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재료 가격 급등과 전방 산업 부진이라는 이중고 속에서 현대제철 재무 건전성, 수익성 지표는 수년째 박스권에 갇혀 있다. 현대제철은 가동률이 저하된 한계 자산을 과감히 정리하는 한편, 북미 모빌리티향 신규 투자와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 포트폴리오 고도화를 통해 실적 부진의 늪을 깨기 위한 정면 돌파에 나섰다.
영업이익률·이자보상배율 ‘추락’
최근 국내 철강업계는 중국산 저가 후판 공습, 글로벌 수요 둔화, 전방 산업인 건설 경기 침체 장기화 등 ‘3중고’를 겪고 있다. 현대제철 역시 이 같은 거시적 악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외형적으로는 자산 총액 34조 원을 웃돌며 높은 기업 위상을 유지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가동률이 저하된 울산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당진제철소 일부 전기로 라인을 폐쇄하는 등 강도 높은 한계 자산 효율화에 착수한 상태다.
문제는 이러한 슬림화와 체질 개선 노력이 실제 기업의 본질적 재무 체력 회복으로 이어지고 있느냐다. 시장 일각에서는 현대제철이 현재 매출 규모를 일정 수준 유지하고 있으나, 본업에서 창출하는 실제 이익은 과거에 비해 크게 축소된 상태라고 진단하고 있다.
현대제철 최근 5개년 실적 추이를 살펴보면 이 같은 수익성 하락세가 수치로 고스란히 나타난다. 회사 영업이익률은 철강 업황이 정점에 달했던 2021년 당시 10.71%에 달했다. 하지만 이후 2022년 5.9%, 2023년 3.1%로 급전직하하더니 급기야 지난 2024년 0.7%까지 떨어졌다.
2025년 들어 울산공장 가동 중단과 당진제철소 일부 전기로 라인 폐쇄 등 강도 높은 자산 슬림화 효과가 반영되면서 1.0%로 소폭 반등했으나, 이는 체질 개선이 아닌 고정비를 깎아낸 방어 수준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저수익 구조는 기업 채무 상환 능력을 나타내는 이자보상배율에서 극명히 확인된다. 2021년 13.9배에 달하며 견고한 재무 체력을 자랑했던 현대제철 이자보상배율은 본업 마진 압착이 극에 달한 2024년 0.6배까지 추락했다.
2025년 긴축 경영을 통해 0.9배로 소폭 방어에 성공했으나, 2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배를 밑돌고 있다.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면서, 미래 성장동력을 위한 자체 투자 재원 마련은커녕 외부 차입에 의존해야 하는 악순환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본업 마비’가 갉아먹은 재무 건전성
장기적 저수익 구조 고착화에 분기 적자 충격까지 더해지면서, 시장은 현대제철의 잠재적 부실 위험을 종합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객관적 재무 건전성 지표에 주목하고 있다.현대제철 1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157억 원으로, 190억 원 영업손실을 냈던 전년 동기 대비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하지만 철강 본업 중심의 별도 기준으로 보면 영업손실은 725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561억 원 적자보다 오히려 적자폭이 확대됐다.
이러한 기초체력 약화는 기업의 부도 가능성을 예측하는 재무 척도인 알트만 Z-스코어 경고등으로 이어졌다. 한국금융신문이 자체 구축한 인공지능(AI) 데이터 플랫폼 ‘더 컴퍼스(THE COMPASS)’에 따르면, 현대제철 Z-스코어는 2021년 1.65, 2022년 1.70, 2023년 1.67을 기록한 데 이어 2024년에는 1.46까지 하락했다. 2025년 들어 1.53으로 소폭 반등하긴 했으나, 통상적으로 재무적 리스크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하는 기준선인 1.81을 5년 연속 밑돌고 있다.
현대제철 Z-스코어가 저조한 점수대에 묶여 있는 결정적 원인은 앞서 언급한 영업이익률·이자보상배율 추락과 궤를 같이한다. Z-스코어 모델을 구성하는 5대 변수 중 ‘영업이익/총자산’ 지표가 급격히 하락했기 때문이다.
현대제철 총자산 규모는 효율화 과정을 거치며 2021년 37조423억 원 수준에서 2025년 34조4423억 원 수준으로 줄어들었으나,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조4475억 원에서 2192억 원 수준으로 무려 90%가량 폭락했다.
이에 따라 총자산 대비 영업이익 수치는 2021년 0.07에서 2024년 0.00, 2025년 0.01 수준까지 쪼그라들었다. 가진 자산 체급에 비해 본업 내실이 사실상 마비됐다는 의미다.
다만 시장에서는 이 같은 Z-스코어 장기 저조 현상을 당장 부도 위기에 직면했다고 보기보다는, 본업 마진 압착이 불러온 고질적 밸류에이션 침체 결과물로 해석한다. 경고등과 별개로 실제 기업의 단기 지급 능력과 유동성 방어벽은 여전히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제철은 2025년 기준 11조3175억 원에 달하는 유동자산을 보유한 데다, 유동부채 역시 7조4105억 원 수준으로 타이트하게 관리하며 당장 재무 안정성은 확보해 둔 상태다.
