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금융위 대형IB청사진 제시
대형IB에 대한 밑그림이 그려졌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일 자본시장 제도 개선 민관 합동위원회를 열고 국내 투자은행 활성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날 논의된 핵심안건은 △대형 투자은행에 대한 신규 업무 허용 △자기자본규제정보교류 차단장치의 합리화 △IPOㆍ회사채 발행시장의 정상화 등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대형IB의 자격을 마련하고 그 규모에 맞는 업무를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실제 활성화방안에 따르면 대형IB의 경우 일정규모의 자기자본이 뒷받침돼야 설립이 가능하다. 그 커트라인은 M&Aㆍ증자 등을 통해 증권사의 대형화를 유도하면서 신규업무 수행에 따른 리스크를 감수할 능력 등을 반영하는 수준으로 그 규모를 약 4~5조원 선에서 제한할 것으로 알려졌다. 합병을 유도하는 차원에서 대규모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추진된다. 바로 헤지펀드가 타깃인 프라임 브로커(Prime Broker)업무의 허용이다.
이는 헤지펀드에 관련된 증권대차, 대출, 펀드재산 보관관리, 청산 결제, 매매체결 등 종합지원서비스다. 특히 핵심업무인 헤지펀드에 대한 일반적 신용공여, 펀드재산의 직접 보관관리 등은 위험관리 능력이 있는 대형투자은행만 허용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헤지펀드 등에 대해 신용융자 등 증권관련 신용공여 범위가 확대되며 증권 외의 투자(파생, 일반상품 등)와 관련된 대출도 허용된다.
프라임브로커가 수탁회사인 경우도 헤지펀드에 대한 신용공여 등 고유재산-펀드재산 사이의 거래도 풀어줬다. 기업대출도 허용된다. PF금융, 구조화금융 등 수행시 여신제공을 통해 기업고객에 대한 토탈솔루션 제공이 가능하다.
또 비상장주식에 대해 투자은행이 거래소 등이 개설한 정규시장ㆍATS(대체거래시스템)에서 고객주문을 집행하지 않고, 투자은행 내에서 고객의 주문을 집행하는 내부주문집행 업무(Internalizer)도 추진키로 했다. 대형IB은행에 대해 신규 업무를 허용하되 별도의 규제체계도 정립할 계획이다. 여신업무 신규 취급 등으로 대형 투자은행의 위험이 일반 증권사와 차별화되는 만큼, 자기자본 등 맞춤형 규제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현행 증권업의 경우 브로커-딜러가 중심인 까닭에 주식ㆍ채권 등의 시장리스크 측정ㆍ관리에 적합한 NCR(영업용순자본비율) 규제를 적용한다. 반면 대출 등 비유동자산 관련 신용 및 유동성리스크 관리가 중요한 은행권은 Basel 기준을 적용하는 등 업무별로 규제가 다르다.
대형IB에 대해 NCR 규제를 적용하는 경우 신용공여, 프라임브로커 등 업무가 위축될 수 있는데, 증권사 대출의 경우 NCR은 대출금액을 영업용순자본에서 직접 차감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업종별 규제의 특수성을 반영해 대형 투자은행에 적용되는 자기자본규제방식을 현행 NCR에서 Basel 기준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할 방침이다.
금융위는 이번 합동위원회에서 제시된 의견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하반기 자본시장 제도개선 방안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계획이다.
◇ 대형IB 인수합병카드 제한, 흥행실패 우려
대형IB에 대한 초안을 밝혔으나 금융당국의 구상대로 시장이 움직일지 미지수다. 무엇보다 인수합병을 통해 대형IB로 갈 수 있는 증권사가 몇안된다.
지난해말 증권사 자기자본 현황을 보면 대우 2.85조원, 삼성 2.73조원, 현대 2.65조원, 우리투자증권 2.58조원이다. 적어도 TOP5 증권사들끼리 합쳐야 당국이 제시한 대형IB기준에 충족된다. 하지만 정부가 지분을 보유한 지주회사의 계열사인 대우, 우리투자증권 외에 다른 대형증권사들은 인수합병을 통한 대형IB에 대해 미지근한 반응이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필요한 시기가 오면 검토할 수 있으나 현재로선 인수합병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대형IB의 유력후보로 꼽히는 미래에셋증권도 “해외시장확대를 위한 해외자산운용사, 증권사 합병은 추진하나 국내증권사의 M&A는 없다”는 게 공식적인 입장이다. 대형IB만을 위한 당근책도 소문난 잔치로 끝날 수 있다. 유력하게 추진되는 신규업무는 기업대출, 프라임브로커리지 허용. 하지만 이들 신규사업의 경우 기업대출은 종금사의 실적부진에 비춰보면 수익성이 신통치않고, 프라임브로커리지도 헤지펀드 자체의 규제가 많아 활성화될지 의문이다.
키움증권 서영수 연구원은 “만일 자본을 4~5조원으로 확대할 경우 적정 ROE를 맞추기 위해서는 현재 이익의 두 배를 상회하는 5000억원~1조원의 이익을 내야 하는데, 신규사업 부문에서 이같은 실적을 달성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고 말했다.
대형IB에 대한 진입장벽이 높아짐에 따라 시장수요가 떨어지는 것도 부담이다.
신영증권 박은준 연구원은 “자본규모가 되는 증권사에게 대형IB의 길을 열어줬는데, 현실적으로 중소형사 3~4개를 합쳐도 대형IB가 되기 어렵다”며 “높은 진입장벽으로 팔려는 쪽도 사는 쪽도 수요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최성해 기자 haeshe7@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