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역병이 창궐해 전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중국이 이를 이용해 이익을 꾀하려고 한다는 경계감도 크다.
세계 무역질서를 주도했던 미국과 중국 모두 상대방을 이기기 위한 암중모색을 지속하고 있다.
한국 경제도 큰 타격을 입은 가운데 최근엔 해외에 나가 있는 국내기업을 불러들이기 위한 노력을 좀 더 강화하고 있으나 탁상공론이란 비판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한국무역협회에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통상환경 변화'라는 리포트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이미 불어닥친 큰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 정부가 주도하는 경제..정부 능력 중요해졌다
무역협회는 최근 통상 환경과 경제 구조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우선 각 나라들은 정부의 개입을 확대하고 있으며 자국 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각국 정부는 코로나19 사태 종료 이후에도 자국 산업계의 요구에 따라 자국산업 보호를 위한 각종 수입규제 조치를 부과할 가능성 등도 높아졌다.
협회는 "코로나19로 인해 국가와 정부의 역할이 중요해지면서 각국 정부는 경제개입의 정도와 범위를 늘려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요국은 당장의 경제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자국기업들을 위한 지원정책을 대거 발표하고 있다. 이는 보호무역주의 강화라는 모양새로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최근 미국은 수입산 변압기 부분품과 이동식 크레인의 국가안보 위협을 근거로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를 개시했다.
유럽제조자연합은 코로나19 위기와 관련해 무역구제조치 등의 수단을 적극 활용해 외국상품으로부터 국내산업을 보호해 줄 것을 유럽집행위에 공식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들이 향후 글로벌 경제 차원에서 불공정 경쟁과 왜곡의 원인으로 지목될 가능성이 있다.
협회는 "자국기업 지원을 위한 보조금과 관련해 가까운 미래에 이들 보조금이 WTO 보조금 규정과 연계해 문제시 될 확률은 낮지만, 지급과정의 투명성이나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에 대한 보조금은 향후 논란을 촉발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현금 확보를 위한 덤핑이 늘어남에 따라 코로나 종식 이후 각 정부들이 자국 산업계의 요구에 따라 외국 수출기업에 수입규제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각국의 '나부터 살고 보자'는 인식이 보호무역주의를 더욱 강화시켜 향후 코로나 사태에서 벗어나더라도 이전보다 글로벌 경제의 활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이다.
■ 중국 등 외국자본 경계령..국유화 움직임도 강화
최근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이 개발도상국들을 돕는 듯 했지만, 결국 그 나라의 적지 않은 기간산업이 중국 자본으로 넘어가면서 중국에 대한 경계감도 커졌다.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해 전세계에 커졌지만, 중국은 상대적으로 먼저 역병의 큰 위험에서 벗어났다. 각국은 중국 자본의 공세에 대한 대비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프랑스는 심사대상 외국인 투자기준을 기업 전체지분의 33%에서 25%로 낮춰 심사 대상을 확대했다.
독일은 외국인 투자와 관련한 정부 개입의 기준을 '실질적 위험'에서 '부작용 발생 가능성'으로 완화했다.
인도는 중국처럼 국경을 맞댄 나라가 인도 기업을 인수하거나 투자하려면 정부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EU는 회원국에 중요한 전략적 인프라에 대한 외국인 투자심사를 실시하도록 했다.
각국의 이런 조처들은 상당 부분 중국자본에 대한 경계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국과 세계 패권을 다투고 있는 미국의 중국 자본에 대한 경계감은 이전부터 두드러졌다.
협회는 "미국은 코로나 발발 이전에도 재무부 산하의 범정부 기구인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를 활용해 중국의 대미투자 유입을 견제해왔다"고 밝혔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경계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최근 미국 상원은 5G 통신망 구축사업에 화웨이 장비를 배제하지 않기로 한 영국과 같은 국가가 대미투자를 시도할 경우 이들 국가에 면제했던 CFIUS의 심사면제 지위를 박탈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할 정도다.
