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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뤄진 부실 정리의 전환점: 다케나카 플랜과 일본 금융의 대수술 [김성민의 일본 위기 딥리뷰]

김성민 교수(전.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교수)

smkim54@gmail.com

기사입력 : 2026-10-12 06:00

미뤄진 부실 정리의 전환점: 다케나카 플랜과 일본 금융의 대수술 [김성민의 일본 위기 딥리뷰]
1990년대 일본 금융위기가 장기화된 핵심 요인은 부실채권의 규모 자체보다 부실을 조기에 인식하지 못하고 정리를 미룬 데 있었다. 1990년대 초 자산 버블이 붕괴하면서 은행권에는 막대한 부실채권이 쌓였지만 정책당국은 금융시스템에 미칠 충격을 우려해 부실이 표면화되는 것을 기피했다. 그 과정에서 회생 가능성이 낮은 기업에 기존 대출을 연장하거나 추가 대출을 제공하는 이른바 ‘에버그리닝’이 나타났고 은행들은 손실을 장부에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채 부실기업의 퇴출과 부실채권 정리를 지연시켰다. 금융시스템은 겉으로 안정을 유지하는 듯했지만 이는 부실채권의 정리와 그에 따른 손실 인식이 이루어진 결과가 아니라 부실 처리를 지연한 데에 따른 허상에 불과했다.

그러나 1997~1998년 금융위기가 정점에 달하면서 부실채권의 인식과 정리를 미룬 정책 대응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드러냈다. 1997년 말 주요 금융기관의 연쇄 파산으로 금융시스템 위기가 현실화되자 일본 정부는 일본은행의 최종대부자 기능을 활용함과 동시에 예금 전액보장 조치를 단행하여 1차 대응에 나섰으며 이어 1998년 초 관련 법안을 마련하고 대규모 공적 자금을 즉각 투입함으로써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막아냈다. 시스템 위기가 어느 정도 진정된 뒤에도 은행의 부실채권은 충분히 정리되지 않았다.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막는 유동성 지원에만 집중했을 뿐 자산 재평가나 과감한 인적·물적 구조조정 등 내부 부실을 근본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은 뒤로 미루어졌기 때문이다.

1999년 3월 정부의 두 번째 공적자금을 통한 대규모 은행 자본 확충은 시장을 일시적으로 안정시키는 데 기여했지만 은행의 건전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까지 해소하지는 못했다.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부실자산은 오히려 늘어났고 확충된 자본으로 향후 발생할 손실을 얼마나 흡수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했다. 당시 은행 자기자본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이연법인세자산(Deferred Tax Assets, DTA)은 향후 은행이 흑자를 내야만 세금 절감 효과를 볼 수 있는 자산이었다. 따라서 경기침체가 장기화되어 은행이 적자를 내면 아무런 가치도 없는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따라서 위기 상황에서 즉각적으로 손실 흡수에 사용할 수 있는 자본과는 성격이 전혀 달랐다. 여기에 대손충당금 적립 부족까지 겹치면서 부실이 표면화되는 순간 은행의 자본 기반은 단숨에 고갈될 만큼 대단히 취약한 상태였다.

