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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삽씩 우직하게 옮기는 수밖에는...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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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4-01 22:49 최종수정 : 2015-04-01 23:19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 손정국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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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삽씩 우직하게 옮기는 수밖에는...
금융소비자가 합리적으로 판단할 것이라는 추정은 위험한 발상

소비자에 미칠 소소한 것 까지도 세심히 고려하지 않으면 안돼

1995년에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홈쇼핑이 점점 더 중요한 판매채널이 되고 있습니다. 6개 홈쇼핑회사들의 매출액이 2013년에 약 3조 9천억 원이었으나 2014년에는 약 4조 1천억 원으로 2000억 원 가까이 늘었답니다. 홈쇼핑 매출액이 증가하면서 쇼 호스트의 인기도 치솟고 있습니다. 억대 연봉 쇼 호스트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리고 쇼 호스트로 전직하는 유명인들도 종종 보입니다.

쇼 호스트 양성학원도 여럿 생겼습니다. 지난 27일 상장한 엔에스 홈쇼핑이 청약받았을 때 5조원 가까이 몰려 236.8:1의 경쟁률을 기록한 것에서도 홈쇼핑에 대한 세간의 전망을 엿볼 수 있습니다.

홈쇼핑이 성장세를 견지하는 이유로는 뭐니 뭐니 해도 편리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원하는 물품을 구매하기 위해서 상점까지 갈 필요가 없습니다. 집에서 TV를 시청하기만 해도 이미 절반은 된 겁니다. 쇼 호스트들은 그 물건을 꼭 구입해야 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구입할 때 꼭 따져봐야 할 것 같은 꼭지들을 콕콕 집어서 설명해 줍니다. 신용카드로 주문하면 장기간 무이자할부는 기본이고 결제일로부터 며칠 내에 집까지 배송됩니다. 물건을 받고 나서도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면 처리도 곧잘 해 줍니다.

문제는 홈쇼핑 중독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구매 후 후회하는 이용자가 많아졌는데 이들을 소수의 비합리적 소비자들이라 치부하기가 곤란하다는 점입니다. 작년 11월에는 국회 입법조사처가 수시로 발표하는 정보소식지 「이슈와 논점」에서 TV홈쇼핑 방송은 방송이면서 동시에 광고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 쇼 호스트들이 자주 이용하는 허위ㆍ과장된 설명이나 문구 등에 소비자들이 현혹되기 쉽다고 지적했습니다. “처음”, “마지막”, “단 한번”과 같은 표현이나 “주문쇄도”, “매진임박” 등의 표현을 허위로 사용해도 충동구매를 부를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소비자들을 현혹시키는 방법이 이 뿐만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식품을 소개할 때는 쇼 호스트나 대역배우들이 맛나게 먹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주어 시청자들의 침샘을 자극합니다.

1957년에 비커리(James Vicary)라는 마케팅 전문가가 극장에서 아주 짧은 시간에 팝콘을 먹으라는 문구와 콜라를 마시라는 문구를 넣었더니 영화가 끝나고 팝콘과 콜라 판매량이 늘었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이 주장의 사실여부는 논란이 있지만 전혀 아니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지요. 편리함이라는 장미꽃 속에 소비자들을 현혹시키는 뾰족한 가시가 여럿 숨겨져 있는 셈입니다.

실생활에서는 소비자들을 현혹시켜서 합리적인 선택을 방해하려는 경우가 오히려 다반사입니다. 심지어, 모 시민운동단체가 지난 2월에 학원과 학교의 특정 학교 합격 홍보물 게시 실태를 조사했더니 2000년부터 16년간 특수목적고 등에 합격한 수강생 명단을 게시하거나, 2004년부터 상위권 대학에 합격한 학원생의 명단을 걸어두거나, 합격한 학원생의 사진까지 걸어둔 곳도 있고, 학원생의 내신 성적이나 석차를 공개하는 곳도 있었답니다. 16년 전의 합격생 이름까지 명단에 넣어도 학원을 선택하려는 학부형과 학생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모양입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담뱃갑에 경고사진을 넣는 법안이 부결되어 논란이 많았는데 이 역시 경고사진이 흡연자들이나 예비 흡연자들의 합리적이고 주도적인 선택에 긍정이든 부정이든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미가 되겠지요.

