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축은행 명칭을 변경하는 문제가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정치권에 이어 금융감독 당국의 수장인 김석동 금융위원장(사진)마저 저축은행 명칭에 대해 장기적 측면에서 고민을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하면서 업계의 뜨거운 쟁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미 지난 6월 정옥임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 30명은 저축은행 명칭을 바꿔야 금융소비자 피해를 막을 수 있다며 저축은행 명칭 환원을 골자로 하는 상호저축은행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은 상태다.
반면 저축은행 업계는 또 다시 명칭 변경문제가 대두되면서 긴장하는 모습이다. 특히 ‘신용금고’로 환원은 부정적 이미지가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 곤혹스러운 입장에 빠졌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저축금융회사’ 등과 같이 ‘저축’을 유지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검토할 수 있다는 의견도 개진되고 있는 상태다.
◇ 저축은행 1972년 상호신용금고로 출범
저축은행이 처음 제도화된 건 1972년이다. 8.3 긴급경제조치에 따른 이른바 사금융 양성화 3법의 하나로 상호신용금고법이 제정되면서부터다. 지금의 저축은행은 당시 상호신용금고라 불렸다. 과거 은행을 비롯한 제도금융기관은 제한된 금용자금을 경제성장을 위한 우선적인 육성부문에 공급하는 데 치중했다. 이에 따라 서민이나 소규모 기업은 대부분 사설무진회사나 서민금고 등을 통해 자금을 융통했다.
하지만 이들 사금융기관은 경영규모의 영세성 및 부실경영 등으로 도산이 속출했다. 결국 거래자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고 금융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이들 사금융기관을 양성화해 그 업무를 합리적으로 규제하려고 했다.
상호신용금고는 이런 배경 속에서 거래자를 보호하는 한편 담보력과 신용도가 취약한 소규모 기업과 서민을 위한 전문적 서민금융기관을 육성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다.
그런 상호신용금고는 2002년 저축은행으로 이름이 변경됐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저축은행권에 몰아친 대규모 구조조정 바람으로 업계 신뢰도가 땅에 떨어지자 금융당국은 이에 대한 수습책으로 명칭을 바꿔준 것이다.
하지만 이름에 ‘은행’이 들어가게 되자 저축은행이 기존 일반은행과 비슷한 거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 시민도 상당수 생겼다. 물론 일반은행과 저축은행은 엄연히 다르다.
무엇보다 저축은행에 돈을 빌리는 사람은 일반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사람과 신용에서 차이가 있다. 담보력과 공신력이 약한 소규모 기업이나 서민은 일반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쉽지 않다. 반면 저축은행은 이런 사람에게 조금 더 높은 이자율로 돈을 빌려준다.
담보도 취약하고 신용도도 낮은 경우에는 돈을 떼이기도 쉽기에 미리 이자로 챙겨두자는 계산이다. 저축은행이 서민을 위해 양성화가 됐다고 하나 근본은 사금융이기에 밑지는 장사를 할 순 없기 때문이다.
◇ 저축은행 상호 변경 논의 다시 불붙나
이런 저축은행이 또다시 명칭 변경 논란에 휘말리게 됐다. 정치권과 달리 이번엔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장기적 측면에서 저축은행 명칭을 변경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와관련 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저축은행’이라는 명칭이 시중은행과 구분이 모호해 금융소비자들이 저축은행에 대해 우량한 금융기관이라고 오해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저축은행 경영진단 등으로 나타난 불법 비리가 판치는 부실 금융회사에 ‘은행’과 ‘은행장’ 이름을 붙여주는 게 합당한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금융당국은 저축은행들이 은행장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면 고객들에게 ‘시중은행’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보고 사장, 대표 같은 명칭을 쓰도록 권고할 방침이다.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저축은행은 건전성 관리 측면에서 (시중)은행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며 “이런 상황에서 은행장이라는 명칭을 계속 사용하도록 용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상호저축은행중앙회는 2007년 2월 저축은행 CEO를 저축은행장으로 부를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저축은행 표준약관을 금융감독위원회에 신고했다. 이후 개별 저축은행은 은행장이란 직함을 자율적으로 사용해왔다. 하지만 최근 저축은행 영업정지가 잇따르자 금융당국이 다시 ‘은행장’ 명칭을 쓰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동안 시중은행들은 저축은행이 은행장 명칭을 사용하면 소비자들이 2금융권인 저축은행을 시중은행과 혼동할 수 있다며 반대해왔다. 6월 말에는 정옥임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 30명이 저축은행 명칭 자체를 상호신용금고로 되돌리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저축은행 명칭 변경은 법 개정이 필요하지만 저축은행 CEO 직함은 표준약관을 개정하거나 현장 지도만으로도 조치할 수 있다. 다만 저축은행 부실 사태로 예금자의 경계 심리가 높은 상황인 탓에 명칭 변경 시기는 뒤로 늦춰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 저축은행업계, 이미지 악화와 제반비용 부담 우려
저축은행업계는 명칭 변경 논의가 다시 제기되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예컨대 부실 사태의 근본 원인이 일부 저축은행에 있지 저축은행이란 명칭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명칭 변경은 ‘징벌적’인 방안이지 사태 해결에 접근하는 논리성이 결여됐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름에 집착하는 것보다 저축은행 업태의 성격에 맞는 적절한 명칭을 쓰는 쪽으로만 가면 되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있다. 저축은행 한 관계자는 “아무에도 명칭 변경의 핵심은 ‘저축은행’ 네 글자에서 ‘은행’을 떼내는 것”이라고 지적한 뒤 “ ‘저축금융회사’로 하면 어떡냐”며 제안하기도 했다. 2금융권 회사중 수신을 받는다는 점에서 ‘저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의석 기자 eskim@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