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銀, 칼라일 변덕에 오리무중...합병 무산땐 부담
외환銀, 직원들 반대불구 경영진.대주주 마음 굳힌 듯
한빛銀, 침묵으로 일관...“경영진 끝까지 은행지켜야”
은행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은행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한 금융당국의 압박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다. 은행장들을 한사람씩 금감위로 불러서는 왜 당신네 은행은 아직 성과가 없냐고 다그치기가 일쑤고 은행장들이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면 은행장의 신상과 연계된 말까지 하면서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있다는 것이 은행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런 면에서는 전임 이헌재 위원장 보다 훨씬 심하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래서인지 은행장들은 요즘 하나같이 안색이 말이 아니다. 대개 만나면 한숨을 쉬거나 새벽에 잠을 깨면 잠을 못 이룬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철저하게 자기 이익에만 관심이 있는 외국인 대주주가 버티고 있고 고용안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노조가 총파업을 불사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장들만 다그쳐서는 될 일이 아니라는 게 금융계의 중론이다.
금감위는 우량은행 부실은행 가리지 않고 연일 합병 성사를 독려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성과는 미지수다. 물론 금감위 생각대로 대통령이 노벨상을 받고 돌아올 때는 뭔가 가시적 결과가 나올 지도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역시 신한은행은 얄미울 만큼 빨랐다. 한미-하나은행의 합병 선언이 예상 외로 진통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은행권에서 가장 먼저 지난 8일 구조조정의 테이프를 끊었다. 제주은행을 위탁경영 방식으로 인수한 후 장차 신한은행 그룹 지주회사에 편입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총자산 규모가 1조3000억원에 불과해 설령 합병을 바로 해도 부담이 거의 없는 신용금고 수준의 초미니 은행을 인수함으로써 정부의 토끼몰이식 합병 압박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구조조정 정책에 적극 협력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현재 추진하고 있는 독자 지주회사 설립도 차질없이 끌고가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신한은행이 제주은행 인수로 정부의 구조조정 압박에서 완전 벗어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 견해도 없지 않지만 금융계에서는 신한은행이 이처럼 실속 위주의 ‘장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제일교포 주주라는 든든한 백그라운드가 힘이 되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국책은행을 제외한 모든 은행들이 정부의 합병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가장 코너에 몰린 곳은 아마 한미은행일 듯 싶다. 한미은행은 칼라일-JP모건으로 부터 외자를 유치하면서 증자가 끝나는 대로 하나은행과 합병을 하겠다고 금감위와 약속을 했다. 또 외자가 들어오면서 대주주인 칼라일 컨소시엄측에는 은행장 등 임원들이 모두 사표를 제출해 둔 상태다. 이같은 상황에서 당초 쉽게 동의할 것으로 예상됐던 칼라일측이 한국의 은행 구조조정에 따른 이해득실을 계산하면서 하나은행과의 합병 선언이 꼬이고 있다.
신동혁 행장은 금융당국은 물론 일종의 대국민 약속이 돼 버린 하나은행과의 합병 성사를 위해 칼라일 컨소시엄을 설득하는 등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어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금융계 일각에서는 한미은행이 하나은행과의 합병선언을 미루는 것이 다른 생각이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지만 하나은행과의 합병이 무산될 경우 한미은행 경영진이 받게 될 타격이나 국민, 주택은행등과 합병할 경우 예상되는 한미은행 직원들의 부담을 감안하면 근거없는 것으로 보인다.
한미-하나은행의 합병이 만약 무산된다면 근본 원인은 철저하게 자신들의 이해관계만 쫓는 해외 펀드를 공공적 성격이 강한 은행의 대주주로 영입한 데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정부 입장에서도 뉴브리지캐피털 때문에 이미 스타일을 구긴데 이어 또 다시 미국계 펀드에 허를 찔리는 우를 범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지주회사 방식을 통한 외환은행과 한빛은행의 합병에 대해 금융계에서는 아직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지만 예상외로 급진전되고 있다. 한빛은행에 신뢰감을 상실한 금융당국이 외환은행을 끌어들이겠다는 의지가 확실하고 외환은행 경영진도 내심 생각을 굳힌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코메르츠가 변수가 될 수 있지만 독일계 은행의 경우 미국계와 달리 눈앞의 이익에 급급, 정부와 맞서기 보다 정부당국과 협조하는 전통이 강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코메르츠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투자분에 대한 보장만 전제된다면 합병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물론 외환은행 내부적으로는 반발도 만만찮다. 노조는 물론이고 일선 영업점에서는 며칠전까지만 해도 독자생존을 자신하면서 고객들에게 ‘약속’하고 편지까지 보냈던 은행 경영진이 하루아침에 말을 바꾸고 나온 것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는 분위기다. 이같은 격앙된 분위기는 정부 주도의 지주회사에서 외환은행이 중심이 되도록 하겠다는 금감위의 약속이 사탕발림에 불과하다는 인식과도 무관치 않다. 한 일선 영업점장은 “어떻게 5000명 조직이 1만명 조직을 흡수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지점장은 “나이브한 외환은행의 기업문화로는 억센 상업 한일은행을 결코 휘어잡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현대 그룹 위기가 재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미리 정부의 핵우산 밑으로 들어가자고 경영진은 주장하지만 현대가 쓰러지면 다른 은행은 괜찮겠냐”고 되물었다.
여기에다 정부당국이 내년 10월부터 정부 주도 지주회사를 홀세일은행, 리테일은행. 투자은행등 사업부제 식으로 재편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데 대한 회의론도 KEB맨들이 한빛은행 지주회사에 편입을 꺼리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외환은행 영업점 직원들은 사업부제라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있다.
이같은 반대 기류에도 불구 외환은행이 한빛은행 지주회사에 들어간다면 그 원인은 점잖기만 한 해외 대주주, 상대적으로 온건하고 순응적인 경영진에서 찾아야 한다는 소리도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요즘 한빛은행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선발 시중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또 다시 4조7000억원의 공적자금을 받아야 하고 내달 초 관악지점 사건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를 앞두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도 외환은행이 정부 지주회사를 주도하고 이를 위해 한빛은행 직원들을 무더기로 정리하겠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데도 거인 한빛은행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의욕이 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경영진이 마지막까지 은행을 지키는 데 발벗고 나서야 하지 않겠냐는 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박종면 기자 myun@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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