영국 의회는 디자인의 작은 차이가 소비자들의 합리적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음을 훨씬 깊게 자각했습니다. 지난 11일에 하원이 통과시킨 법안을 16일에 상원이 승인하면서 2016년 5월부터 영국 내 모든 담뱃갑이 정해진 크기와 모양, 디자인으로 출시된 답니다. 담배 상호도 동일한 위치에 동일한 크기로 표시되며, 흡연에 대한 경고사진이 정면에 놓이게 됩니다. 법률의 의도는 담배회사들이 디자인으로 소비자를 현혹시키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지요. 영국 담배업계는 이 조치가 흡연을 줄일 것이라는 증거가 없고 담뱃갑 디자인에 대한 지적재산권이 침해된다며 법적 대응을 선언했다지만 이런 반발 자체가 정책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반증입니다. 아일랜드가 이달 초 유사한 법을 제정했고, 호주는 2012년에 담뱃갑 단일화 법을 제정해 이미 시행 중이랍니다.

상품이나 기호품을 선택할 때 소비자들이 이 정도로 현혹되는 상황이라면, 금융상품의 선택이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세계은행은 지난 해 말에 발표한 2014년도 「세계 개발보고서」에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소개하였습니다. 다음 급여일까지 몇 주 또는 한 달 동안의 소액 대출을 흔히 “급여일대출”(payday loan)이라고 부르는데 단기간의 소액 대출이라 심사가 그리 까다롭지 않아서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이 많이 이용합니다. 급여일대출의 이자는 대개 연 이자율보다는 대출 한 건당 고정 금액으로 제시됩니다.

예를 들어 2주 동안 100달러 빌리면 이자 15달러라는 식입니다. 연이율로 환산하면 400%나 되어 불가피하게 급여일대출을 몇 차례 반복해서 받는다면 이자가 원금을 초과하게 됩니다. 연구자들은 급여일대출의 이자를 보다 투명하게 제시하는 경우의 효과를 검증해 보았습니다. 급여일대출을 받는 차입자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고 한 집단에는 급여일대출을 받을 때 제공받는 표준 정보 즉, 대출금액, 결제일, 고정비용을 제공했습니다.

다른 집단에는 첫 번째 집단에 제공한 정보 외에 대출이 3개월 동안 반복될 때 누적 비용과 동일 금액을 동일 기간 동안 신용카드로 차입할 때의 비용을 함께 제공해서 비교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후 4개월 동안 두 번째 집단이 급여일대출을 받는 비율이 첫 번 집단에 비해 11%나 줄었다고 합니다. 세계은행은 이 연구가 보고서 첫 장의 핵심 시사점을 보여준다고 강조합니다. 어떤 정보를 어떻게 제공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급여일대출을 받는 사람들이 문제고, 신용카드 대출이 더 저렴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문제니까 교육을 통해서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결론이 아님을 주목해야 합니다. “금융소비자는 합리적”이라는 추정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지 않았을 때에만 가능한 해석입니다. 추정은 말 그대로 추정일 뿐 사실이 아니기에 끊임없이 검증되어야 합니다. 실생활에서 흔하게 목격되는 사실들이 추정 때문에 무턱대고 무시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 정보나 아무렇게나 제공하더라도 소비자들이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본다면 금융소비자보호의 실효성 제고는 공염불로 끝날 뿐입니다.

영국에서는 통일된 담뱃갑의 색상에도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진한 올리브 그린 색깔이 유력하다는데, 흰색보다는 짙은 색이 흡연이 건강을 해친다는 경고의 정도가 더 강력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랍니다.

금융소비자보호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이런 소소한 것까지도 따져봐야 합니다. 지름길이 있을 수 없기에 신속한 효과를 얻으려는 조치는 역효과로 끝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이 순간 금과옥조로 삼아야 할 것은 한 삽씩 퍼서 산을 옮겨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성어를 남긴 우공(愚公)의 우직함입니다.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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