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은행이 계열사 또는 사업부 형태로 카드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지급결제 계좌가 반드시 필요한 체크카드는 기업계 카드사에게 역차별이 될 수 있다. 금융당국이 체크카드 사용을 진작시키기 위해서는 모든 카드사가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길을 먼저 열어줘야 할 것이다.” 기업계 카드사 임원
체크카드 시장을 놓고 카드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번 주 발표할 ‘신용카드 종합대책’에서 체크카드에 대한 소득공제율을 종전 25%에서 30%로 상향 조정하는 등 체크카드 활성화 정책를 펼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카드사들은 상품 출시를 확대하는 한편, 마케팅활동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다만 금융당국의 의도대로 체크카드의폭발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삼성·현대·롯데카드 등 기업계 카드사가 체크카드 취급에 따른 지급계좌이용수수료 부담을 완화해주는 등의 정책적 배려가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 “체크카드 소득공제·세제지원 늘릴 것”
금융위원회가 약 3개월 이상 공을 들인 ‘신용카드 구조개선 종합대책’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골자는 신용카드 발급조건을 까다롭게 변경한다는 것이다. 카드사들이 신용카드를 발급할 때 고객의 소득, 재산수준, 신용도 등을 정확하게 평가해 자격없는 사람에겐 신용카드를 발급하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금융위는 이러한 ‘신용카드 발급제한’과 함께 체크카드 소득공제율을 25%에서 30%까지 올려 신용카드 대신 체크카드 사용을 독려할 계획이다. 체크카드를 통해 가계부채 증가, 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 요구 등 최근 불거진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게 금융위의 입장이다. 체크카드를 사용하면 자신의 예금내에서만 카드를 쓸 수 있어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신용카드와 달리 자금조달 비용 및 연체비용 부담이 없어 가맹점 수수료도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의 한 고위관계자는 “체크카드의 소득공제율만 높이는 것보다는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는 기준을 낮추는 것이 소비자에게 보다 실질적인 혜택을 준다”며 “서민 가운데 소득의 25% 이상을 소비하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연소득 4000만원인 직장인 이동건(가명)씨가 소득공제를 받기 위해서는 최소 1000만원 이상을 써야 한다. 만약 1500만원을 소비하면 500만원의 25%(체크카드 기준)인 125만원을 소득공제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소득 기준 자체를 20%로 낮추면 최소단위가 800만원으로 줄어들고 나머지 700만원의 25%인 175만원에 대해 소득공제를 받게 돼 소득공제액이 50만원 늘어난다.
금융당국은 또 체크카드 소득공제율을 지금까지 알려진 30%보다 더 확대된 35~40% 수준으로 늘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공제율이 40%로 확대되면 이씨의 소득공제액은 700만원의 40%인 280만원으로 늘어난다. 금융당국은 이와 별개로 이번주 발표할 신용카드 종합대책에 카드사들이 제공하는 일종의 보험 서비스인 채무면제ㆍ유예서비스(DCDS)의 보상범위를 5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보장항목 역시 종전 20여개에서 10여개로 축소하는 방안을 담을 예정이다.
◇ 체크카드 활성화 마케팅활동 강화
이에 따라 카드사들은 이례적으로 체크카드 이벤트를 진행하는 등 정부 정책에 호응해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 1개월 사이에 카드사들은 10여 종에 달하는 체크카드를 출시하고 다양한 경품을 내걸며 신규 회원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상호금융기관을 비롯한 우체국도 체크카드 상품을 잇달아 출시하며 시장에 진입했다.
하나SK카드는 최근 높은 비율의 대한항공 마일리지 적립(1000원당 최대 2마일)과 플래티늄 서비스를 제공하는 ‘하나SK 비바플래티늄(VIVA Platinum) 체크카드’를 선보였다.
