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8월부터 소비자의 동의를 받으면 해당 고객의 예적금, 대출, 보험, 카드 등 흩어진 금융정보를 한데 모아 관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금융 데이터부터 시작하지만 향후에는 유통, 의료, 교육, 부동산 등 각 산업 분야의 방대한 데이터가 융합됨으로써 과거에는 없던 진정한 고객 중심의 서비스들이 선보이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진정한 마이데이터 사회로 도약하기 위해서 정보 비대칭이라는 ‘암초’제거가 전제되어야 한다.
데이터의 주권을 소비자에게 돌려줌으로써 기업과 소비자 간의 정보 불균형 현상을 해소하는 것이 마이데이터의 도입 취지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기업들이 정보 공개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며, 그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 많은 빅테크, 금융사들이 자신의 데이터는 최소한으로 공개하면서, 상대방의 데이터는 최대한으로 제공받으려는 움직임이 발단이 됐다.
논란의 불씨에 기름을 부은 건 대형 빅테크사가 자회사를 내세워 마이데이터 사업 및 금융업 진출을 본격화한 것. 해당 자회사는 마이데이터 라이선스를 통해 금융기관에 오랫동안 축적된 고객 데이터를 받아볼 수 있는 반면, 기존 금융 기관들은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빅테크 자회사의 금융 데이터만 제공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형 빅테크사는 자사의 쇼핑 데이터와 타 금융 기관으로부터 제공 받은 금융 정보를 결합해 유의미한 서비스를 만들 수 있지만, 기존 금융 기관들은 대형 빅테크사의 쇼핑 정보는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일방적으로 금융정보를 내어주어야 하기 때문에 명백한 역차별이라며 반발했다.
정보 쏠림을 두고 갈등이 심해지자 해당 빅테크사는 지난 7월 기자 간담회를 열고 마이데이터 제공 수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기존 금융사도 신용 거래 내역 말고 현금 서비스 사용 내역이나 거부 여부 등 더 내놓지 않는 정보가 많다.
결국엔 우리가 더 많은 데이터를 공개하는 셈”이라며 “지금도 충분히 많은 정보를 주고 있지만 금융사에서 더 달라고 요청하는 느낌이 있다.”며 역차별 논란에 대해 반박했다.
해당 빅테크사의 입장 공개에도 불구하고, 빅테크와 금융사 간의 갈등의 불씨가 꺼지기는커녕 이번에는 전자상거래 업계로 번졌다. 금융위가 주문내용을 마이데이터 관련 법 시행령 개정안에 추가하면서 전자상거래 업체도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가 생긴 것이다. 이에 전자상거래 업체들은 주문내역을 마이데이터 사업자에게 제공하는 것이 고객의 사생활 침해이며, 위법이라며 저항했다.
결국 지난 11월 금융위가 마이데이터 사업자들 모두 일정 수준의 주문 내역 데이터를 제공하도록 결정을 내리며 갈등을 잠재웠다. 고객의 금융 정보뿐 아니라, 주문 내역도 정보 제공 범위에 포함하되, 가전·전자, 도서·문구, 패션·의류 등 카테고리로 범주화해 제공하도록 타협점을 찾은 것이다.
이로써 빅테크와 전자상거래 업체들의 상호불만은 일단락되었다.
그렇다고 정보 불균형 논란이 완전히 해소된 건 아니다. 각 금융기관들도 정보 제공 수준에 대해 줄다리기한 결과 은행권은 송금·수취인 이름이 적혀 있는 거래 기록을 마이데이터 사업자에 제공하지 않기로 했으며, 보험사는 보험금 청구 내역은 빼기로 했다.
카드사도 결제내역은 제공하지 않고 1개월 사용 내역인 청구 정보만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최근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금융사들이 금융 정보를 최소한으로 제공하기 위해 마이데이터 전송 방식인 API 내역을 보다 세분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기업들이 다양한 분야의 데이터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고, 자신이 보유한 데이터를 적게 내주어 우위를 선점하려는 모습은 경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특정 기업이 데이터를 독식하면 초반에는 작은 이익을 얻을 수 있겠지만, 결국 나중에는 시장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마이데이터서비스의 가치를 높이지 못해 상호 공멸에 이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이 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정보 비대칭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 기업에게 데이터 제공 범위와 이동을 제한할 권한이 없음을 명확히 해야 한다. 오직 데이터의 주권을 보유한 소비자만이 자신의 정보 공개 수준을 정할 수 있다.
소비자의 동의하에 다양한 분야의 방대한 데이터를 모아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고객 가치형 서비스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신규 사업자들이 탄생하고 혁신적인 사업이 등장할 수 있다.
대등한 정보 개방으로 혁신적인 비즈니스가 탄생한 사례가 있다. 금융과 통신 데이터 결합으로 만들어진 대안 신용평가 모형 ‘핀크 T스코어’가 그것이다.
핀크 T스코어는 SK텔레콤 이용자의 다양한 통신 데이터, 가령 사용기간, 요금제, 로밍여부 등을 점수로 산출한 후 기존 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과 함께 금융기관의 대출심사에 반영한다.
통신데이터가 신용평가사의 금융 스코어와 결합하면 한도 상승효과와 함께 점수 별 최대 1.0%의 금리 우대 혜택을 기대할 수 있다.
기존 신용평가제도가 금융 정보에만 의존했던 것과는 달리, T스코어는 새로운 신용평가 지표로써 그 가능성을 인정받으며 2019년 5월 금융위로부터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됐다.
다양한 금융기관들과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T스코어의 효용가치가 입증되어 활용처를 넓혀 나가고 있다. 마이데이터 서비스가 진정한 혁신 비즈니스가 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사업자간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그 경쟁은 공정하게 이뤄져야 하며 상호개방이란 철학을 전제로 하여야 한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비유되는 마이데이터 서비스의 가치가 고객에게 제대로 전달되기 위해서는 플레이어 간의 ‘협쟁(서로 도우며 경쟁)’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누구도 모든 것을 혼자 잘 해낼 수는 없다. 축구 게임을 생각해보자.
제 아무리 뛰어난 선수가 나온다 한들 홀로 공을 독차지 하며 게임을 장악하려고 한다면 게임에서 이기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결국 관객들의 외면을 받게 될 것이다. 다양한 강점과 색깔을 가진 선수들이 공을 가지고 경쟁 및 협동할 때 더 멋진 명승부가 펼쳐지고, 관중들이 더 환호하지 않을까?
[권영탁 핀크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