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금융신문은 우리 사회 은행계 금융지주사 지배구조의 일그러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노력과 더불어 특정 이해관계자 이해에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잘 잡는 충의로운 과정을 만들어 내려면 어떤 고려와 모색을 해야할 것인지 각각의 견해를 모아보는 시리즈를 이어 볼 계획이다. 〈편집자〉
지난 4일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이 물러나고 이에 조금 앞서 신임 회장으로 홍기택 중앙대 교수가 임명제청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국내 은행계금융지주(이하 은행지주사) 지배구조 관련 의제가 대부분 표출됐다. 강 전회장은 “버티기 하는 것도 아니고 ‘사천왕’도 아닌데 듣기 싫었다”고도 했고 “그룹의 불안한 운명을 앞두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몹시 아쉬워했다. 이임식을 마친 뒤 발길을 떼기 어려웠던 듯 다이렉트센터에 들르기도 했다. 국책은행으로서 기업/투자/국제 3개 분야에 강점을 지녔던 은행에서 지난 정부의 정책금융분리 및 민영화 정책에 따라 개인금융부문에 첫 발을 디디며 내놨던 역작이지만 혹평에 시달렸던 아픔이 새삼 되살아 났기 때문일 것으로 산은 관계자들은 추측했다.
정권 교체 앞에 명목 임기가 아무 소용이 없고 외부 인물 기용이 반복되는 금융사에 전략 및 정책의 연속성은커녕 단기 업적주의에 쏠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그간의 문제제기는 아무 소용이 없다. 이제 금융계에선 주요 은행지주사 CEO들 가운데 누가 누가 교체될 것이냐를 둘러싼 이야기가 최대 이슈가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하자 마자 임기가 남아 있는데도 퍼블릭 섹터(공적 영역)에 속하는 금융회사 CEO들이 물러나야 한다는 압박이 다각적으로 가해지면 이를 비판하는 여론 또한 어김 없이 형성되는 패턴이 당연시돼 왔다. 심지어 해당 금융사 노조가 출근저지에 나섰다가 발전적 협력을 다짐하며 수용하는 패턴조차 일반화 됐다는 지적의 소리도 있다.
◇ 과거 CEO 독선 논란 뛰어넘었던 4대천왕 담론의 속살
그런데 요즘 국면은 5년 전 또는 10년 전 정부 출범 초기 때와 다른 특징이 도드라졌다. 사실상 정부 지분 100%인 산은금융지주나 정부가 웬만한 의결을 할 수 있을 만큼 지분율이 높은 우리금융지주야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금융지주 CEO까지 새 정부 의중이 영향을 끼칠 것이냐는 것 또한 관심거리가 된 것이다.
이는 지난 정권 임기가 반환점을 돈 뒤부터 은행지주사 CEO들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봇물을 이뤘던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대한민국 금융사상 가장 막강한 권한과 예산을 주무르면서 실물경제 지원을 포함한 지속가능경영이나 사회공헌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다수의 미디어가 주고 받으며 이어 간 현상은 처음이었다. 일부 지주사는 은행노조로부터 은행 경영에 지나친 간섭을 하고 은행 내 노사관계를 뛰어 넘는 초법적 경영시스템으로 변질됐다며 저항하는 사태까지 빚어지기도 했다.
그 결과 CEO 교체 여부가 관심사가 되고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부터 전면 물갈이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금융계가 깜짝 놀랄 뉴스가 나오기도 했다. 일부 뜻있는 금융인들은 “CEO가 미디어들이 주도하는 비판여론의 표적으로 자꾸 오르 내리고 정권 교체와 함께 물갈이 폭이 커질 수 있다는 상황에 따라 정반대 처지로 몰아가고 만다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CEO나 외부 인사에게 허용되는 높은 자리에 발탁될 가능성이 있는 소수자에게는 ‘가슴 뛰는 열린 가능성’이지만, 금융계 종사자에게는 원칙과 기준도 모호한 채 낯선 사람을 조건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수동적 박수부대’로서의 역할 밖에 없다는 것이다.
◇ 90년대부터 황제경영 제동 걸려 숱한 제도 개선
감독기구에서 고위직을 지냈던 한 인사는 7일 한국금융신문과의 통화에서 “외환위기 전에는 은행장이 황제나 다름 없었는데 이를 바로잡자고 90년대 중반 주주, 고객, 공익대표들이 은행장을 추천하는 과정을 거치게 하고 최고 의사결정 권한을 이사회로 줬다. 성과급이 도입된 것도 이 때”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행장들이 불만을 표하면서 집행간부임명권이 은행장에 되돌아 오는 등 곡절을 거쳤다”고 술회했다. 꽤나 오랜 사례를 꺼내는 이유를 묻자 “그 이후로 회장, 은행장, 사외이사 등 독립적이고 객관적 추천과정을 거치겠다며 얼마나 잦은 제도 손질이 있었느냐?”고 되물어 왔다.
실제 거듭된 사외이사 독립성 강화와 선임절차 개선에도 불구하고 받아 가는 보수에 비해 바람직한 기여를 하지 않았음을 짐작케 하는 분석결과가 최근 나온 바 있다. 금융사 경영 평가를 활발히 내놓고 있는 ‘CEO SCORE’가 최근 내놓은 4대 은행지주 사외이사 활동 분석에 따르면 지난 7년간 연인원 105명의 사외이사들의 상정의안 찬성률은 평균 99.6%로 나타났다.
회추위니 행추위니 사추위니 독립적 역할을 기대하고 추천위원회를 열어도 낙하산 꼬리표가 붙는 CEO선임과, 그 CEO가 주도한 외부인사 영입은 결과적으로 전문성 시비를 반복해서 일으키기 일쑤였다는 것이 은행권 관계자들이 지적하는 오래되어 견고해진 관행인 것이다.
아직은 지금껏 여러 차례 직간접적 의견 표명 기회를 통해 드러난 금융당국 및 감독당국 수장들의 인식에는 이처럼 오래된 관행에 대한 반추와 근본적 성찰이 있었던 흔적을 드러내는 단초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정권 교체에 따른 국정철학 실천에 적합한 인물이 대거 등용돼야 한다는 담론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양상이다.“금융사 지배구조법안이 얼마나 잘 다듬어 내느냐가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느냐? 당면 현안에 대한 행보를 일사분란하게 할 수 있다면 외부인사를 투입하는 게 옳다는 생각이 관철되는 정치사회적 입지가 그대로”라고 평가하는 의견은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런 분위기에 금융실무 경험이 없는 인사가 대부분인 사외이사진이 어떤 시류에 편승할 것인지는 물을 필요가 없다는 냉소. 그리고 냉소 뒤로는 CEO가 바뀌고 전임 경영진이 했던 전략과 정책이 통째 뒤집어 지더라도 최단 기간 적응에 서두르는 금융계 종사자들의 운신법 역시 다시 재현될 공산이 커 보인다.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