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자동차가 마침내 GM에 팔렸다. 하이닉스 문제에 가렸지만 국내 기업구조조정의 ‘이정표’를 세운 것만은 확실하다.
좋은 소식에도 불구하고 정건용 산업은행 총재의 얼굴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정 총재는 “하루 한 갑도 안 피우던 담배가 두 갑으로 늘었다”며 연신 손이 담배갑으로 갔다. 그만큼 마음고생이 많았다는 얘기다. 대우-GM의 역사적인 본계약 체결이 며칠 지났지만 아직까지 얼굴이 굳어 있었다.
정 총재는 “기분이 착찹하다. 자존심도 많이 상했다. GM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대우차 매각 같은 비굴한 협상이 다시 나타나선 안된다”는 말로 차 한잔을 시작했다.
정 총재는 한 달 전까지만 해도 GM의 일방적인 ‘고자세’로 협상중 난관에 봉착했다. GM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당시 여론과 정부측도 빠른 시일내에 대우차를 매각했으면 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헐값에 대우차를 매각 할 수 만도 없는 처지.
그때 정 총재는 GM측에 다른 원매자를 찾아보겠다는 반응과 대우차 정상계획안을 가지고 있다는 카드를 GM측에 내보였다.
정 총재는 “GM에 대한 압박용으로 일본 도요타 자동차 회장을 만나러 갔다. 매각 결렬에 대비해 대우차 위탁경영에 대해 심도 있는 얘기를 나눴고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고 그 당시를 회상했다. 이러한 다양한 움직임으로 GM을 협상 테이블로 다시 끌여 들였고, 마침내 대우차 해외매각을 마무리했다.
하이닉스 문제에 대해서 정 총재는 “하이닉스도 빠른 시일내에 매각을 재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우차처럼 시간을 끌다 어려운 처지에 봉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 총재는 또 “구조조정의 틀은 마련되었지만 아직까지 국내 기업 구조조정이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며 “부실기업을 신속 과감하게 정리해 국내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기업구조조정등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인 구조조정 참여자들의 ‘자기 밥그릇 챙기기’ 사고방식을 빨리 내 던져야 할 것”이라고 일부 인사의 모럴해저드를 강력히 비판했다.
한편 산업은행은 ‘국책은행’이라는 과거의 경직적인 사고 방식을 버리고 환골탈태하고 있다. 정 총재는 취임후 “일선 지점장들은 거래 기업의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되라”고 강조했다.
계속 강조해온 ‘기업에 관련된 모든 금융문제는 산은이 모두 해결한다’는 기업금융 마인드가 정착 단계에 들어서고 있는 것.
선이 굵고 합리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정 총재는 73년 행시 14회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이후 옛 재무부 금융관련분야에서 요직을 두루 거친 금융정책통이다.
정 총재는 재무부에서 국장승진과 함께 관세청으로 전출돼 미국 스탠퍼드대 연수를 마친후, 97년 외환위기시 금융정책국장을 거쳐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재직해 왔다. ‘카리스마 정’이라고 불릴 만큼 성격이 뚜렷한 정 총재는 철저한 이론무장과 탁월한 기획력, 추진력을 바탕으로 좌중의 분위기를 압도한다는 평이다.
<대우차 변천사 >
▲72년 6월7일= GM코리아 설립(신진-GM 50대50 출자)
▲76년 11월17일= 새한자동차로 상호 변경
▲78년7월= 대우 경영 참여(산업은행 지분 50% 인수)
▲82년12월8일= 대우-GM, 경영권 대우 이전 합의
▲83년1월= 대우자동차로 상호 변경
▲92년10월29일= GM과 결별, GM측 지분 50% 전량 인수
▲98년2월2일= 대우-GM, 전략적제휴 MOU 교환
▲99년 8월26일= 대우 12개 계열사 워크아웃 결정
▲2000년 1월28일= 채권금융기관 워크아웃 협약 체결
▲2월14일= 입찰참여 의향서 접수(GM,포드,다임러크라이슬러,피아트,현대차)
▲6월29일= 우선협상 대상자로 포드 선정
▲9월15일= 포드, 최종 인수제안서 제출 포기
▲10월7일= GM-피아트 컨소시엄, 인수의향서(LOI) 제출
▲10월17일= 새 경영진 취임(이종대 회장.이영국 사장.자판 이동호 사장)
▲10월31일= 대우차, 3천500명 감원 등 자구안 발표
▲11월8일= 대우차 최종부도
▲11월10일= 대우차 법정관리(회사정리절차) 개시 신청
▲11월30일= 법원, 법정관리 개시 결정(법정관리인 이종대)
▲2월16일= 대우차, 1천750명 정리해고-노조, 총파업 돌입
▲5월30일= GM, 인수제안서 제출
▲6월4일= GM.채권단, 협상 개시
▲8월16일= 대우차, 회사정리계획안 제출
▲9월21일= GM.채권단, 양해각서(MOU) 체결
▲2002년 4월9일= 대우차 노사, 단협개정 합의
▲4월15일= 대우차, 수정 회사정리계획안 제출
▲4월30일= GM-채권단, 본계약 체결
한창호 기자 che@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