개를 강화한 점도 이러한 변화의 일부였다. 다만 부실채권을 기존 차입금의 연장이나 추가 대출로 계속 유지하는 에버그리닝 관행이 줄어든 배경을 레소나은행 사태 하나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부실채권 정리 정책과 은행 감독 강화가 함께 추진되는 가운데 레소나은행 사태는 부실 처리를 미루는 방식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한 대응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아시카가은행 사태: 금융기관 퇴출과 국가 관리의 원칙

그러나 이러한 인식의 변화가 곧바로 금융시스템 전반의 안정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감독당국의 자산 평가 및 손실 인식 기준이 엄격해지면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부실이 추가로 확인되고 일부 은행의 자본 건전성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2003년 11월 초 도치기현의 지방은행인 아시카가은행을 둘러싸고 경영 위기설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같은 해 9월 반기 결산에서 감사법인이 이연법인세자산을 엄격하게 평가해 자기자본 인정 한도를 대폭 삭감함에 따라 자기자본비율이 크게 미달한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레소나은행 사태와 마찬가지로 이연법인세자산의 자본 인정 문제가 쟁점이 되었으나 아시카가은행의 상황은 훨씬 심각했다. 레소나은행은 자기자본비율이 국내 영업 은행에 적용되는 최소 자기자본비율(4%)을 밑도는 상황에서도 공적자금 투입을 통한 재건이 가능했던 반면 아시카가은행은 기존 주주의 자본이 사실상 소진되어 자기자본 자체가 잠식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는 단순히 자기자본비율이 최소 기준에 미달하는 수준을 넘어 기존 주주와 경영진에게 더 이상 은행의 수습과 경영 정상화를 맡길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의미했다.

이에 따라 2003년 11월 29일 금융위기대책회의는 예금보험법 제102조 제3호를 적용하여 아시카가은행을 국가 관리 아래 두기로 결정했다. 이는 기존 경영 체제의 회생을 도모하며 공적자금을 투입했던 레소나은행 사례와 달리 국가가 직접 개입해 은행의 전면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특별한 절차였다. 이에 따라 아시카가은행에서는 기존 주주의 지분이 전부 소각되었으며 국가 주도 아래 부실채권 정리와 경영 정상화가 추진되었다. 이는 공적자금 투입이 기존 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은행의 재무 상태와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고려해 주주의 손실 부담과 구조조정 방식을 결정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이후 아시카가은행은 성공적인 부실 정리와 경영 정상화를 거쳐 다시 민간에 매각되었다. 이 사례는 부실 금융기관을 대주주 책임이나 과감한 구조조정 없이 무조건 공적자금만 투입하던 기존의 방식에 의존하기보다 일시적 국유화를 통해 근본적으로 정돈하는 방식 역시 유효한 금융 안정책이 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즉 자본이 잠식된 금융기관이라도 기존 주주 지분 소각과 경영진 퇴출 등 국가 관리하의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정상화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이다.

다이에이 구조조정: 관료적 저항을 넘어선 부실 정리

2002년 산와은행과 도카이은행의 합병으로 출범한 UFJ은행은 종합 금융그룹을 지향하는 대형 은행인 한편 유통 공룡이었던 다이에이 등 대형 부실기업의 주채권은행이기도 했다. 당시 금융감독 강화 분위기 속에서 부실채권 정리와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은 은행의 생존이 걸린 핵심 과제였다.

그러나 UFJ은행은 다이에이 등 경영난에 빠진 주요 기업에 대한 엄격한 자산 평가와 손실 인식을 미루기 위해 감독당국의 검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관련 자료를 은폐했다. 이른바 ‘UFJ은행 검사 기피’ 사건이다. 금융청은 이를 용납하지 않고 UFJ은행과 관련 임원들을 검찰에 고발했으며 2005년 4월 도쿄지방법원은 은행 법인에 벌금 9,000만 엔을 그리고 전직 임원 3명에게는 유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금융감독이 단지 자산 평가와 자본 비율 점검에 그치지 않고 검사 과정의 투명성과 피검기관의 준법 태도 그리고 부실기업 처리 방식 전반에 대한 감독으로 확대되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였다. 또한 부실기업 문제를 감추기 위한 회피와 은폐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음을 분명히 각인시켰다.

