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칼아이칸과 KT&G의 경영권 분쟁 등 외국자본의 국내 기업 적대적 인수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면서 이에 대한 방어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국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기간산업 및 공공법인에 대해서 외국자본의 적대적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법안을 열린우리당 이상경 의원과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 등이 발의했다. 지난 12일엔 공동으로 주최한 ‘외국자본 규제’ 토론회가 열려 주목된다.
◇ “외국에서는 더 노골적 규제”= 이날 참석한 토론자들은 미국의 엑슨-플로리오법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일본 등 주요 국가들 대부분이 자국의 알토란 기업을 지키기 위한 각종 규제를 가하고 있다고 한결같이 주장했다.<표 참조>
미국은 지난 1988년 외국인들에 의한 미국내 주요 산업의 인수합병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해한다고 판단되면 이를 저지할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에게 주는 ‘엑슨-플로리오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에 따라 미국의 대표적 항공기 제조업체인 멕도널 더글러스사에 대한 타이완 에어로스페이스사의 투자계획이 무산됐다. 일본의 니콘이 미국의 퍼킨-엘머의 하이텍 사업을 매수하려고 했지만 자진 철회한 사례도 소개됐다.
아울러 영국은 산업법 및 공정무역법 규정에 따라 외국자본 투자철회 권한 등을 통해 인수를 규제한다. 프랑스도 국방 철강 에너지 등 11개 전략산업에 대해 정부가 거부권 행사 및 매각 대상 기업이 원치 않으면 M&A를 제한하는 법안도 추진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 국내에선 ‘5%룰’ 뿐= 반면 국내에서 외국자본은 공개매수와 주식대량 보유에 따른 신고(5%룰) 규정 외에는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서강대학교 왕상한 교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선진 각국이 다양한 기업인수합병 방어책으로 중무장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공격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구조로 돼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한 대목이 눈에 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승철 상무도 “5%룰은 ‘단순투자’와 ‘경영참여’ 여부만을 확인할 수 있고 위장된 특수관계자에게 지분을 분산해 투자할 경우 대량보유 신고를 회피할 수 있어 방어자가 사전에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현재 외국인투자촉진법으로 일부 업종의 외국인투자 제한 규정이 있지만 주식취득 한도만을 규정해 투기자본 규제에는 한계가 있다.
지난 1997년 1월엔 상장법인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의무공개매수제가 도입됐지만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의 요청으로 이듬해 폐지됐다.
◇ 법 추진 탄력= 열린우리당 이상경 의원은 에너지·운수·통신산업 등 국민경제상 중요한 국가기간산업에 해당하는 공공적 법인에 대해 외국인이 주식을 매입하려고 할 때 금융감독당국이 이를 심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증권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금융감독위원장을 위원장으로 한 ‘유가증권취득심의회’의 사전심의를 받도록 한다는 게 특징이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외국인투자촉진법과 외국환거래법 개정안을 통해 경제정책 수립 및 경제질서 유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외국인투자에 대해 시정 또는 중지를 명령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명령을 위반한 경우 외국인투자 관련 허가를 취소하는 등의 사후제한 근거도 마련했다.
심 의원은 “M&A에 대해 개별기업 차원의 방어책으로는 상호주식소유, 차등의결권 주식제도, 포이즌 필, 황금주 등이 있지만 이는 재벌규제라는 가치를 훼손하는 문제가 있다”며 “우리는 외국자본에 대한 정부의 직접규제라는 원칙에 따라 법을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이승철 상무는 “포이즌필, 차등의결권, 신주예약권 등의 경영권 방어제도를 경영진이 과도하게 활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나, 기업여건에 맞는 방어제도를 주주 스스로 판단해 도입토록 근거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공공적 법인의 대상을 반도체 자동차 철강 금융 등 국민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중요 산업 및 일정규모 이상 기업 등으로 확대해야 한다”고도 소개했다.
이들 법안은 오는 4월 임시국회 상임위에 상정돼 본격 논의될 전망이다.
그러나 ‘동북아금융허브’를 추진하고 있는 정부는 자칫 외국인 투자유치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며 법 개정에 난색을 표하고 있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외국 제도 비교>
<한국판 엑슨-플로리오 법은>
원정희 기자 hggad@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