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기업구매전용카드 상품을 운영하는 은행계 카드사들 역시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기업고객을 고금리 대출상품으로 유도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하고 있는 상태다. 이에 따라 전체 신용카드 이용실적에서 기업구매전용카드가 차지하는 비중도 갈수록 낮아져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한때 신용카드 결제액의 20%에 육박했던 기업구매카드는 카드사들의 외면과 금융감독 당국의 방치 속에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 도입 10년만에 사실상 유명무실
정부 차원에서 장려책까지 마련했던 기업구매카드가 사실상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카드사들은 한동안 외형확대를 위해 기업구매카드에 공을 들였지만 최근 기업구매카드에서 손을 떼는 분위기다. 수익성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룹사 지원을 위해 기업구매카드 비중을 늘렸던 대기업 계열 카드사들도 여기에 동참하고 있다.
여신금융협회 전자공시자료에 따르면 우리은행, HN농협은행, 대구은행, 부산은행, 경남은행, 신한카드, KB국민카드, 롯데카드, 외환은행, 씨티은행 등 전업 및 은행 겸영 카드사 10곳의 지난해 기업구매전용카드 이용실적은 26조7924억원으로 전년(44조1041억원) 보다 40%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신용카드 이용실적(신용판매+현금서비스: 553조545억원) 의 4.8%에 불과하다.<표 참조> 불과 7년 전 전체 신용카드 이용실적에서 20% 비중을 차지하던 기업구매카드의 현주소다.
구매전용카드로도 불리는 기업구매카드는 기업간 거래에서 납품업체와 구매업체간에 어음이나 외상거래로 대금을 결제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카드로 결제하는 새로운 거래 체계다. 실제로 카드를 긁는 것은 아니고 카드사가 납품업체와 구매업체 중간에서 결제를 중계하는 방식이다.
기업구매카드를 사용할 경우 어음 등보다 인력,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또 부도 등 지급불능에 따른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이에 따라 정부 차원에서 기업구매카드를 장려하기도 했다. 국내에 도입된 것은 지난 1999년 4월이다. 이후 카드사들도 기업구매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예를 들어 기업구매카드 도입 이듬해인 지난 2000년 기업구매카드가 전체 카드 이용실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3%에 불과했지만 2002년에는 14.6%까지 치솟았다. 이후에도 꾸준히 증가해 지난 2006년 19.7%까지 비중을 확대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부터 카드사들은 기업구매카드의 비중을 축소했다. 이에 따라 지난 2011년엔 기업구매카드가 전체 카드 이용실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년만에 10%대 아래로 떨어졌고, 지난해 이어 감소세는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기업구매카드의 인기가 줄어든 것은 근본적으로 낮은 수익률 때문이다. 기업구매카드는 일반적인 가맹점 결제와 달리 수수료가 거의 없다.
◇ 수익성 없어 취급 매력 못 느껴
사실 기업구매전용카드도 한때 현금화가 쉽다는 이유로 인기가 높았다. 기업들이 이 카드를 이용하면 법인세ㆍ소득세 등의 세액공제 혜택도 주어졌다. 이에 대해 최현 여신금융협회 카드부장은 “지난 2007년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업구매전용카드나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 등 어음대체 결제수단으로 하도급대금을 지급할 때 결제기한이 법정기일(60일)을 넘기면 7%의 수수료를 주도록 고시하는 등 기업구매전용카드 활성화에 노력했다”고 설명한 뒤 “그럼에도, 기업구매전용카드 이용이 줄어든 것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카드사들이 수익이 별로 나지 않는 기업구매전용카드 사업에 적극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기업구매전용카드를 이용하면 납품업체는 기존 어음을 이용할 때와 달리 3~5일 만에 납품 대금을 받을 수 있어 정부는 정책적으로 장려해왔다. 하지만 가맹점과 카드사를 연결해주는 VAN사를 이용하지 않아서 카드사로서는 가맹점 수수료를 받을 수 없고 선이자 형식으로 대금의 0.2~0.3% 정도만 수익으로 갖기 때문에 `애물단지’인 셈이다. 이 때문에 기업과 주거래 관계에 있는 겸영 카드사인 은행들도 기업구매전용카드를 줄이고 일부 전업계 카드사들은 운영조차 하지 않는다.
일례로 삼성카드는 지난 2003년 기업구매카드 사업을 중단했다. 현대카드는 처음부터 이 사업을 하지 않았다. 현재는 대기업 계열 카드사 중 롯데카드 정도만 납품이 많은 유통 계열사 실정을 고려해 운용하고 있지만 비중을 축소하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 전업계 카드사 한 관계자는 “기업구매전용카드는 어음과 관련이 있어 처음부터 카드 사업과는 맞지 않았다”면서 “롯데카드를 제외한 기업계 카드사 대부분은 돈이 안 되는 기업구매전용카드를 취급하지 않는 추세”라고 전했다. 겸영 카드사들 역시 씨티은행 등을 제외하고 조심스럽게 실적을 줄여나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겸영계 카드사 고위 관계자들은 “일부 은행을 제외한 대부분의 카드사가 기업구매전용카드에 대한 마케팅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말해 기업구매전용카드 실적 감소세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 “기업구매자금대출 전환 유도전략” 영향
시장 일각에서는 은행계 카드사들이 기업구매전용카드 이용 기업들을 기업구매자금대출 등 은행에서 다루는 고금리 대출 상품으로 이동시키면서 사용이 급감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기업구매카드는 가맹점수수료가 없어 카드사 입장에서는 수익성이 좋지 않다. 모 은행계 카드사의 경우, 기업구매전용카드 상품이 카드사에서 운영할 성격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취급액을 점차 줄였다. 이에 2010년 15조원에 이르던 실적이 이듬해 7조원으로 줄었고, 지난해엔 수십억원까지 감소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카드사 입장에서는 수익성이 없어 큰 관심이 없다”며 “기업구매 자금 대출 등 기업구매카드와 비슷한 성격의 상품이 나와 그쪽으로 자금이 대거 이동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가 언급한 ‘기업구매자금대출’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해당상품의 금리가 연 5.92%로 중소기업대출(5.81%) 전체 평균보다 0.11%포인트 높아 논란이 된 상품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은행권의 중소기업대출은 총 29조4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조4000억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만약 은행들이 수익성이 없는 기업구매카드 실적을 줄이면서 이를 고금리의 대출로 유도한 것이 사실이라면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 기업구매전용카드 이용실적 추이 〉
(단위 : 억원, %)
주1) 신용카드 이용실적 : 일시불+할부+현금서비스
주2) 2010년부터 하나SK카드 포함
주3) 2011년부터 KB국민카드 포함
(자료 : 여신금융협회 전자공시시스템)
김의석 기자 eskim@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