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는 1인당 국민소득이 겨우 3백70달러에 불과하고, 1억3천만명의 인구 가운데 36%가 하루 한끼를 해결하기 조차 어려운 세계최빈국 가운데 하나다. 이런 악조건의 상황에서 많은 가난한 아낙들이 ‘그라민 은행’의 도움으로 새로운 삶을 열어가게 되었고 대부분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 ‘어머니’란 단어는 그들이 이 은행을 지칭할 때 흔히 쓰는 대명사인데 이를 설립자인 무하마드 유누스씨가 그대로 옮긴 표현이다. 경제학 박사로서 전직 교수인 유누스씨는 26년전 이 사업을 벌였으며 은행 설립 후 지금까지 최고경영자로 일하고 있다.
‘그람’이란 말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그라민’은 형용사로서 ‘농촌의’ 또는 ‘마을의’ 라는 의미가 된다. 유누스 행장은 그의 저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최근 번역 출간)에서 인간의 삶이라고 표현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최악의 가난에 묻혀 살아가는 빈민층의 고난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구제불능 상태에서 지금의 생(生)을 마감했을지도 모를 사람들이다. 처참한 형편에 놓였던 방글라데시 농촌의 극빈자들이 이 은행에서 빌린 돈으로 생업의 일거리를 만들고, 새로운 삶을 개척하며 활기차게 살아가는 삶의 드라마를 그는 대 서사시처럼 펼치고 있다. 융자금을 줄 때 희망과 꿈까지 한 묶음의 패키지로 지원해주는 것이 ‘그라민 은행’의 대출방식이다.
방글라데시는 문맹률이 85%에 달하는 나라다. 융자신청서도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거의 전부다. 이런 여건에서 원래 무일푼인데다 담보제공 능력도 없는 농촌 아낙들에게 오직 신용만으로 돈을 꾸어 준다. 이른바 소액융자(microcredit)이다. 27달러를 42명에게 대출해줄 정도로 건당 융자금액이 소액이다. 방글라데시 농촌마을의 절반이 넘는 3만6천개의 마을에 1천1백75개의 지점을 개설, 1만2천명의 직원이 일하는 건전한 은행이다. 이미 2백40여만명 가난한 사람들에게 원화로 약 3조3천6백억원을 적금대출 형식으로 융자해 주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돈을 빌려간 사람의 95%가 여성인데 이들은 빌려 간 돈(원금)의 98%(총액기준)를 약속한 상환기일에 어김없이 갚는다는 점이다. 이 회수자금이 주요 재원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또 융자해 줌으로써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사례가 방글라데시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또 여성이기에 질곡의 삶을 살아야 하는 오랜 전통의 사회적 악습(지참금, 조혼, 여성학대, 강제이혼 등)에서 해방되고, 죽지 않는 이상 해결될 수 없었던 인권을 되찾게 되는 감동어린 장면들이 전세계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최빈국인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주목되는 점은 이 은행의 대출금리가 연 20%로 우리의 서민들이 금융기관에서 융자받는 금리보다 훨씬 낮다는 점이다. 경제발전은 말할 것 없고 금융산업의 조직이나 운영체제·방식 면에서 월등하게 선진화된 우리의 대출금리가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보다 높다는 사실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최근 몇 년 동안 국내(토종)대금업체들이 적용해온 소액대출의 대출금리는 연 130-180%였다. 일본계 대금업체는 연 90-130%, 국내 저축은행들은 연 60%-80%를 적용해 왔다. 외형적으로 볼 때 국내에서 영업하는 대금업체들의 금리수준이 방글라데시의 극빈자 은행에 비해 최저 3배, 최고 9배가 높다는 것은 원인규명이 필요한 과제라 해도 과언이 아닐성 싶다.
특히 일본계 대금업체의 경우 올해 초부터는 대출재원으로 쓰이는 소요자금을 본국에서 가져오지 않고 국내 저축은행 등에서 차입조달, 내국인에게 다시 융자해 줌으로써 ‘현지에서 자급자족하는 형태’로 손쉽게 돈을 버는 양상이다. 최초의 외국인 은행장으로서 얼마 전까지 제일은행장으로 재임한 월프레드 호리에씨가 오는 10월 한국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일본내 서열 5위인 대금업체 레이크의 한국지사장으로 소임을 바꿔 다시 한국에 온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고리대금 시장 전망이 밝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최근 대금업법 시행령에서 정부가 대출금리의 상한선을 연 66%로 정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종래와 같은 고금리 적용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외국 금융업자들에게 가장 좋은 틈새시장으로 각광받는 우리의 고리대금 시장을 어떻게 해야 안정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인가, 조속히 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금융사정이 아무리 어렵다 해도 국민들에게 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의 연 20%보다 높은 대출금리를 적용할 수는 없지 않은가.
<주필>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