UFJ은행의 검사 기피 사건의 이면에는 심각한 경영난에 빠진 다이에이에 대한 부실채권 문제가 자리 잡고 있었다. 1957년 오사카의 소규모 약국으로 시작한 다이에이는 '좋은 물건을 더 싸게'라는 슬로건 아래 생산자 중심의 유통 관행을 파괴하면서 급성장했다. 제조사의 가격 통제에 맞선 파격적인 할인 판매는 소비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고 다이에이는 1972년 소매업 매출 1위 그리고 1980년 업계 최초 연매출 1조 엔 돌파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나아가 편의점, 외식업, 프로야구단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명실상부한 일본의 대표 유통 제국을 구축했다.

하지만 다이에이의 급격한 외형 확장 뒤에는 과도한 차입과 부동산 투자로 인한 취약한 재무구조가 자리 잡고 있었다.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전제하에 차입금으로 점포와 사업을 늘렸으나 1990년대 초 버블 붕괴로 자산 가치가 폭락하자 막대한 부채가 경영을 압박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무리한 사업 다각화에 따른 수익성 저하에 더해 1995년 고베 대지진이라는 악재까지 가세하면서 다이에이는 자력 회생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권은행들은 다이에이의 부실을 신속하게 정리하기보다 대출을 연장하고 추가 지원을 제공하며 다이에이 측이 내놓은 실효성 없는 자구안을 그대로 묵인하는 데 급급했다. 이러한 대응은 당장의 손실 인식을 늦출 수 있었지만 기업의 재무구조와 사업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못할 경우 부실이 누적되어 손실 규모가 더욱 커질 수 있었다. 다이에이는 여러 차례 회생 계획을 제시했으나 과감한 사업 축소와 채무 조정을 포함한 근본적인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 결과 다이에이는 부실기업에 대한 대출 연장과 회생 지원이 오히려 구조조정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이른바 ‘좀비 기업’ 문제의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다이에이 문제는 개별 기업의 경영 실패를 넘어 일본의 부실채권 정리 정책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였다. 은행이 부실채권을 회계상 손실 처리하는 데 그치고 기업의 채무 부담을 줄여주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의 경영난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기업의 자산과 사업성을 원점에서 재평가하여 회생 가능한 사업은 살리고 지속 가능성이 없는 사업은 과감히 매각·정리하는 기업 구조조정이 함께 이루어져야 했다.

다케나카 헤이조가 추진한 금융개혁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은행의 부실채권 정리와 기업 구조조정을 연계하는 방향으로 확대되었다. 다케나카는 다이에이 등 부실 기업의 기존 회생 계획이 수시로 수정되면서도 성과를 내지 못한 근본 원인을 관료 조직의 안일한 행정 관행에서 찾았다. 특히 다이에이의 소관 부처인 경제산업성과 기존 지원을 주도했던 일본정책투자은행은 그동안 자신들이 범한 정책 오류가 표면화되는 것을 회피하고자 산업재생기구를 통한 고강도 구조조정에 강력히 반대했다. 산업재생기구를 활용한 구조조정으로의 전환은 기존 회생 계획의 실패를 인정하고 정부 부처와 정책금융기관의 개입 방식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함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관료 사회의 미온적 태도와 기존 방식의 한계를 타개하기 위해 다케나카 금융담당상은 ‘산업재생기구’를 통한 다이에이의 전면적 정리를 추진했다. 2003년 4월 출범한 산업재생기구는 주채권은행과 소관 부처 중심이었던 기존 기업 구조조정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상설 전담 기구였다.