아울러 각국은 코로나 사태로 큰 타격을 입은 중요 기간산업을 국유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이 항공사 일부 항공사 국유화를 선언하거나 그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스페인은 민간병원과 의료관련 기업의 한시적인 국유화를 발표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중국과의 관계 재정립에 대한 목소리가 적지 않다.
중국에서 10년 이상을 근무한 한 대기업 간부는 "중국의 초창기 성장 시대엔 한국과 중국이 상호 큰 이익을 얻었다"면서 "하지만 지금의 중국을 과거의 시각으로 봐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수년간 점점 국내 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해 재미를 보기 어려워졌다"면서 "중국이 각국으로부터 기술을 훔쳐 이젠 많은 분야에서 한국을 뛰어넘었다. 넓은 시장에 혹해서 쉽게 중국에 들어가선 안 되는 상황이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코로나 사태로 더 심해지긴 했지만, 전세계가 중국을 경계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면서 "국내 기술과 우수한 인력의 보호도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 기업들 국내로 불러들이기
핵심 산업을 자국으로 불러 들이는 리쇼어링도 각국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특히 각국은 중국에 대한 수입 의존도를 낮출 필요성을 거론하면서 리쇼어링 정책을 펼치고 있다.
미국 상원은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약품 및 제약 원료 의존를 낮추기 위해 대중국 의약품 수입을 억제하고 미국 내 의료장비 및 약품 생산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법안을 내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의약품 재고부족을 경험한 EU는 제약업 리쇼어링 및 생산 확대 정책을 고려하고 있다.
일본은 '서플라이 체인 개혁'이라는 이름의 리쇼어링 정책을 발표했다. 일본은 제품 및 부품소재 생산기업이 국내로 복귀할 경우 1/2~2/3의 비용을 지원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아울러 여러 정부들은 물품 구매시 '국내산' 구매를 의무화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그간 효율성과 비용절감을 위해 해외 생산을 확대해온 기존의 생산 모델이 코로나19로 인해 그 약점이 드러남에 따라 보건 제품과 핵심 산업의 국내생산을 늘리고 주요산업을 국내로 복귀시키려는 리쇼어링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탁상행정에 그칠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14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렸던 토론회에선 "정부의 리쇼어링 강화정책이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면서 국내에서 열심히 하는 기업부터 정부가 혜택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국내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따라서 해외로 진출할 수밖에 없었던 사례가 많았던 만큼 대기업이 국내로 복귀하지 않으면 리쇼어링이 쉽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또 일각에선 통 큰 세제 혜택, 부지 무상 제공과 같은 상당히 과감한 정책을 펼치더라도 리쇼어링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 美中 헤게모니 경쟁 심화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도 미국과 중국의 세계 패권을 잡기 위한 경쟁은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아울러 미국과 중국은 계속해서 갈등을 이어갈 수 밖에 없다는 시각이 강하다.
미중은 현재 1차 무역합의 내용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미국의 중국을 보는 시선도 상당히 차가워졌다.
협회는 "1~3월 미중 무역통계를 보면, 미국의 대중수입이 전년대비 28.4% 감소하는 등 양국은 디커플링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면서 "중국의 대미 수입 확대를 골자로 하는 1차 합의(2월 14일 발효)에도 불구하고 이 기간 미국의 대중 수출 역시 전년동기비 15.4% 감소하는 등 합의 이행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합의문에서 약속한 분쟁해결 사무소 설치나 사무소장 지정을 미적거리면서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 일본, EU 등이 중국 정부의 보조금 정책을 비판하고 있지만, 중국은 가시적인 변화를 늦추고 있다.
군사 부문이나 기술 분야에 관한 미국의 중국에 대한 경계감은 상당히 크다. 지난 4월 27일 미국은 항공기 부품 등의 군사용 전용 방지를 위한 대중국 수출규제 강화조치를 발표했다. 또 트럼프닫기

협회는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은 중국이라는 '외부의 적' 설정을 위해 코로나19를 활용할 충분한 동기도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미국은 코로나19 이슈 이외에도 보조금, 환율 등 다양한 이슈에서 중국을 양자·다자적 수단을 통해 압박해 왔다.
