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가계대출은 최근 증가세만 보더라도 심상치는 않은 상황이다. 올해 7월중 전 금융권의 가계대출은 전년 동기대비 15.2조원(은행 +9.7조원, 제2금융권 +5.5조원)이나 증가했다.
특히, 동 기간중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은 +6.1조원으로 은행 가계대출 증가분의 약 63%에 해당된다. 또한, 제2금융권 대출은 주로 신용대출을 포함한 기타대출 중심으로 확대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금융당국이 꺼내들은 대표적 가계대출 규제책은 가계대출 총량제였다. 금융당국은 연간 가계대출 증가율을 5~6%수준으로 동결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의 강력한 대출공급 억제책으로 시중은행들도 현재 대출공급 한도에 봉착하면서, 향후 대출 중단사태까지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 이른바 가계대출 절벽현상의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전세자금 마련, 생애최초 주택마련을 위한 중도금 확보, 생계형 자금마련 등 다양한 실수요자의 대출수요가 위협받고 있다. 일부 투기적 수요를 억제한다는 명목으로 대다수의 실수요 자금 확보를 어렵게 하는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총량제는 마치 교각살우(矯角殺牛)라는 고사성어를 떠올리게 한다.
대출은 금융기관의 주요 사업영역이며, 대출액은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기 마련이다. 다만, 금융당국은 금융기관 부실을 예방하기 위한 건전성 관리 측면에서 시장개입의 명분이 있고, 이것이 주요한 정책 목표가 되어야 한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관리를 위해 시행중인 DSR(총부채원리금 상환비율)제도도 금융기관의 건전성 강화를 위한 거시정책수단의 하나이다.
담보중심의 대출관행에서 벗어나 차주의 소득수준에 따라 대출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 것은 채무상환 가능성을 높여 금융기관의 연체 가능성을 낮추는데 정책 취지가 있다.
그런데, 정책 취지측면에서 DSR 도입과 대출 총량제는 서로 부합하지 못한다. 자칫 대출 총량제가 부동산 가격 안정의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오해의 소지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대출 총량제는 금융정책 취지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시장의 호응을 얻어내기 어렵다.
국내 가계대출 증가와 대출의 연체 확률간의 관련성을 분석한 최근 국내 연구를 참조하더라도, 대출 증가가 반드시 부실로 인한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저해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차주의 소득수준을 감안한 대출규제가 정상적으로 기능할 경우 대출증가는 오히려 주택담보대출의 연체확률을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 대출을 주로 이용하는 고소득 차주의 대출증가세는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며, 우량 차주의 대출증가세는 오히려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의 연체율을 낮추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다시 말해 채무상환능력을 강조하는 대출규제가 이루어진다면, 대출증가세는 은행의 건전성에 부정적 영향 대신 오히려 건전성 제고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금융기관의 건전성 관리에서 대출 총량관리보다는 DSR 중심의 채무상환능력 관리가 보다 효과적이라는 시사점을 제시한다.
대출 총량제는 오히려 실수요자의 자금조달을 저해하고,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우량차주에 국한한 대출공급에 주력하게 함으로써, 저신용자의 금융소외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대출수요대비 공급이 부족해짐에 따라 금융기관의 우량차주에 대한 대출금리 인상 및 우대금리 폐지도 가져온다. 대출공급을 인위적으로 억제하는 대출 총량제가 금융기관의 거시건전성 제고에 별다른 효과도 없을 뿐 아니라, 저신용차주의 금융지원을 저해하고, 우량차주의 금융비용을 늘리는 부정적 효과를 가져옴을 금융당국은 반드시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금융당국의 획일적이고, 근거가 충분치 않은 5~6%수준의 대출 총량제 대신 금융기관 자체적으로 건전성 제고를 위해 가계대출 공급을 조절하는 규제책이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즉, 금융당국은 요구자본과 대출 공급간의 부(-)의 관련성을 정책에 활용해야 한다.
우선, ‘가계부문 경기대응완충자본제’의 도입이 시급하다. 이는 가계대출을 늘리는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요구자본을 추가적으로 적립하도록 하는 거시건전성 정책이다. 즉, 0~2.5%의 수준에서 추가적 요구자본을 적립하도록 함으로써 자본확충 수준이 각기 다른 금융기관이 가계대출의 공급수준을 금융기관 스스로 조절하게 할 수 있다.
또한, 가계대출 위주에서 기업대출 비중을 늘리는 대출포트폴리오의 변화도 기대해볼 수 있다. 동 정책은 자산규모, 자본적정성 수준, 부실여신 비중 등 금융기관들의 각기 다른 경영현황을 고려하지 않는 일률적 대출 총량제보다 훨씬 효과적인 가계대출 규제책이라고 사료된다.
다음으로, 중소기업 지원팩터(SME Supporting factor)제도의 도입을 통해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가계대출을 줄이고, 중소기업대출을 늘리는 유인을 제시하는 정책도 고려해봄직하다.
이는 지난 2014년에 EU 국가들을 대상으로 도입된 금융정책이다. 동 제도는 은행의 자기자본비율 계산시 분모인 위험가중자산에 0.7619를 곱해, 중소기업대출시 요구되는 자본금을 약 24% 절감시켜 준다.
이를 통해 은행으로 하여금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게 되고, 결과적으로 가계대출 중심의 대출포트폴리오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필자의 국내 은행들을 대상으로 분석한 최근 연구결과를 참조하더라도, 동 제도의 도입을 통해 추가적으로 확보된 은행권의 완충자본이 중소기업대출 증가로 이루어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소기업뿐 아니라, 자영업자 및 중금리 차주 등 비우량 차주를 대상으로 본 제도를 확장할 경우 민간 금융기관을 활용하여 정책금융의 기능을 한층 제고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결론적으로 대출 총량제는 효과적인 가계대출 정책이 될 수 없다. 요구자본수준의 조정을 통해 금융기관의 가계대출 공급을 조절하는 정책방안을 시급히 도입하고, 대출상환능력 위주의 DSR 및 금융권의 대출심사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계대출 정책 기조를 전환해야 한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