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시작된 일은증권의 총파업 파장이 증권업계는 물론 은행 보험등 국내 전금융권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바로 외국계 경영진과의 ‘문화충돌’이라는 문제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것. 세계화와 글로벌화로 대변되는 국내 경제상황 속에서 조직내부의 이 같은 문화충돌 문제는 여러 차례 논쟁의 핵심으로 부상된 적은 있지만 국내 금융권내에서 이처럼 표면화되기는 처음이다.
특히 이번 일은증권 총파업은 최근 금융권의 구조조정과 외국계 자본 유입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발생했기 때문에 더욱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에 따라 업계전문가들은 이번 일은증권 총파업 향방이 향후 외국계 자본의 유입과 외국계 금융사들의 경영활동에 큰 잣대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실상 일은증권의 총파업 사태는 리젠트증권과의 합병과 이로 인한 노조원의 고용안정 문제라는 단순한 민생고 해결 차원에서 벌어진 것이 아니다. 이는 일은증권 전체 노조원중 90%가 넘는 인원이 파업에 참여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확연히 들어 난다.
보통 금융권의 노조 파업은 영업직 노조원들의 업무 안정화를 인정하고 사측과 합의를 불러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파업 자체가 공멸의 싸움이 아니라 노사간 이익과 상생에 대한 이해차이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은증권 노조원들이, 특히 영업직 노조원들이 회사의 운명을 걸고 파업에 동참한 것은 회사를 운영하고 모든 결정권을 가진 외국인 경영진과 국내 임직원간의 문화충돌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업계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실제로 일은증권 내부의 문화충돌은 시기적으로 리젠트증권 인수시 보다 피터 에브링톤 대표의 취임이후 더욱 표면화됐다는 전언이다. 조직운용과 업무방식등 모든 경영활동과 업무패턴에 대해 외국인경영진과 국내 임직원과의 시각차이가 컸다는 것이 일은측의 설명이다.
또한 이익추구라는 경영활동의 목적은 같아도 이에 대한 접근 방식과 문제 해결 방법이 크게 달랐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이같은 조직환경속에서도 서로 다른 시각차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화등의 특별한 노력이 없었다는 것도 이번 총파업 발생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일은증권 관계자는 “파업사태는 비단 임단협에 대한 의견차이로 빚어진 결과가 아니다”며 “이면에는 피터 사장의 취임 후 경영활동과 업무방식, 조직내 문제 등에 대한 조합원과의 잦은 충돌과 이로 인한 서로간의 불신이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리젠트화재 자금지원으로 발생한 노사간 대립도 이같은 시각차이에서 비롯된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당시 피터 대표는 계열사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자금지원 결정을 내렸지만 조합원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됐다. 경영진의 입장으로서는 계열사의 경영정상화를 위한 자금지원 결정이 당위성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임직원들과 함께 어떤 방식으로 결정을 내릴 것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 너무 소흘했다는 지적이다.
이번 일은증권 총파업이 금융노조는 물론 국내 금융회사 경영진들의 주목을 받는 것도 이 같은 문화충돌이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표면화됐기 때문이다.
현재 금융권 실무자와 노조는 이번 총파업이 외국계 자본에 의해 재편되고 있는 국내 금융권 구조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이 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는 외국계 금융사의 경영진과 노조원들의 관심은 배가되고 있는 실정이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외국계 자본이 급속도로 유입되고는 있지만 실리추구에 집중하는 서양인들의 사고방식과 조직과 혈연에 집착하는 국내 임직원들의 사고방식이 트러블을 일으키는 일이 많이 있다”며 “국내 경영활동에서 무엇이 우선시 되는지 또한 어떤 식으로 서로 다른 시각차이가 좁혀질 지 이번 일은증권 파업사태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직 일은증권 총파업 사태는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제는 문제의 핵심이 문화충돌이라는 보이지 않는 문제에서 고용안정, 임금인상등 가시적인 문제로 축약됐지만 협상에는 전혀 진전이 없는 상태이다.
이로 인해 오는 23일 공식출범하는 합병증권사, 브릿지증권에도 악영향이 예상되고 있다. 이번 총파업으로 일은증권의 영업력이 이미 크게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결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노사간 이익과 상생에 대한 이해차이를 줄이는 방식은 생각보다는 단순할 수 있다. 금융권 한 원로의 말처럼 ‘아직 서로간의 노력이 부족할 뿐’이다.
임상연 기자 sylim@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