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위기 이후 증시가 급등했으나 이같은 안전자산 쪽으로 쏠림현상은 멈추지 않아 당초 안정적인 자산배분에 따른 ‘노후소득보장’이라는 퇴직연금의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 증시급등에도 퇴직연금 주식투자는 제자리
증시가 최근 연중 최고치를 돌파하며 오름세를 보여도 꿈쩍도 하지 않는 투자처가 있다. 바로 2005년에 도입된 퇴직연금이다. 노후생활 보장을 위해 DB(확정급여형), DC(확정기여형), IRA(개인퇴직연계좌) 등 다양한 메뉴를 갖춰 투자자의 성향에 맞게 다양하게 선택하도록 했다. 위험, 안전자산의 조합으로 노후를 대비하는 안정적인 자산운용을 꾀한 것. 문제는 운용상품이 원리금보장 쪽으로 거의 올인한다는데 있다.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가 지난 22일 발표한 ‘퇴직연금 적립금의 주식투자금액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퇴직연금적립금 가운데 원리금보장상품 비중은 88.7%인 반면 주식투자금액은 2.7%에 불과했다. 이는 가입자들이 수익성보다 안정성을 중시해 변동성이 심한 위험자산인 주식투자를 꺼렸기 때문이다.
실제 원리금보장상품의 비중은 DB형 96%, DC형 69.4%, IRA 82.2%에 달한다.
위험자산에 대한 최대 퇴직연금의 투자한도는 DB형 70%, DC형 및 IRA는 40% 이하로 제한된 점을 감안해 운용상품별로 주식최대편입비율도 산출했다.
이를 근거로 퇴직연금의 주식투자액은 2010년 2월 현재 약 2.7%인 4,040억원으로 조사됐다.
제도유형별 추정금액은 DB형 673억원, DC형 2,980억원, IRA 388억원. 이 가운데 DB형은 원리금보장상품의 비중이 96%에 달해 주식투자금액이 다른 유형에 비해 매우 낮았다.
전체 적립금의 28.5%를 차지하는 DC형은 주식에 40% 이하로 투자하는 채권형펀드에 편입된 주식비중이 28%로 상대적으로 높았다.
아울러 퇴직연금 도입 이후 주식비중은 2~5%대에 머물렀다. 도입 당시 퇴직연금 적립금이 자본시장으로 흘러 투자자, 시장 모두 이익을 주는 선순환 구조로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가 어긋난 셈이다. 업친데덮친격으로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5%에서 2.5%로 절반으로 축소됐다. 올 상반기 1700p를 넘으며 연중최고치를 기록하는 증시급등에도 주식투자비중은 여전히 2%대에 맴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선진국 퇴직연금의 주식비중은 압도적으로 많았다. 미국, 영국, 호주 등 퇴직연금 선진국들은 지난 2009년 말 기준 퇴직연금 주식비중은 각각 61%, 60%, 57%를 기록해 우리나라와 정반대의 투자패턴을 보이기도 했다.
◇ 원리금보장 쪽으로 올인…노후소득보장도 흔들
이 같은 불균형에 대해 우려도 흘러나온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오진호 선임연구원은 “저금리기조가 유지되는 가운데 원리금보장상품 쪽으로 편중될 경우, 노후소득보장이라는 퇴직연금 본래의 목적을 성취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지나치게 안전자산 위주로 운용하면 물가상승에 따른 소득감소로 정상적인 노후생활이 어렵다는 것.
한국채권연구원 이태호 이사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이태호 이사는 “DB사업자나 D/C근로자 모두 투자전문성이 부족한 것이 주요 원인”이라며 “한쪽으로 쏠리면 본연의 기능인 은퇴보장에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선진국에 비해 굉장히 소극적인 투자형태”라며 “지난해 퇴직연금 실적배당형 채권형 수익률이 16%로 원리금보장 상품에 비해 좋은 점을 감안하면 묻지마식 선택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태호 이사는 “최근 사업자 사이의 고금리경쟁으로 쏠림현상은 오히려 더 깊어지는 상황”이라며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의 양극화가 계속되면 사업자나 가입자에게 모두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성해 기자 haeshe7@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