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써 은행들의 원화 후순위채 발행을 의무화하고 발행금리를 통해 은행들이 신인도를 시장에서 평가받도록 하겠다던 금융당국의 구상은 완전 빗나가고 말았다.
28일 금융계에 따르면 올들어 보완자본 확충을 위한 은행의 원화 후순위채 발행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후순위채가 부유층의 투자수단을 넘어 세금회피 용도로 전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달초 은행중 최초로 10.5%의 금리에 1000억원을 창구에서 판매했던 하나은행의 후순위채는 시판 4시간 만에 동이 났고 지난 21일 같은 금리에 1500억원을 팔았던 외환은행 후순위채 역시 반나절만에 소진됐다.
신한은행은 만기를 5년3개월로 늘이고 금리를 10%로 낮췄지만 목표한 1000억원을 일주일만에 전액 판매했다. 판매를 담당한 은행 관계자들 조차 후순위채의 인기에 놀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은행은 발행 금리를 5년만기 국고채 수익률에 육박하는 9.65%로 낮춰 내달 9일부터 판매할 예정이며 앞으로 조흥, 한빛, 한미은행 등이 판매할 계획이어서 1/4분기에만 1조원에 가까운 원화후순위채가 쏟아질 전망이다.
이처럼 은행 후순위채가 개인 고객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데 대해 은행 관계자들은 예금상품에 비해 고금리인데다 안정적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보다는 5년 이상 장기채권에 대한 분리과세 혜택으로, 내년 시행이 예상되는 금융소득종합과세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후순위채를 판매한 은행 창구에는 1000~2000만원 정도 투자하려는 고객보다 적게는 1억원에서 많게는 10억원이 넘는 뭉칫돈으로 후순위채를 사겠다는 부유층들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는 게 은행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편 이처럼 은행의 후순위채 발행이 세금회피 수단으로 전락하는 등 이상 과열 현상을 보이자 금감원은 최근 은행들의 원화 후순위채 의무발행 방침을 철회하기로 입장을 바꿨다.
박태준 기자 june@kf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