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푼도 유입되지 않은 펀드 48개, 각종 제한으로 부진
저금리시대에 각광받고 있는 재형저축. 지난 6일 내놓은 재형저축을 놓고 은행과 증권사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재형저축이란 재산형성저축의 줄임말로 지난 1995년에 재원부족으로 폐지된 이후 최근 세법개정안이 시행되며 18년만에 부활한 초특급금융상품이다.
재형저축의 가장 큰 매력은 비과세다. 현재 일반예금은 돈을 맡긴 뒤 발생하는 이자 및 배당수익에 대해 14%인 소득세를 물리고 농어촌특별세 1.4%를 부과한다. 재형저축의 경우 이 가운데 소득세 14%에 대해 전액비과세다. 지난 3월 6일부터 은행, 증권, 보험사 등 금융사별로 재형저축적금, 펀드, 보험 등을 판매중이다. 똑같이 출발은 했으나 은행과 증권사의 판매액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차이다.
제로인에 따르면 은행의 재형적금은 출시 이후 2주 동안 유입액이 약 1000억. 하지만 같은 기간동안 재형펀드에 유입된 돈은 불과 60억원으로 무려 17배나 뒤진다. 설정액이 0원인 깡통펀드도 수두룩하다. 재형저축펀드 60개 가운데 48개가 자금이 유입된 돈이 한푼도 없다. 그마저도 전체 절반 이상이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의 한국밸류10년투자재형(채권혼합형)에 몰려있는 등 거의 개점휴업상태다.
재형펀드의 부진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다. 확정금리를 내세우는 은행의 재형저축(적금)에 비해 원금손실위험이 있는 재형펀드와 경쟁은 애초부터 게임이 안됐다. 가입자격은 급여소득 5000만원 이하 근로자이거나 종합소득금액 3500만원 이하 사업자다. 이들은 중산층으로 어느 정도 여유자금으로 투자하는 WM상품인 펀드를 편입하기가 쉽지않다. 서로의 궁합이 잘맞지 않다는 것이다
펀드이동금지 등 제약이 많은 것도 걸림돌이다. 재형펀드의 경우 매수 뒤 종목교체, 분산투자비율변경은 아예 불가능하다. 또 보통 펀드에서 허용되는 이전제도도 쏙 빠졌다. 이에 따라 세제혜택을 유지한 채 다른 운용사로 펀드를 이동할 수 없으며 판매사 이동제대상에서도 제외된다. 즉 재형펀드에 한번 가입하면 꼼짝없이 7년동안 묻어둘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안팎의 제한 때문에 상품라인업을 다양화하기도 쉽지 않다. 실제 파생, 주식의 자산배분으로 적극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파생형펀드는 60개 가운데 현대다이나믹스재형주식파생혼합형 단 1개다. 재형펀드유형은 대부분 국내 채권이나 해외채권에 투자하는 채권혼합형으로 스타일이나 운용방식이 엇비슷하다.
증권사 상품개발부 관계자는 “시장이 망가지면 중간환매한 뒤 시장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재형펀드는 7년동안 무조건 보유해야 한다”라며 “파생, 금리, 통화 등을 활용한 파생형펀드를 내놓을 수 있으나 가입자 투자성향이 안정지향적인데다, 제도적 유연성마저 떨어져 상품라인업을 다양화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 수익성에도 한계, 침체장기화될듯
증권사가 재형펀드에 대대적으로 드라이브를 걸기에도 부담스럽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재형펀드가 수익성에 크게 보탬이 되는 효자상품이 아니다. 감독당국이 수수료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탓에 재형저축판매수수료는 대략 1%로 기존 주식형펀드에 비해 30% 넘게 싸다
증권사 관계자는 “팔아도 남는 게 많지 않다”며 “하지만 고객을 전면 확대하고 동기부여를 하는 차원에 여타 펀드와 비슷한 수준으로 약정실적으로 잡아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문제들이 얽혀 전문가들도 재형펀드의 턴어라운드에 대해 신중한 반응이다. 현대증권 배성진 연구원은 “채권형의 경우 은행의 재형저축과 안정성면에서 거의 차이가 없다”며 “하지만 가입자 제한, 펀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펀드투자경험부족 등 객관적, 주관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재형펀드가 급속하게 늘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동양증권 김후정 펀드애널리스트는 “은행 재형저축의 확정금리는 최초 3년동안 그 이후 매 1년 단위로 변경돼 금리가 낮아질 가능성도 있다”며 “채권혼합형, 글로벌채권혼합형, 글로벌채권 등 안정적으로 운용되는 유형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장기적 수익률 제고를 위해서 재형펀드상품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성해 기자 haeshe7@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