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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火)’와 ‘힘(力)’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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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03-04-13 10:27

[김병규 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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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중순 방한하여 많은 한국인들을 만난 틱낫한 스님(프랑스 거주)의 법문내용이 자주 화제가 되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스님의 법문 속엔 현실을 꿰뚫는 내용이 담겨있어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인지 스님의 일거수 일투족이 세인의 관심을 끌었고 법문 한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어떤 종교든 교리자체는 대체로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그는 불교의 교리를 현실에 대입(代入)하여 완전히 녹인 다음 보통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는데 성공했기에 국제적 명성을 갖게 되지 않았나 해석된다.

실제로 지난 달 18일 평화심포지엄에서 선진국들의 과소비 행태를 비판할 때 청중들 모두가 크게 공감하는 태도였다. 이라크 전쟁에 대해 언급할 때도 비슷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특히 스님이 “미국은 (이 공격으로 인해)업보(業報)를 받을 것”이라면서 불법의 가르침을 들어 반전이유를 설명할 때는 장내가 숙연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종교인으로서 그의 활동은 19일의 평화포럼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는 “‘대화와 소통’이 이루어질 때 모든 두려움·분노·잘못된 이해 등이 사라지며, 평화의 길은 바로 여기서부터 열린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한국이 처한 현실에 관한 것으로 해석될 법한 내용도 설명했다. “변화는 ‘깊이 상대방의 마음을 듣고’ ‘사랑의 말로 표현’하는 것이어야 한다”면서 평화주의적·무저항주의적 방법론을 제시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흔히 볼 수 있는 성직자와는 달리 인간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라 ‘듣는다’는 표현을 썼다. 막연히 그리고 대충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넓고 깊이 있게 이해’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그런 다음 ‘사랑의 말로 표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틱낫한 스님이 이번 방한에서 밝힌 가장 인상적인 법문은 ‘성냄’에 관한 것이었다. ‘성내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가장 쉽게 범할 수 있는 큰 잘못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강조하고 ‘화(火)의 폐해’가 인간생활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드는가를 알기 쉽게 설명, 청중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일찍이 ‘화(anger·火)’라는 저서를 펴낸 바 있는 그는 그 책에서 “‘화’는 모든 불행의 근원이며 ‘화’를 안고 사는 것은 독(毒)을 품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그는 “‘화’를 다스려야만 타인과의 사이에 얽혀 있는 모든 매듭을 풀고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제시했다.

틱낫한 스님은 비슷한 시기에 펴낸 ‘힘(power·力)’이라는 또 다른 저서에서 “삶을 바꿀 수 있는 힘은 내 안(內)에 있다”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찾아내기 위해선 “먼저 ‘화’를 소멸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현대인들은 강력한 힘을 원하지만 부(富)와 명예(名譽)로 대표되는 ‘세상의 힘’은 우리의 삶을 안정되고 평화롭게 만들기보다는 일과 시간에 쫓기는 노예(奴隸)로 만들었다”면서 “마음을 열고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진정한)힘을 일깨울 것”을 호소했다.

외국종교인의 말이지만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으면서 우리가 안고 있는 고통을 진단하고 처방까지 내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시대의 지도급 인사들은 매사를 앞서 언급한 ‘세상의 힘’으로만 재단하려는 무지에서 속히 벗어날 것을 촉구한다. 그 ‘힘’이란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힘’이란 결코 ‘화난 마음’에서 나오지 않는다. ‘화난 마음’은 ‘화’가 나자마자 마음의 형평을 잃은 상태로 전도되기 때문에 하나의 거대한 힘으로 형성되지 않을 뿐 아니라 순수한 형태로 전달되지도 않는다.

매사에 ‘화’를 내는 사람은 성공하는 일이 드물다. ‘화’는 분노로 연결되기 마련이고 분노는 다시 원한을 잉태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를 삭이면 만사가 쉽게 풀린다. 대체로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이 ‘화난 마음’을 품고 산다. 반면 이타적(利他的)인 사람들은 ‘화난 마음’을 벗고 사는 법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개혁의 지연은 불가피해질 공산이 크다. 경제부처의 책임자들은 특히 ‘화’를 앞세워 일을 처리해선 안된다.

<객원논설위원>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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