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경우 협상 체결 이전에 들어온 포트폴리오투자나 헤지펀드 등 투기자본들의 안전한 자본회수를 돕고 외국 금융기관 및 자본들이 국내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최근 한미FTA협상에 대한 장외논의가 활발해짐에 따라 그동안 상대적으로 영향이 덜할 것으로 여겨졌던 금융부문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25일 금융경제연구소가 한미FTA를 주제로 연 간담회에서 금융산업노조 정명희 국제부장은 “한미FTA 금융부문 협상은 미국 금융자본의 한국진출이 가속화되고 기존의 감독 및 법체계에 비춰 한국의 능력 이상으로 규제완화가 추진돼 시스템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보험 증권 자산운용업의 업무영역 확대로 은행업무 일부에 대한 겸업요구가 확산되고 열거주의에서 포괄주의 방식으로의 변화를 꾀하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금융 규제가 요구되고 이는 곧 금융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 법인·지점진출 규제완화 “공정한 게임 안돼”= 최근 정부는 한미FTA 협상과 관련해 법인 또는 지점으로 진출하는 ‘상업적 주재’에 대해선 네거티브 시스템을, ‘국경간 거래’에 대해선 소비자보호 강화를 위해 포지티브 시스템 유지를 목표로 했다.
상업적 주재는 현재 대부분 개방됐지만 나머지에 대한 규제완화를 요구받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측은 외국계은행 한국지점의 경우 본점 자본금을 인정하는 게 아니라 국내에 투자된 실질금액을 자본금으로 인정함으로써 영업에 제한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개인소비자대출 한도 책정상의 불이익, 외국환거래한도의 제한, 자본적정성 및 유동성에 대한 요구조건에 있어서의 불이익, 중소기업과 비4대 재벌기업에 대한 대출의 불이익 등이다.
국경간 거래·신금융서비스 허용 때 ‘시장잠식’
금융경제硏, 최근 간담회서 문제점 집중조명
이는 동북아금융허브와 맞물려 규제완화 분위기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정 부장은 “최근 금감위가 국제신용도가 일정 수준 이상이고 높은 수준의 감독을 받는 외은지점의 경우 본점자본금을 인정하기로 했다”며 “이는 미국 뿐 아니라 독일 프랑스 싱가포르 대만 등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본점자본금이 인정될 경우 미국은행과 국내은행의 자본금 및 자산규모면에서 몇 십배의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공정한 게임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외국계은행의 경우 조달금리 등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며 막강한 자금력과 저렴한 금리로 국내 금융시장에서의 지배력은 급격히 상승할 것이라는 논리다.
또 사실상 기업과 금융기관과의 외국환거래와 파생상품에 대한 한도가 존재하지만 본점자본금을 인정하면 이에 대한 영업한도는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도 내다봤다.
◇ 국경간거래 허용 때 각종 리스크 노출 = 국경간 거래는 상대국에 법인이나 지점 혹은 사무소 등의 상업적 주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로 자국민이 특정한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다. 대부분의 국가가 일부를 제외하고 허용하지 않고 있지만 IT기술의 발달과 FTA를 통해 빠른 속도로 허용하는 추세에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은 국경간 거래를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규제와 감독체계가 전무한 상태다. 결국 금융서비스 제공국가인 미국의 감독당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불러온다고 지적했다.
국경간거래는 가상공간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운영, 평판, 유동성, 국가, 외환위험 등 각종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그러나 국내 금융당국이 가상공간의 각종 위험을 통제하고 모니터링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춰져 있는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결국 국내 소비자보호나 금융시스템 안정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조달금리 등의 이점으로 외국의 금융사들이 국내 소비자들에게 고수익 상품을 선보이면 국내 시장의 잠식은 불을 보듯 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 신금융서비스, 여차하면 고객 피해로 = 신금융서비스의 허용은 미국측이 특히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신금융서비스 중 파생금융상품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고 국내의 경우 파생금융상품 중에서도 통화파생거래가 54.8%로 가장 높은 것으로 집계된다.
이 경우 원화가 국제적 결제기능을 담당할 여건이 돼 있지 않아 이 시장을 개방하더라도 국내은행들은 통화파생거래에 당분간 집중할 수밖에 없다. 결국 미국은 다양한 상품개발을 통해 국내 시장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포괄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열거주의를 채택하고 있어 국내 금융회사에 대한 역차별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아울러 소비자 보호를 위한 감독체계와 분쟁해결제도를 정비하지 않을 경우 자칫 소비자 피해로 돌아갈 수 있다는 지적은 이미 여러 차례 제기됐다.
정 부장은 “다만 미국-싱가포르간 FTA처럼 최소한의 전제조건을 붙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즉 △자국의 금융기관에도 공급을 허용하는 신금융서비스 △별도의 법제정·개정이 필요없는 신금융서비스만 허용하는 것을 비롯해 △한국의 파생상품시장의 거래규모가 일정 수준에 이를 때까지 적어도 5~10년 유예를 받아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원정희 기자 hggad@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