당시 일본에는 이미 ‘정리회수기구’라는 기관이 존재했다. 그러나 정리회수기구의 역할은 주로 부실채권의 회수와 처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이러한 방식만으로는 부실채권을 발생시킨 기업의 사업 구조와 재무 문제까지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웠다. 반면 다케나카의 산업재생기구는 달랐다. 부실채권의 사후 처리에 그치지 않고 기업의 재무구조와 사업 구조를 재편해 회생을 추진했다. 이 기구는 회생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선별해 채권을 매입하고 필요한 신규 자금을 공급했다. 동시에 산업재생기구는 회생 가능성이 낮은 사업 부문은 매각하거나 청산하도록 유도했다.

산업재생기구는 10조 엔에 달하는 막대한 정부 보증을 기반으로 출범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원활한 자금 조달을 위한 재정적 한도였을 뿐이다. 실제 이 기구가 채권 매입 시한이었던 2005년 3월 말까지 매입한 채권 규모는 약 5,305억 엔 수준이었다. 결국 산업재생기구의 성과는 부실채권을 얼마나 많이 매입했느냐가 아니라 채권 매입과 자금 지원을 통해 기업의 사업 구조를 얼마나 실질적으로 재편했느냐에 달려 있었다.

산업재생기구가 지향한 이러한 구조조정 방식은 기존의 관료·은행 주도 지원 체제와 정면으로 충돌했고 그 대립이 가장 선명하게 표출된 사례가 바로 다이에이 처리 과정이었다. 2002년 10월 일본정책투자은행은 UFJ은행 등 주요 채권은행과 함께 다이에이 기업재건펀드를 조성했다. 일본정책투자은행은 약 3개월간의 조사 끝에 다이에이의 자율적인 회생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해 이 펀드에 100억 엔을 출자했다. 다이에이 기업재건펀드는 이 자금을 활용해 다이에이의 전략적 투자를 지원하고 기존 회생 계획의 이행을 점검하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기존 회생 계획을 유지하는 방식의 지원은 오래 지나지 않아 한계를 드러냈다. 2004년에 이르러 다이에이의 구조조정 방안을 둘러싼 내부 갈등이 표면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주요 채권은행들은 기존의 민간 주도 회생 계획으로는 부실을 충분히 정리하기 어렵다고 보고 산업재생기구의 활용을 요구했다. 반면 다이에이 경영진은 경제산업성의 정책적 지원을 발판 삼아 자체 자구안을 통한 경영 정상화를 고수하려 했고 경제산업성 역시 소관 기업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고자 다이에이 측의 자구안을 적극 지지했다. 이는 기존 회생 계획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기업의 자산과 사업을 다시 평가하고 채무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것인지를 둘러싼 대립이었다.

2004년 10월 초 산업재생기구는 다이에이와 주요 채권은행에 지원 요청 시한을 통보하며 장기간 이어지던 교착 상태를 타개하려 했다. 주요 채권은행들 역시 기한 내에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면 자금 지원을 전면 중단하겠다면서 다이에이 경영진을 강하게 압박했다. 다이에이는 10월 12일까지도 자율 회생 입장을 고수하며 끝까지 저항했으나 결국 은행권과의 막판 협의 끝에 다음 날인 10월 13일 산업재생기구의 관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산업재생기구는 그해 12월 28일 다이에이에 대한 지원을 결정했다. 지원 계획에는 금융기관의 채무 면제와 산업재생기구 및 민간 후원 기업의 출자뿐 아니라 수익성이 낮은 점포의 폐쇄, 비핵심 사업의 매각, 핵심 소매사업 중심의 사업 재편 등이 포함되었다. 이는 기존의 회생 계획을 연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의 사업성과 채무 상환 능력을 재평가해 재무구조 개선과 사업 구조조정을 함께 추진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전환되었음을 보여준다.