실제로 호시 다케오와 아닐 카시야프(Anil Kashyap)의 분석은 당시 일본 은행들의 자본이 얼마나 취약한 상태에 있었는지를 명백히 보여준다. 2002년 3월 은행들의 공시 자료를 바탕으로 금융당국이 집계한 기본자본(Tier 1)은 30.2조 엔이었지만 이 가운데 10.6조 엔이 이연법인세자산이었다. 호시와 카시야프는 30.2조 엔의 기본자본에서 이연법인세자산 10.6조 엔과 대손충당금 부족분으로 추정한 6.8조 엔을 차감하면 실제 기본자본은 12.8조 엔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이는 30.2조 엔으로 발표된 기본자본의 42%에 불과한 수준으로 당시 은행들이 공시한 자본 규모와 실제 손실을 흡수할 수 있는 자본 사이에 엄청난 괴리가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1999년의 자본 확충은 금융시스템의 즉각적인 붕괴를 방지하는 데는 기여했지만 은행의 손실을 투명하게 털어내고 자본의 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결국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부실채권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 머물지 말고 부실을 투명하게 인식해 손실을 자본에 제대로 반영하고 부실채권을 시장에서 과감하게 정리할 수 있는 체계를 확립해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1년 4월 취임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2002년 9월 다케나카 헤이조 경제재정정책 담당 장관에게 금융 담당까지 겸임하게 하여 장기간 답보 상태에 있던 부실채권 문제 해결의 전권을 위임했다. 이는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한 위기 수습에 집중했던 기존의 대응에서 벗어나 부실채권을 본격적으로 인식하고 정리해야 한다는 정책 전환의 신호였다. 금융 담당 장관을 겸임하게 된 다케나카는 취임 직후 은행의 부실채권을 엄격히 재평가하고 손실을 충분히 반영하는 내용을 담은 금융재생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금융재생 프로그램을 비롯해 이후 그가 추진한 일련의 금융개혁은 이른바 ‘다케나카 플랜’으로 불렸다. 호시 다케오가 지적했듯이 1999년의 자본 투입이 금융시스템에 시간을 벌어주는 조치였다면 실질적인 금융 구조개혁은 다케나카 플랜을 계기로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금융정책의 초점은 위기의 확산을 막는 데서 벗어나 부실을 정확히 분류하고 손실을 자본에 반영하며 이를 실제로 털어내는 데 맞춰졌다. 다케나카 플랜은 이처럼 오랫동안 미뤄졌던 부실채권 청산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전환점이었다.

부실 정리의 조건과 금융안전판

게이오대학 교수 출신의 경제학자였던 다케나카는 정치적 타협이나 기존의 금융행정 방식에 의존하기보다 경제학적 원칙에 입각해 정책을 설계했다. 와세다대학의 와카타베 마사즈미는 다케나카가 학자 출신이면서도 전략적이고 목표 지향적인 방식으로 개혁을 추진했다고 평가한다. 특히 그는 겸직하고 있었던 경제재정 담당 장관이라는 직책을 바탕으로 경제재정자문회의를 정책 결정의 핵심 거점으로 삼았다. 이를 통해 관료 중심의 의사결정 구도를 깨고 민간 전문가의 참여를 확대하는 한편 구체적인 개혁 일정과 목표를 제시하며 관료 조직에 강력한 압박을 가했다. 당시 그가 국회의원이 아닌 민간인 신분이었다는 점 역시 개혁을 추진하는 데 중요한 이점으로 작용했다. 선거와 지역구 관리라는 정치적 부담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자민당 내 파벌이나 이익집단의 이해관계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개혁 과제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일본 경제학계에서는 자산가격 폭락으로 기업의 재무구조가 악화되고 이것이 투자와 경제활동을 위축시켜 경제 전체를 장기 침체로 몰아넣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었다. 오사카대학의 오가와 가즈오는 일본의 장기 침체가 단순한 경기 순환상의 수요 부족이 아니라 자산가격 폭락으로 기업의 재무구조가 악화되면서 투자와 경제활동이 위축된 '대차대조표 훼손'에 있음을 실증적으로 밝혀냈다.

이처럼 기업의 수익성과 상환능력 악화가 장기화되면서 이들에게 자금을 공급한 은행권의 부실채권 역시 급격히 늘어났다. 결국 일본 은행권의 부실대출 비율은 2001년경 총대출의 8.7%에 달하며 정점을 찍었고 이를 정리하기 위한 대손상각 및 충당금 적립 비용 역시 총대출의 2.5%까지 치솟으며 은행 수익성을 크게 악화시켰다. 이와 같이 기업 부실과 은행 부실이 서로 얽혀 있었기 때문에 부실채권 문제는 단순히 은행의 부실자산을 털어내는 차원을 넘어 과도한 부채를 안고 있는 기업의 재무구조 개선과 실물 부문의 구조조정이 동반되어야만 해결될 수 있는 복합적 과제였다.

