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산업 개편 맞춰 ‘마켓메이커’로 거듭나야”
국내 증권산업의 맥을 이어온 증권사 브로커들이 그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최근 증시침체가 장기화되는 반면 시장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면서 브로커들의 평균 실적은 2년전과 비교해 1/4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 더욱이 대체거래수단으로 탄생한 사이버증권거래가 70%에 육박하면서 브로커들의 역할을 뿌리채 흔들어 놓고 있는 실정이다.
증시침체와 사이버거래의 증가는 자연스럽게 증권사 수익악화로 연결되고 이는 다시 긴축경영으로 이어지면서 이제는 지점과 브로커들에 대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 업계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증권사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점진적인 구조조정으로 떨어져 나간 증권사 브로커들만 해도 수백여명에 이르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할 뿐”이라며 “증시침체로 인한 수익악화는 증권사들이 더 이상 브로커리지에 의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어 향후 증권산업 개편과 맞물려 현재의 1/3 가량이 시장에서 자연퇴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지난해 중반부터 올해 초까지 삼성 대우 현대증권 등 10개 대형증권사들속에서 퇴출되거나 투자상담사 등 계약직으로 바뀐 브로커들만 해도 500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세계 경제의 동반침체로 국내 증권시장의 침체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임에 따라 증권사들마다 지점 통폐합, 인력축소 등 초긴축 경영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증권사 영업추진부 한 관계자는 “지점의 적자가 위험수위에까지 다다랐다”며 “현재 증권사 전체 지점중 30%정도가 지점 직접비용도 못 맞추고 있어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또 그는 “이에 따라 증권사들마다 적자 지점통폐합 및 인력축소 등을 고민하고 있으며 실제로 이를 추진하고 있는 곳도 있다”고 덧붙였다.
업계전문가들의 말처럼 1450여개의 증권사 전체 지점중 430여개가(30%) 적자고 이에 대한 점진적인 구조조정 작업이 시작됐다면 지점당 평균 5명만 잡아도 2150여명 정도가 정리대상으로 뽑힌다는 계산이다. 이중 브로커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60% 정도이다.
브로커들의 위기감은 이것만이 아니다. 증권산업 개편과 함께 찾아온 영업환경의 변화는 기존 브로커들의 시장 퇴출을 부추기고 있다. 브로커리즘으로 대변되는 국내 증권산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마련된 랩어카운트가 바로 그것.
선진금융기법의 급속한 도입과 투자요구의 변화에 따라 도입된 랩어카운트는 필연적으로 브로커들의 구조조정을 전제로 한다. 수수료 체계에 있어서 랩어카운트는 위탁매매수수료의 1/3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증권사 수익이 줄어드는 만큼 브로커들에 대한 구조조정의 강도도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이는 비록 랩어카운트의 도입으로 증권시장이 안정을 되찾는다고 해도 증권시장 내부적으로는 큰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국내 증권산업은 아직까지 금융산업 변화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있지 않아 이에 따른 고통도 클 수 밖에 없다”며 “브로커에 대한 구조조정은 향후 국내 증권시장 생존을 위한 필연적인 단계로 밖에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 99년 종합주가지수가 1000포인트에 육박할 때만해도 브로커들의 입지는 단단해 보였다. 증권산업을 이끌어가는 견인차로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당시 유례없는 대호황에 브로커들 사이에서는 억대의 연봉은 물론 성과급만으로도 수천만원을 챙기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하지만 브로커들의 이 같은 호황은 단지 2년도 채 안돼 구조조정이라는 고통으로 변해가고 있다.
‘IMF속에 찾아온 갑작스런 호황에 눈이 멀었다’는 한 브로커의 말처럼 이들의 미래는 충분히 예측될 수 있었다. 즉 당시 호황속에서 증권사와 브로커 등 시장참여자 스스로가 미래를 위해 투자했다면 지금과 같은 대규모 구조조정은 피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단 2년간의 급변화를 반면교사로 삼아 증권산업 개편에 적응해 나간다면 ‘마켓메이커(Market Maker)’
로서 브로커들의 설 자리는 충분히 있다는 것이 업계전문가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어쩌면 몇번의 풍파를 거쳐 나온 국내 브로커들은 이미 글로벌화된 증권시장에서 스스로 헤쳐나갈 혜안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임상연 기자 sylim@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