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수년 간의 준비 끝에 디지털화폐 실험을 시작했지만, 아직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 실험 시작 이후 1달 보름이 넘는 기간 동안 할당된 참가인원을 모두 모집한 곳은 프로젝트 참여 은행 7곳 중 단 두 곳 뿐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들은 "디지털화폐를 썼을 때의 이점이 너무 적다"며 "새로운 접근법과 유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나원큐 앱에서 전자지갑을 개설하고, '예금토큰'으로 두 번 이상 결재한 고객을 대상으로 최대 3000 하나머니와 eSIM 모바일 쿠폰을 제공하는 행사다.
당초 하나은행은 지난 3월 디지털화폐 테스트 '사전 참가자'를 대상으로 eSIM 쿠폰을 제공, 추첨을 통해 커피쿠폰을 증정했는데 이번 이벤트에서는 참가자 전원에게 선물을 제공한다.
우리은행도 이달 초 아이돌 그룹 '트리플에스(tripleS)'와 함께 디지털 화폐 관련 이벤트를 시작했다.
예금토큰으로 트리플에스의 '오브젝트(Objekt)'를 비롯한 K-POP 굿즈를 구매하면 기념 배지와 함께 추첨을 통해 사인 앨범과 쇼케이스 티켓을 제공하는 행사다.
지난 7일에는 '한정판 우리은행X트리플에스 포토카드 구매' 이벤트 진행했다.
우리은행 역시 지난 4월 디지털화폐 실험 시작 당시 현대홈쇼핑 포인트 제공 등 예금토큰 관련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이달 들어 트리플에스와 함께하는 이벤트를 추가로 공개했다.
은행들이 이처럼 디지털화폐 프로젝트에 대한 추가 프로모션에 나선 것은 참가자 확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이번 테스트 참여한 7개 은행 중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만이 모집 인원을 모두 채웠다.
한국은행은 약 10만명의 국민 참가자 모집을 위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에 각 1만 6000명, IBK기업·BNK부산은행에 각 8000명의 참가인원을 할당했는데 이 중 상당수가 정원 모집에 실패한 것이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오전 기준 디지털화폐 테스트용으로 개설된 전자지갑 개수는 약 5만 7000개로, 목표로 한 10만개의 6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실험 참여가 저조한 이유로 '사용 유인 부족'을 꼽는다.
예금토큰의 경우 은행 앱을 통한 'QR결제' 방식이어서, 지문 인식만으로 결제할 수 있는 삼성페이 등 기존 스마트폰 결제보다 편의성이 떨어진다.
사용 혜택 역시 지금으로서는 신용·체크카드 등의 이벤트나 혜택에 비해 미흡한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디지털화폐는 모바일·현물 카드 없이 결제할 수 있다는 점, 가맹점 수수를 대폭 낮출 수 있다는 점 등 장점이 분명하지만 아직은 편의성과 혜택 측면에서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한두번의 터치만으로 결제가 가능하도록 편의성을 대폭 높이거나, 사용으로 얻을 수 잇는 혜택을 더 키워야만 추가 테스트나 본 시행에서 국민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참가자 정원을 다 채운 국민은행의 경우 금융그룹 앱 KB스타뱅킹의 이용자가 1334만명 이상이라는 경쟁력과 세븐일레븐 결제 시 10% 할인이라는 혜택이 시너지를 낸 것으로 해석된다.
신한은행은 배달 플랫폼 '땡겨요'에서 다양한 매장을 대상으로 예금토큰 사용,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 고객의 마음을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8일 기준 약 1만 5000건의 전체 예금토큰 결제 건 중 약 3분의 1이 '땡겨요'에서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종렬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지난달 21일 지급결제보고서 설명회를 통해 "사용처 확대와 결제 편의는 테스트 환경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며 "실제로 도입되면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은은 참가자 확대를 위해 이달부터 디지털 바우처 프로그램 연계 실험에도 나선다.
현재 서울시 청년문화패스 사업으로 예금토큰 활용자 500명을 선정했으며, 대구시 교육바우처도 사업이 준비되는 대로 실험에 참여할 예정이다.
6월말 1단계 실험이 끝나면 개인 간 송금 시스템과 가맹점을 추가해 2단계 테스트도 진행할 방침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예금토큰의 오프라인 사용자 확대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가맹점 확대로 온라인 결제는 늘릴 수 있지만, 오프라인에서의 활용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지금도 모바일 페이를 쓰면 슬라이드 한 번, 지문인식 한 번으로 결제가 가능한데, 구동에 시간이 걸리는 은행 앱을 열어 QR결제 메뉴를 찾아 결제하는 방식이 고객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오프라인 결제 수를 늘리기 위해서는 예금토큰 사용이 더욱 편리하도록 은행 앱 사용자환경(UI)를 변경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성훈 한국금융신문 기자 voicer@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