현대카드는 개인사업자를 대상으로 사업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이 비즈니스(MY BUSINESS) C포인트 체크카드’를 출시했다. 이 카드는 부가세 환급지원, 전자세금계산서 월 250건 무료발행 등 개인사업자를 위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기업은행은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스마트 그린(Smart Green)체크카드’를 출시했고 부산은행은 에너지 절약과 녹색제품 구매 시 추가 포인트를 제공하는 ‘마이존 그린체크카드’를 내놨다. 산업은행과 롯데카드는 업무제휴를 맺고 내년 1월 특화 체크카드를 선보일 계획이다. 이 체크카드는 기존 체크카드보다 포인트를 0.4%포인트 정도 더 쌓아주는 것이 특징이다. 산업은행이 롯데카드로부터 계좌이용수수료를 받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가능한 혜택이다. 롯데카드 관계자는 “기존 체크카드의 포인트 적립률이 0.2%내외였던 것을 감안하면 산업은행 제휴 체크카드는 혜택이 2~3배 커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삼성카드와 현대카드도 산업은행의 체크카드 서비스 제공을 위한 업무제휴 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 삼성카드와 현대카드는 산업은행이 계좌이용수수료를 대폭 깎아준다면 산업은행과 손잡고 고객에게 혜택을 더 주는 체크카드를 발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체크카드 고객 유치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카드사들의 경품 경쟁도 치열해졌다. KB국민카드는 내년 1월15일까지 KB국민카드 홈페이지나 ARS를 통해 응모하고 행사기간 동안 KB국민 체크카드로 50만원 이상 이용한 고객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2012명에게 경품을 제공하는 ‘송구영신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신한카드는 내년 1월31일까지 체크카드를 신규로 발급받은 고객 500명을 추첨해 롯데월드 아이스링크 무료입장권(1매)을 준다.
한편 국내 체크카드 시장은 지난 9월말 현재 사용액 50조2000억원 규모로 전년 동기(36조3000억원)에 비해 38.1% 증가했다. 신용카드 사용액은 같은 기간 335조2000억원으로 10.5% 늘었다.
◇ 과연 체크카드 사용 활성화 정책 먹힐까
하지만 체크카드 활성화를 위해선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실효성 있는 체크카드 활성화 대책이 나와야 카드사들의 단기 이벤트가 아닌, 장기적 전략 수정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대기업 계열 카드사들은 체크카드 계좌이용수수료율 인하 및 소득공제 혜택 확대 등이 대폭 이뤄져야 신용카드에 올인하던 그간의 경영 전략을 수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일단 카드사들은 정부 정책대로 체크카드를 확대하는 움직임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도 “정부대책이 나와도 할부 구매가 안 되고, 혜택이 상대적으로 적은 체크카드를 정작 소비자들이 환영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소비자 입장에서도 체크카드는 신용카드에 비해 혜택이 턱없이 부족해 선택할 유인이 없다. 카드사 역시 외상개념이 없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수단이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삼성, 현대 등 전업계의 경우 0.2~0.5%의 은행계좌 비용을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 만큼 체크카드 영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이유가 없다는 게 카드업계의 전언이다.
게다가 일부 시중은행이 기업계 카드사와의 업무제휴를 꺼리는 것도 형평성 문제를 키우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계 카드사인 삼성카드와 현대카드의 경우 시판된 체크카드 중 은행과 제휴를 맺은 곳은 우리은행ㆍSC제일은행 두 곳이 유일하다. 때문에 두 카드사는 우체국ㆍ증권사 등과 같은 제1금융권 이외의 곳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기업계 카드사는 본격적으로 체크카드 사용을 활성화하기 이전에 은행계와 기업계 카드사 간의 형평성을 맞출 수 있는 조치가 선행되기를 바라는 눈치다.
여기에 신용평가사들의 반발도 해결해야 한다. 금융위는 ‘신용카드시장 구조개선 종합대책’에 체크카드 사용실적을 신용등급평가에 반영토록 하는 내용을 확정했다. 금융위는 최근 이 같은 내용을 NICE신용평가정보, KCB 등 CB사들에게 전달하고 관련 시스템 정비를 지시했다.
하지만 CB사들은 금융위의 방침에 불만을 표하고 있다. 신용평가 모델과 모순된다는 이유에서다. CB사 한 관계자는 “금융위의 방침은 지불수단인 현금을 신용평가에 반영하라는 것인데 이는 신용평가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융당국 내부에서도 이같은 방침을 놓고 이견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체크카드 사용실적을 신용등급평가에 반영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냐”고 반문해 대책 발표를 앞두고 내부적으로 적잖은 잡음이 있음을 암시했다.
〈 신용카드 종합대책 주요내용 〉
김의석 기자 eskim@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