금융개혁을 주도하게 된 다케나카는 이러한 판단에 따라 부실채권 정리를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이에 따라 민간 전문가와 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전담팀 이른바 ‘다케나카 프로젝트 팀’을 즉시 출범시켰다. 이 팀은 부실채권을 엄격히 식별하고 자본 건전성을 재평가하며 필요할 경우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이를 구체적인 정책으로 발전시키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는 1990년대 내내 금융시스템의 발목을 잡았던 '지연된 부실채권 정리' 관행에 종지부를 찍고 부실을 정면 돌파하려는 강력한 신호탄이었다.

동시에 강도 높은 부실 정리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금융불안을 억제할 안전판도 필요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1996년 금융위기 대응 과정에서 한시적으로 유지해 온 예금 전액보호를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원칙적인 부분보호제도인 ‘페이오프(Pay-off)’로 복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었다. 2002년 4월 정기예금 등에 대한 페이오프가 시행된 데 이어 2003년 4월에는 보통예금 등 결제성 예금에도 부분보호를 적용할 예정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실채권을 본격적으로 정리하면 은행별 자산건전성과 자본 여력의 차이가 드러날 수가 있었다. 특히 예금자들이 경영 부실이나 자산 건전성 악화가 우려되는 은행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인식되는 대형 은행이나 우체국으로 자금을 옮길 경우 개별 은행의 유동성 위기가 금융시스템 전체의 불안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었다.

다케나카는 이러한 위험을 차단하면서 부실채권 정리를 추진하기 위해 금융안전판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고이즈미 총리를 설득해 2003년 4월로 예정됐던 결제성 예금에 대한 페이오프 전면 시행을 1년 연기했다. 이 유예 조치로 부실채권 정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예금자들의 급격한 자금 이동과 금융시장 불안을 완화할 시간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었다. 다케나카는 이 유예 기간을 활용해 은행의 자산건전성을 엄격하게 평가하고 부실채권을 정리하는 한편 손실을 감당할 수 있도록 자본 기반을 강화하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했다.

금융재생 프로그램과 부실 정리의 기준

다케나카 헤이조가 주도한 작업팀은 주요 은행의 부실채권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했다. 이를 바탕으로 2002년 10월 ‘금융재생 프로그램’이 발표되었고 같은 해 11월에는 구체적인 실행 일정을 담은 세부 이행 로드맵이 마련되었다. 정책의 핵심 목표는 주요 은행의 부실채권을 조기에 정리해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구체적인 정량적 목표도 제시되었다. 2002년 3월 말 8.4%였던 주요 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을 2004회계연도 말까지 절반 수준까지 낮추겠다는 것이었다. 부실채권 문제를 장기간 미뤄온 기존의 정책에서 벗어나 명확한 목표와 시한을 제시해 은행의 부실채권 정리를 촉진하려는 조치였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금융재생 프로그램은 부실채권의 평가와 충당금 적립을 엄격하게 하고 은행 자본의 실질적인 건전성을 점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먼저 부실 우려가 큰 대형 차입 기업의 대손충당금 산정 시 미래 현금흐름을 반영한 할인현금흐름법(Discounted Cash Flow, DCF)을 활용하도록 해 자산평가의 엄격성을 높였다. 또한 대형 차입자에 대한 자산분류가 은행마다 크게 달라지지 않도록 일관성을 높이고 은행의 자체평가와 금융청의 검사 결과 사이에 차이가 있을 경우 이를 공시하도록 했다. 이는 대규모 부채를 안고 있는 기업의 부실을 정리하지 않고서는 금융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또한 자본의 질을 높이기 위한 조치도 포함됐다. 이연법인세자산의 자본 인정과 평가 기준을 엄격하게 하고 이연법인세자산의 산출 근거 및 자본 차감 내역에 대한 공시 의무를 강화하여 은행의 실제 손실흡수능력을 엄격히 평가하도록 했다. 동시에 자구 노력이 충분하지 않은 은행에 대해서는 업무개선명령 등 감독조치를 강화하고 필요한 경우 공적자금을 활용해 자본을 확충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했다.

