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당국과 증권예탁원이 추진하고 있는 ‘신탁재산 예탁결제 인프라 구축사업’이 계획 초기단계부터 난항이 예상된다.
이번 사업의 기본 취지에 대해서는 관련업계의 이견이 없지만, 시스템 구축상의 비용 문제와 세부 방안의 실효성 등에 대해서는 이해 당사자간에 상당한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금감원과 증권예탁원은 우리나라 자산운용산업의 업무 인프라를 개선하고, 현재 국회통과를 앞두고 있는 자산운용업법 제정방향의 실효성을 높인다는 취지로 증권회사, 자산운용회사 등 관련업계와 함께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구체적인 사업방안으로는 우선 간접투자증권을 증권예탁원으로 일괄 예탁 수용토록 하고, 펀드의 설정, 환매내역의 통지, 확인업무를 표준화해 예탁 결제 네트워크에 의해 집중 처리토록 하는 것이다.
증권회사 등 관련업계는 펀드의 설정, 환매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에 대해서는 대체로 그 당위성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종래 운용회사, 증권회사, 수탁은행 3자간의 펀드 관련업무가 표준화 미비로 불필요한 비용과 시간을 소모하고 있어 이 시스템의 구축으로 상당한 업무효율성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특히 펀드 운용지시와 실제 매매현황, 펀드 약관과 실제 운용지시의 일치 여부가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될 수 있기 때문에 펀드의 투명성이 확실히 보장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시스템 구축비용 부분이다. 증권예탁원이 구상하고 있는 결제인프라는 해당기관의 전산시스템의 수용환경에 따라 자율적 선택이 가능한 듀얼방식이다.
예를 들면 예탁원이 생각하는 결제시스템은 해당기관들의 펀드 관련정보들을 한 곳에 모아두고 거기다 색인을 붙여 이용자들이 표준화된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조회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도서관 서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따라서 관련 기관들이 해당 정보를 조회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조회도구로서의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하는 것이다. 매일 매일의 매매정보를 일방적으로 통보만 하는 판매 증권사는 별 부담이 없지만 사무수탁회사라든가 운용회사 입장에서는 보안측면이나 비용면에서 적잖은 부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11일 열린 3차 실무자회의에서 한 사무수탁회사 관계자는 예탁원에 대해 결제시스템 구축시 이러한 관련기관들의 부담을 고려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예탁원측은 업무부담 가중 등의 이유로 난색을 표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적용 통신프로토콜의 선정문제에 있어도 해당기관간에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예탁원은 은행 등 금융권에서 보편적으로 사용 중이라는 이유로 X.25를 적용하겠다고 했지만, 최근 증권업계나 투신업계에서는 TCPIP를 일반적으로 채택하고 있고 X.25보다 더 진보한 프로토콜이라는 점을 들어 반대입장을 개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간접투자증권을 예탁원으로 일괄 예탁 수용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관련업계에서는 그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증권예탁원은 간접투자증권을 일괄예탁 수용하게 되면 증권 종류별로 다르게 수행되는 증권발행 및 소각업무를 예탁원의 예탁자 계좌부 및 수익자명부에 기재 일괄관리하게 됨으로써 실물 간접투자증권의 발행을 억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종래 수익증권은 책형증권으로 발행내역을 관리하고 개별 증권은 발행하지 않고 있는데, 이 때문에 투자자가 수익증권을 양도 또는 담보로 제공해 유동성을 확보하고자 해도 이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워 환매 압력을 받고 있다는게 예탁원의 주장이다.
이 때문에 양도·담보설정을 위한 불필요한 증권발행수요가 늘어나고, 발행기간을 기다릴 여유가 없는 투자자들은 곧바로 환매를 해 펀드 자금이 이탈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간접투자증권의 일괄예탁방안은 국내 펀드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펀드 영세성의 문제를 해결할뿐더러 궁극적으로는 자산운용산업을 활성화 시킬 수 있다고 예탁원은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관련업계 실무자들은 그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우선 투자자가 수익증권을 양도하고자 하는 경우는 상속 등 특수한 경우에 한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양도성의 제약이 펀드자금 이탈의 원인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단일 네트워크에 의한 청약·환매업무가 표준화되면 추가설정을 통해 수익증권 판매망을 넓혀 펀드대형화 기반을 만들 수 있다는 발상은 수익증권의 본질을 오해한 것으로 지적했다. 즉, 청약·환매업무가 표준화 된다고 해서 수익증권의 추가설정 판매를 위해 판매회사가 인력과 비용을 들여 전산시스템을 구축하겠느냐는 것이다.
증권사 한 실무담당자는 “예탁원이 수익증권 일괄예탁을 통해 펀드대형화를 이루겠다는 발상은 펀드대형화의 선결조건이 무엇인지를 착각한 데서 나온 것”이라며 “오히려 펀드대형화가 선행되고 나면 일괄예탁의 필요성이 생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증권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신탁재산예탁·결제인프라 구축계획이 제도의 취지와 달리 별다른 실효성이 없이 증권예탁원의 수익사업을 하나 더 늘려주는 꼴이 되는 게 아니냐 하는 우려도 일고 있다.
배장호 기자 codablue@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