결국 기초체력 면에서 파국 우려는 없다고 하겠지만, 본업 수익성 저하가 발목을 잡으면서 시장 밸류에이션을 끌어올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기로 1위’의 역설
그렇다면 현대제철 내실을 이토록 망가뜨린 수익성 악화의 핵심 고리는 무엇일까. 역설적이게도 그 원인은 현대제철의 최대 강점이자 정체성이었던 ‘전기로’ 부문에서 시작된다.현대제철은 연산 기준 고로(용광로) 방식 1200만t, 전기로 방식 1200만t 규모를 갖춘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를 자랑해 왔다. 특히 전기로는 고철을 재활용해 쇳물을 뽑아내기 때문에 고로 방식 대비 탄소 배출량을 약 20% 이상 줄일 수 있어 탈탄소 시대 핵심 병기로 꼽혔다.
문제는 글로벌 철강사들이 일제히 전기로 확대를 선언하면서 핵심 원재료인 양질의 철스크랩 확보 전쟁이 발발했다는데 있다. 수요는 폭증하는데 공급은 한정되다 보니 철스크랩 전략 자산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현대제철 실적 자료에 따르면, 고급 철스크랩인 ‘중량A’ 가격은 2025년 3월 t당 355달러에서 올해 4월 397달러로 12% 이상 급등했다. 같은 기간 전통 고로 원료인 원료탄(-21%)과 철광석(-3%) 가격이 하향 안정화한 것과 정반대 행보다.
원가 부담을 낮추기 위해 현대제철은 최근 인천공장과 당진제철소에 납품되는 철스크랩 납품 단가를 kg당 15원씩 인상 조정하는 등 고육지책을 쓰고 있지만, 이는 고스란히 투입 원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오른 원가를 제품 가격에 반영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현대제철 전기로 제품의 주 소비처는 계열사인 현대건설을 비롯한 국내 건설업계다. 그러나 건설 경기 침체 장기화로 H형강 유통 가격(t당 1050달러→1080달러)과 철근 기준 가격(810달러→830달러)은 2~3% 수준 제한적인 상승에 그쳤다.
결국 원재료비는 폭등하는데 판매가는 제자리 걸음을 걸으면서 현대제철은 올해 1분기 별도 적자 전환이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탈탄소를 위한 과도기적 대안이 도리어 실적을 갉아먹는 역설적 구조에 갇힌 셈이다.
8.5조 북미 ‘승부수’
현대제철은 국내 전기로 마진 압착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타개하기 위해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과감한 ‘선택과 집중’ 전략을 가동하고 있다. 수익성 떨어진 국내 한계 자산을 정리해 확보한 재원과 역량을 미래 핵심 성장 동력인 북미 친환경 철강 시장에 조준하는 모습이다.현재 현대제철은 포스코, 현대차·기아와 손잡고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총 투자비 58억 달러 규모 전기로 일관제철소 건립을 추진 중이다.
오는 2029년 상업 생산을 목표로 하는 이 초대형 프로젝트는 초기 자본 지출(CAPEX) 부담을 키워 단기적으로는 재무적 유동성과 부채 비율에 부담을 가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선제 대응하는 동시에 북미 친환경 자동차 강판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필수 포석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철강업계와 증권가에서는 이 같은 북미 대규모 투자가 단순한 외형 확장에 그치지 않고 중장기 기업가치 재평가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회사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고부가·친환경 제품군으로의 포트폴리오 재편 작업이 한층 속도를 내야 한다고 분석한다.
현대제철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를 겨냥한 고부가가치 강판 판매 비중 확대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해외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 현대차·기아 등 그룹 내 내부 시장에 편중된 자동차 강판 공급망을, 조지아주 스틸서비스센터(SSC)와 루이지애나 프로젝트 완공 시점에 맞춰 글로벌 로컬 완성차 업체로 다변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통해 독자적인 판가 협상력을 확보하는 것이 향후 북미 시장 수익성 방어의 핵심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아울러 회사는 건설 경기에 연동돼 실적 변동성이 큰 범용 철근·형강 중심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및 글로벌 전력망 확충 등 고부가 에너지 인프라 시장 선점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폭발적 전력 수요로 급증하는 AI 데이터센터 맞춤형 초고중량·고강도 구조재나 에너지 인프라용 특수강재 공급을 늘려 틈새시장을 공략하겠다는 복안이다. 이는 국내 한계 자산 슬림화를 통해 비효율을 걷어낸 자리에 고마진·고부가 강재 공급 능력을 채워 넣겠다는 전략과 궤를 같이한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탄소 중립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원자재 가격 변동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제품 고도화를 통한 마진율 확보가 필수적”이라며 “결국 현대제철이 추진 중인 북미 신규 거점의 조기 안정화와 현대차·기아 외 글로벌 완성차 업체로의 독자적 수주 물량 확보 성과가 얼마나 빠르게 가시화하느냐가 장기 기업가치 향방을 결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채윤 한국금융신문 기자 chaeyun@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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