결국 금융재생 프로그램의 핵심은 부실채권 규모를 줄이는 동시에 은행이 부실채권의 가치를 정확하게 평가하고 손실을 인식해 적극적으로 정리하도록 만드는 데 있었다. 이를 위해 부실채권 평가와 충당금 적립기준을 엄격히 적용해 자본의 질을 점검하는 한편 공시와 감독의 수위도 대폭 강화했다.

은행권과 정치권의 저항, 개혁의 진통

다케나카는 프로그램의 골격을 확정한 후 총리 보고를 거쳐 은행권, 정부 부처, 여당인 자민당과의 본격적인 조율에 나섰다. 당시 금융청은 과거 대장성 시절의 유착 스캔들 이후 강화된 청렴 기강 탓에 은행과의 직접 접촉을 극도로 자제해 온 상태였다. 그러나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업계의 반응을 사전에 파악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제한적인 접촉이 재개되었다. 이 자리에서 제시된 다케나카의 부실채권 정리와 자본건전성 강화 구상에 대해 은행권은 이미 금융청의 지도 아래 구조조정을 진행 중임을 강조하며 추가적인 요구에 강하게 반발했다.

정부 내부에서도 부처 간 협조가 중요한 과제였다. 부실채권 정리와 기업의 과잉부채 해소는 서로 분리하기 어려운 문제였기 때문이다. 은행의 자산건전성을 회복하려면 부실기업의 재무구조 개선과 사업 재편이 뒤따라야 했고 이를 위해 금융청과 재무성 그리고 경제산업성의 협력이 필요했다. 이러한 범부처적 협업의 결과로 정부는 2003년 산업재생기구를 설립해 과잉채무 기업의 재무구조 개선과 경영 정상화를 지원하고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정리를 촉진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동시에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단기적인 경기 위축을 완화하기 위해 재정정책도 병행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개혁 과정에서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는 은행이 보유한 자본 가운데 어디까지가 실제 손실을 흡수할 수 있는 자본인지를 판단하는 문제였다. 특히 이연법인세자산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일본 은행들은 앞으로 과세소득이 발생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이 자산이 자기자본의 3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금융당국이 이연법인세자산의 자기자본 인정 한도를 축소할 경우 은행들의 자기자본이 큰 폭으로 감소해 일부 은행은 대규모 자본 확충이 불가피한 상황에 놓일 수 있었다. 다케나카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은행의 명목상 자기자본과 실제 손실을 흡수할 수 있는 자본을 엄격히 구분하려고 했다.

이연법인세자산 문제를 둘러싼 논쟁은 결국 금융재생 프로그램의 강도를 어디까지 높일 것인가를 둘러싼 정치적·제도적 갈등으로 이어졌다. 은행권은 엄격한 자본 기준이 적용될 경우 추가적인 자본 확충과 구조조정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고 정치권에서도 금융기관의 연쇄적인 자본 부족이 금융시스템의 불안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이연법인세자산의 자본 인정 문제는 논란이 계속되면서 금융재생 프로그램에서는 이연법인세자산의 자기자본 인정 한도를 즉시 축소하기보다 추가적인 검토와 제도 개선을 거치는 방향으로 정책이 수정되었다.

