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화가 증권업의 화두가 되면서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는 '새 먹거리' 출입증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대형사들은 종투사 진입에 그치지 않고, 초대형IB로 성장해서 발행어음 신(新)사업에 진출하는 데 힘을 싣고 있다.
발행어음은 증권사가 자체 신용을 바탕으로 자기자본의 200% 한도 안에서 발행하는 만기 1년 이내 단기 금융상품이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IB 자금 조달에 유리하고, WM(자산관리) 리테일 판매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사업으로 꼽힌다.
현재 단기금융 업무 인가를 받은 발행어음 사업자 증권사는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미래에셋증권이 있다. 20일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들 4개사의 발행어음 잔고 합계는 2025년 3월 말 기준 42조7847억원까지 커졌다.
사업자 별로 보면, 한국투자증권이 17조6052억원으로 압도적인 1위다. 이어 KB증권은 10조3840억원으로 2위다. 3위는 미래에셋증권(7조7024억원), 4위는 NH투자증권(7조932억원) 순이다.
이번에 삼성증권, 메리츠증권, 하나증권, 신한투자증권, 키움증권 등 종투사 5곳이 발행어음 사업 인가 도전장을 냈다. 이들 5개사의 별도 자기자본 합산 규모는 30조567억원(2025년 3월 말) 수준이다. 발행어음 플레이어가 추가돼 시장 규모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출사표를 낸 증권사들은 별도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초대형IB 요건에 부합한다. 2025년 3월 말 기준 삼성증권은 6조8541억원, 메리츠증권은 6조8069억원, 하나증권은 5조9943억원, 신한투자증권은 5조3841억원, 그리고 키움증권은 5조172억원이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7년 자본시장통합법이 신호탄을 쐈고, 2013년 종투사 제도가 최초 도입됐다. 자기자본 수준에 따라 업무범위를 차등화했다.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이면, 기업신용공여, 전담중개업무, 내부주문집행을 할 수 있다.
‘한국판 골드만삭스’ 육성 정책에 따라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은 초대형IB로 지정된다. 5곳의 초대형IB 중 한투증권(2017년), NH증권(2018년), KB증권(2019년), 미래에셋증권(2021년) 등 4곳이 단기금융 업무 인가를 차례로 받고 발행어음 사업에 진출했다.
이번 신규 발행어음 사업자 인가는 약 2~3개월 심사를 거쳐,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위원회 의결을 통해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금융투자업 인가 시 일정 기준 이상의 자기자본, 사업계획의 타당성, 인적·물적 설비, 더불어 대주주의 건전한 재무상태 및 사회적 신용 등을 갖춰야 한다.
이르면 오는 10월 중 인가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보완 기간은 심사 기간에서 제외된다. 내부통제 등이 주요 심사 변수다. 금융당국은 발행어음 신규 인가에 대해 “결격 요소가 없는 한 신속히 인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내년부터 인가 요건이 대폭 강화되는 만큼, 증권사들도 연내 발행어음 사업 라이선스를 취득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짙다.
후보 별로 살펴보면, 특히, 삼성증권의 발행어음 사업 재도전에 관심이 모인다. 삼성증권은 초대형IB 5곳 중 유일하게 발행어음 인가를 못 받았다. 이미 2017년 발행어음 사업 인가 조건을 충족했지만, 대주주 사법 리스크로 심사가 보류됐다. 이후 2018년에는 '유령주식 배당사고'로 어려움이 가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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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당국은 역시 연내에 자기자본 8조원 이상 대상으로 '원금지급-실적배당' 성격의 '1호 IMA(종합투자계좌)' 선정도 예정하고 있다. 현재 한투, 미래에셋이 후보군으로 꼽힌다.
삼성증권의 경우에도 발행어음 사업 인가를 비롯해 향후 IMA 진출까지 고려 중이다. 삼성증권은 지난 2024년 실적 발표에서 "IMA를 고려해 자기자본 8조원을 달성한 후 주주환원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금투업계에서 투자 DNA가 있는 IB 하우스로 손꼽히는 메리츠증권도 출사표를 냈다. 부동산금융에 대한 편중을 해소하고, 최근 DCM(채권자본시장), ECM(주식자본시장) 등 정통 IB 부문으로 영토 확장에 적극 나서고 있다. 메리츠금융지주는 2025년 1분기 컨퍼런스콜에서 "증권 발행어음 인가 신청을 연내로 목표한다"며 "자금은 비(非) 부동산 기업금융 확장, 자금조달 원천 다변화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개인투자자의 주식 브로커리지(위탁매매) 대표 창구로 꼽히는 키움증권도 발행어음 사업 도전장을 냈다. 리테일 부문 강점을 유지하면서도 IB 부문을 보강해서 종합증권사로서 수익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번에 출사표를 낸 하나증권도 주요 은행계 금융그룹 계열의 증권사로 IB 강화 전진기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 초대형IB 자기자본 요건을 충족하는 신한투자증권 역시 이번에 발행어음 사업에 도전장을 냈다.
종투사 각 단계 별로 2년 이상 영위해야 다음 단계 종투사 지정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종투사 전체 운용자산에서 발행어음·IMA 조달액의 25%(2028년 최종)에 상응하는 국내 모험자본을 공급하도록 의무화했다. 반면, 부동산 관련 자산 운용한도는 2027년까지 10%로 내려야 한다.
과점화 된 발행어음 시장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4개사만 발행어음 사업을 영위하다 보니, 회사채 시장을 왜곡한다거나, 자금 조달 수단으로만 활용하고 있다는 등 시장에서 많은 오해가 일어났다"며 “기업금융 활성화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번 개정안에 '부동산 쏠림' 해소를 목표로 운용규제가 강화된 만큼, 증권사들은 경쟁적인 상황에서 사업성 확보가 중요해졌다.
국내 증권사 한 관계자는 “종투사가 늘어나는 동안 운용 가능한 양질의 기업금융 자산이 한정적이라는 게 어려운 여건이다”며 “시장 왜곡을 방지하고 제도를 안착시키기 위해서 보완책도 함께 강구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선은 한국금융신문 기자 bravebambi@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