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율 상승에 중국 경기 둔화, 차익 실현 매물 출회 등으로 국내 증시 자금이 전체적으로 빠져나가는 와중에 삼성전자를 향한 외국인 투자자 수급은 지속되고 있다. 이달 들어서만 삼성전자를 1조원 넘게 순매수했다.
미국 대표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NVIDA‧대표 젠센 황)에 고 대역폭 메모리(HBM·High Bandwidth Memory) 납품 소식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며 자금이 몰렸다.
이에 삼성전자 ‘대장 역할론’이 제기된다. 삼성전자를 대거 사들인 국내 투자자 ‘동학 개미’들 바람이다. 유가증권시장(KOSPI)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가 ‘9만전자’를 찍고 코스피를 끌어올릴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문제는 고환율이다. 현재 국내 증시 전체 상황만 놓고 보면 좋지 않다. 외국인 순유출이 커지고 있다.
12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0.79%(20.30포인트) 하락한 2536.58에 장을 마감했다. 전날보다 0.37%(9.54포인트) 오른 2566.42에 문 열었지만, 장중 외국인 순매도세가 이어지며 내림 폭을 키웠다. 외국인이 하루 동안 팔아치운 규모는 2974억원치였다.
유망한 중소·벤처기업들의 자금조달을 목적으로 한 장외 주식거래 시장 ‘코스닥’(KOSDAQ) 역시 외국인이 1407억원어치 물량을 던지며 900선이 붕괴했다.
한국은행(총재 이창용닫기

지난 1월 3억4000만달러가 순유출된 뒤 7개월 만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주식자금의 경우, 9억1000만달러 감소했고, 채권은 7억9000만달러 줄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중국 경기 둔화 우려와 2차 전지 급등에 따른 차익 실현 매물이 영향을 줬다”며 “채권은 5월에 사들인 채권 만기도래와 낮은 차익거래 유인이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 레이팅스’(Fitch Ratings‧대표 폴 테일러)기 미국 국가 신용등급(IDRs‧장기 외화표시 발행자 등급)을 가장 안전한 최상위 등급 ‘AAA’에서 한 단계 아래인 ‘AA+’로 강등한 이후 안전 자산 선호도가 높아지며 달러 가격이 솟구친 것으로 풀이된다.
나아가 달러 견제 역할을 하는 엔화는 10개월 만에 최저점으로 가치가 떨어졌다. 위안화 역시 중국 부동산 업체 파산 우려에 경기가 악화하며 15년 만에 최저 수준을 나타냈다. 그 결과 원화 가치 역시 낮아졌다. 달러 가치만 오르는 추세다.
더군다나 당분간 원‧달러 1350원대 진입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는 시각까지 나온다. 미국 연방 공개시장 위원회(FOMC‧Federal Open Market Committee) 회의를 앞두고 국제유가까지 오르고 있어서다.
국제유가 급등은 인플레이션(Infation‧물가 상승)이 지속되게 하고 결국 미국 연방준비제도(Fed·Federal Reserve System)가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요소다. 현재 제롬 파월(Jerome Powell) 미 연준 의장은 금리 인상 여부에 관해 “데이터를 보면서 결정할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미국의 금리정책 결정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표인 소비자물가지수(CPI‧Consumer Price Index)가 7월(3.2%) 대비 8월(3.6%) 상승이 전망되는 것도 악재로 지적된다. 긴축 장기화 가능성이 커질수록 자본이 미국으로 몰려 원‧달러 환율이 더 높아질 수 있단 분석이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대표 정일문닫기

그러면서 그는 고환율 상황에 관해 “한국 증시의 큰손이라 볼 수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환율 변화에 부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것”이라며 “만약 달러 강세가 계속 이어진다면 외국인 매매 동향도 비우호적 방향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용택 IBK투자증권(대표 서정학) 수석연구위원은 “우리나라 환율은 중국 경제 변화를 민감하게 반영한다”며 “중국 경제가 불안한 현 상황에 높은 금리 수준을 유지하는 미국으로의 자금 이동에 따른 고환율은 지금 수준에서 바뀌기 어려워 보인다”고 평했다.
불안한 거시경제 환경 속 흔들리는 증시를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초조한 눈빛에 희망을 주는 이는 ‘대장주’ 삼성전자다.
삼성전자에 외국인 투자자 수급이 지속되고 있다. 반도체 업황 개선 기대감에 외국인들은 지난 6월부터 ‘팔자’에서 ‘사자’로 태도를 바꿨다.
11일 한국거래소(이사장 손병두닫기

엔비디아에 HBM을 납품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투자심리가 급격히 개선됐다. 비록 이날은 외국인 매도세에 전 거래일 대비 0.42%(300원) 떨어진 7만500원으로 ‘7만전자’를 간신히 유지했지만, 최근 한 달 수익률과 6개월 수익률은 +4.89%, +18.99%를 나타낸다.
이경민 대신증권(대표 오익근닫기

김승현 유안타증권 리서치 센터(Research center‧연구소) 장은 “대만과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 주요 신흥국에서 최근 자금 유출이 나타나고 있지만 한국은 시장 크기 대비 비교적 유출이 덜한 편”이라며 “내년도 반도체 업황 개선 기대가 이런 차이를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대장주’ 하나가 코스피 멱살을 잡고 증시 전반을 상승시키기엔 어려워 보인다.
금융 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대표 김군호‧이철순)에 의하면 증권사 실적 전망이 존재하는 코스피 상장사 173개 연간 영업이익 총액은 141조9669억원으로, 3개월 전보다 1.65% 감소했다.
경기 상황 악화에 개별 회사의 펀더멘털(Fundamental‧기초 자산)이 흔들리는 것이다. 또한 국제 유가 변동, 강달러 등도 한동안 계속될 것이란 부정적 관측이 많다. 이런 큰 물결까지 삼성전자가 바꿀 순 없는 노릇이다.
양해정 DS투자증권(대표 김현태) 연구원은 “국내 증시에 외국인의 적극적인 매수세가 나타나지 않는 까닭은 경기 회복 지연 우려 때문”이라며 “3분기 실적 개선 기대가 커져야 큰 흐름에서 수급이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 짚었다.
임지윤 기자 dlawldbs20@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