이연법인세자산의 자본 인정을 둘러싼 논쟁은 결국 은행이 부실채권을 어떻게 평가하고 그에 따른 손실을 언제 자본에 반영해야 하는가라는 쟁점으로 이어졌다. 당시 일본에서는 자산가치의 하락을 회계상 손실로 반영하는 감손회계(Impairment Accounting)의 적용 범위를 둘러싼 논의도 진행되고 있었다. 금융재생 프로그램은 이러한 논의와 맞물려 은행의 자산건전성 평가를 강화하고 대출기업의 상환능력과 미래 현금흐름을 엄격하게 평가해 예상되는 손실을 대손충당금과 자기자본에 적절히 반영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는 과거의 담보가치나 재무제표에 안주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기업이 앞으로 창출할 현금흐름을 바탕으로 실제 상환능력과 위험을 판단하도록 심사 기준을 근본적으로 바꾼 조치였다. 나아가 금융당국은 은행의 자체적인 자산건전성 평가와 감독당국의 검사 결과 사이에 차이가 있을 경우 그 차이를 그대로 공시하도록 했다. 은행이 부실을 자의적으로 은폐할 여지를 차단하고 실제 재무 상태와 부실 규모를 시장에 공개하도록 압박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은행의 대출 심사에도 영향을 미쳤다. 은행들은 담보가치와 장부가치에 의존해 부실기업에 대한 대출을 계속 유지하기보다 기업의 미래 현금흐름과 상환능력을 바탕으로 대출의 건전성을 판단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출의 상환 가능성을 엄격하게 따지게 되면서 은행은 부실기업에 대한 대출을 단순히 만기 연장으로 유지하기 어려워졌고 기업 역시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사업을 재편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금융당국의 자산분류와 검사 기준이 엄격해질수록 은행의 부실채권 정리와 기업의 구조조정은 서로 연결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금융재생 프로그램은 부실채권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를 넘어 은행의 자산평가와 대출심사 그리고 자본관리 방식 전반에 변화를 요구했다. 은행의 부실채권 장기 보유 및 처리 지연을 차단함으로써 부실기업의 재무구조 개선과 사업 재편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것이다. 금융재생 프로그램이 금융시스템의 부실을 줄이는 데만 그치지 않고 실물 부문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진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고통스러운 손실 인식, 금융개혁의 전환점

다케나카가 주도한 강도 높은 개혁 정책은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높였다. 2003년 3월 결산을 앞두고 엄격한 자산사정 기준이 적용될 경우 대형 은행들이 자본 부족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소위 ‘3월 위기설’이 확산되었다. 실제로 2003년 3월 11일 닛케이 지수는 버블 붕괴 이후 최저 수준인 7,900엔 선마저 하회하며 금융시장에 퍼진 불안을 반영했다.
그러나 엄격한 자산 사정과 손실 인식을 둘러싼 갈등은 단순한 회계기준의 적용을 둘러싼 기술적 논쟁을 넘어 구조적 부실을 조기에 정리해 장기적인 경제 회복을 앞당길 것인지 아니면 단기적인 경기 하방 압력을 줄이기 위해 부실 정리를 늦출 것인지라는 정책적 선택의 문제였다. 다케나카는 전자를 선택했고 그 과정에서 금융시스템 전반의 강한 저항과 시장 불안을 감수해야 했다.

다케나카 헤이조의 금융재생 프로그램은 부실채권 처리와 자산평가, 자본규제, 공시 등 개별 분야의 제도를 각각 개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금융시스템을 작동시키는 규칙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였다. 그는 부실을 미루는 관행을 끊어내기 위해 명확한 목표와 일정을 제시하고 엄격한 자산 사정과 감독을 통해 은행들이 그동안 장부에 충분히 인식하지 않았던 손실을 즉시 반영하도록 했다. 이처럼 장부상에 확정된 손실은 자본 확충과 부실채권 정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만드는 강력한 압력으로 작용했다. 결국 손실의 인식은 부실채권의 회수 가능성을 재평가하고 그에 따른 손실을 회계상 반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은행의 대차대조표와 경영행태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이 같은 접근은 단기적으로 금융권과 정치권의 거센 저항과 불안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반발에 맞서 다케나카는 ‘얼굴이 비뚤어졌는데 거울을 탓해서 무엇 하겠는가’라는 러시아 속담을 인용했다. 금융청의 엄격한 자산사정과 회계기준은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부실과 구조적 결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거울’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개혁을 밀어붙였다.

금융업계와 정치권에서는 은행 파산이나 신용 경색에 대한 불안을 이유로 강하게 반발했지만 다케나카 플랜은 부실을 은폐하거나 처리를 미루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손실을 인정하고 은행의 재무상태를 바로잡는 방향으로 정책 전환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일본의 경험은 금융위기 극복의 출발점이 부실의 엄정한 직시와 투명한 공개에 있음을 보여준다. 고통스럽더라도 부실과 손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필요한 결정을 내릴 때 비로소 금융기관의 재무상태를 바로잡고 금융시스템의 정상화를 시작할 수 있다는 교훈이다.

김성민 교수(전.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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