하지만 세계 패권을 노리는 중국이 만만한 적수는 아니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은 코로나 사태를 맞아 러시아, 인도, 아프리카 등에 의료용품을 지원했다. 대출이나 인프라 투자 등도 병행했다.
중국은 현대판 '실크로드'를 내세워 사실상 미국의 패권에 도전장을 던진 상태다. 아울러 코로나 사태가 중국에 더 유리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협회는 "주요국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미국이 코로나 팬데믹에서 리더십을 보이지 못할 경우 동맹국들과의 연계가 약화될 것으로 본다"면서 "또 이런 상황에서 중국경제가 회복되지 시작하면 중국의 리더십에 동조하는 국가가 증가할 수 있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의 경우 미중 분쟁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양강이 자기 편에 붙을 것을 강요할 수 있어 현명한 대처가 필요하다.
협회는 "중국은 자국시장을 무기로 제조업 기술수준을 제고하면서 자국 표준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미국은 중국의 기술굴기를 저지하기 위해 제3국에 대중 제재 동참을 강하게 압박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 디지털 경제 적응도 중요한 문제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언택트) 전자상거래 등 온라인 비즈니스의 성장에 따라 디지털 무역의 중요성도 주목을 받고 있다.
협회는 "그간 지지부진했던 WTO 전자상거래 협상 등 디지털무역에 대한 국제규범 논의가 새로운 물살을 타게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익명 처리된 환자의 개인정보가 코로나19 방역에 효과적으로 사용된 사례가 알려지면서 개인정보 활용에 대한 거부감이 감소하고 데이터경제 발전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IT·온라인 기술을 활용한 서비스(동영상 스트리밍, 화상회의, 온라인 게임, 온라인 교육, 클라우드 등)와 비대명 거래방식(온라인 쇼핑, 배달 경제)이 성장하고 있다.
화상회의 앱을 만든 Zoom의 주가는 올해 1월 20일 73달러였으나 5월 들어 150달러를 훌쩍 뛰어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밖에 유튜브는 인터넷 과부하를 막기 위해 동영상 기본 화질을 낮추기도 했고, 넷플릭스는 사상 최대 트래픽을 기록하기도 했다.
협회는 "전통적으로 오프라인으로 활동이 이뤄졌던 교육, 업무, 종교, 쇼핑, 레저 등에서 온라인 접촉이 일상화되는 온-오프라인 융합시대가 본격 도래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 여전히 중국 의존도 너무 높은 한국경제..상당한 도전에 직면
한국경제 역시 이런 변화에 맞춰 변모하는 게 중요하다는 진단이 많다.
한국은 지난해 일본과의 무역갈등을 통해 효율성만을 중시하는 공급망 운영보다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해 핵심물자 재고를 확보하고 수출입선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이런 점이 다시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경제의 중국 의존도는 높다.
협회는 "2018년 기준 한국의 전체 수출기업 중 대중국 수출기업 비중은 34.1%로, 2000년 기준 31.3% 비해 늘었을 뿐만 아니라 같은 해 금액기준 대중수출비중 26.8%보다 높았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한국이 수출 중심 국가인 만큼 전세계의 보호무역주의에 맞서 잘 대응할 필요도 있다고 밝혔다.
협회는 "세계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수출통제와 무역구제조치 등 보호무역 확산이 우려됨에 따라 자유무역 질서를 지켜내기 위한 중진국 간 국제공조에 앞장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코로나19로 인한 기업가치 하락을 틈타 우리기업을 저가에 매수하기 위한 외국인 투자에 대해서는 심사를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협회는 "2019년 11월 발의된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4월 1일부터 시행됐으나 외국인 투자를 제한할 수 있는 사유 중 '국가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는 경우'는 반영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협회는 또 코로나19 사태로 데이터의 공익적 활용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호기를 활용해 향후 데이터 경제 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와 다양한 발전 담론 형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원격의료 등 그간 사회적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던 산업분야에서 보다 건설적인 논의가 진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장태민 기자 chang@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