이후 다이에이는 경영진 교체와 점포 정리와 비핵심 사업 매각 등을 추진했다. 54개 점포가 폐쇄되었고 후쿠오카 다이에이 호크스 구단도 매각되었다. 이러한 조치는 사업 규모를 유지하는 것보다 수익성과 재무 건전성을 회복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이처럼 단호한 구조조정을 이끌어낸 다이에이 사례는 단일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넘어선 정책적 의미를 지녔다. ‘대마불사’라는 믿음과 관료적 타성에 맞서 대형 부실기업의 사업 구조와 재무구조를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였기 때문이다. 금융 부문의 부실채권 정리와 실물 부문의 사업 재편을 연결하는 과정에는 거센 저항이 따랐지만 두 부문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일은 금융시스템의 안정과 기업의 경쟁력 회복을 위해 피할 수 없는 과제였다. 다이에이 사례는 이러한 구조조정의 필요성과 어려움을 보여주었다.

지연된 수술’의 마침표: 규율의 회복과 금융 시스템의 정상화

레소나은행과 다이에이의 사례는 다케나카 개혁이 단순한 회계 기준의 변경을 넘어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정리와 기업의 사업 구조조정을 촉진하려는 시도였음을 보여준다. 부실을 감추거나 처리를 미루는 대신 손실을 드러내고 공적 자금 지원을 경영개선과 책임 추궁에 연결하는 것이 개혁의 핵심이었다. 금융청은 공적 자금을 지원받은 은행들에 구체적인 경영개선 계획과 정기적인 이행 보고를 요구했으며 검사에 부적절하게 대응한 UFJ그룹에는 경영진 사임과 형사 고발로 이어지는 조치를 취했다. 이는 부실을 방치하거나 감독을 기피하는 행태를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당국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었다.

개혁의 성과는 주요 은행의 부실채권 비율 하락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부실채권 비율은 2002년 3월 말 8.4%에서 2005년 3월 말 2.9%로 낮아져 다케나카가 주도한 금융재생 프로그램의 정량적 목표인 2004년도 말까지의 절반 수준 감축을 달성했다. 부실채권 정리는 은행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금융중개 기능을 회복하는 데 기여했다. 다만 지방은행 등 금융권 전체의 부실채권 문제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또한 이른바 ‘이자나미 경기’로 불리는 장기 경기 확장을 부실채권 정리의 성과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수출 증가와 세계 경제의 성장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과에는 적지 않은 대가가 따랐다. 엄격한 자산 평가와 손실 인식은 일부 금융기관의 자본 부족을 드러냈고 기업 구조조정은 기업 활동과 고용에 부담을 주었다. 그러나 부실 처리를 미루는 방식으로는 은행의 재무건전성을 회복하고 자금을 생산적인 부문으로 유입시키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단기적인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부실을 드러내고 손실을 인식하는 것이 금융시스템을 회복하기 위한 필수조건이었다.

일본의 경험은 부실채권 문제를 해결하려면 명확한 정책 목표뿐 아니라 엄격한 자산 평가와 손실 인식 기준, 실효성 있는 자본 확충 조건, 이행 상황을 점검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공적 자금 지원 역시 단순히 자본 부족을 충당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당국의 엄정한 감독하에 철저한 경영 개선이 동반되어야 한다. 아울러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기 위축과 고용 감소에는 적극 대응하되 단기적인 부작용이나 고통이 두려워 부실 처리를 미루어서는 안 된다.

다케나카 개혁이 당시 일본 경제가 안고 있던 과제들을 완벽히 해결한 것은 아니었지만 부실 처리를 미루던 관행에서 벗어나 손실을 드러내고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정리와 기업의 사업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금융위기 극복의 핵심은 부실에 따른 손실과 진통을 회피하거나 미루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부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회생과 정리의 기준을 분명히 하며 그에 따른 비용과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 이를 신속하고 엄정하게 집행하는 데 있다.

김성민 교수(전.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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