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예금보험공사의 재원 확충이 시급한 상황이다. 현재 예보에 남아있는 구조조정기금채권 발행한도는 7천억원. 지난달 제일은행에 4조2천억원을 투입하면서 채권발행한도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반면 예보가 앞으로 투입해야 할 공적자금 규모는 최근 천문학적인 규모로 늘어났다. 정부가 대한생명에 공적자금 투입후 재매각을 결정함에 따라 당장 1조5천억원을 지원해야 한다. 또 HSBC로의 매각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서울은행에 대해서도 공적자금 투입해 경영을 정상화한 후 매각을 추진하는 방안이 검토중에 있어 여기에도 4조원 규모의 자금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예보의 공적자금 투입은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헌재 금감위원장이 내년 초 은행들이 BIS비율 10% 달성하지 못할 경우 공적자금을 투입할 방침이라고 밝혔고 당장 대우사태와 관련 환매에 시달리는 투신사들이 정부에 지급보증을 요청하고 있는 실정이다. 1조2천억원을 출연한 서울보증보험이 대우그룹에 대한 지급보증으로 다시 위기를 맞고 있어 이에 대한 추가지원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오는 9월 5개 인수은행의 풋백옵션 마지막 정산이 남아 있고 은행에 대한 퇴출종금사 예금대지급 규모도 5조원에 달한다. 예보 관계자는 “적어도 20조원 안팎의 기금채권이 추가로 발행돼야 원활한 지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전용키로 결정한 성업공사 부실채권매입기금 12조원도 최근 국회 공전으로 이행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예보는 금융기관 차입 등 다각적인 재원 확보 방안을 마련 중에 있다.
성업공사의 형편도 비슷하다. 올해 총 28조원어치의 부실채권을 매입할 예정이었던 성업공사는 부실채권정리기금 12조원이 예보로 넘어감에 따라 매입규모를 당초 계획보다 10조원 안팎 줄일 수 밖에 없다는 입장. 성업공사의 경우 현재 8조5천억 가량의 자금이 남아 있으나 금융기관에 대한 정산대금 등으로 이중 4조5천억원을 지급해야 하고 서울은행에 대해서도 1조원 가량의 부실채권을 매입해야 해 재원은 턱없이 부족한 상태.
이같은 재원부족과 함께 금융기관 구조조정의 순조로운 진행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 예보와 성업공사간의 ‘불협화음’이라는 지적이다. 부실채권 매입후 부족액의 출연 등 상호 보완관계에 있는 양 기관이 소속 부처가 다른 이유로 묘한 갈등을 보이고 있는 것. 지난달 성업공사 부실채권정리기금을 예보에서 전용하는 과정에서도 양측이 마찰을 빚었고 지난 4월 5개 인수은행에 대한 1차 출연에서는 예보의 지급보류 방침에 성업공사가 “일방적인 처사”라며 노골적인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같은 양측의 갈등은 결국 금감위와 금융기관 감독권 부활을 꿈꾸는 재경부간의 ‘힘겨루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지난 4월에는 예보의 조직확대에 대해 금감위가 “현 구조조정 흐름에 역행하는 처사”라며 반대하기도 했다.
은행의 한 관계자는 “재원 부족과 함께 성업공사와 예보가 서로 다른 상급기관의 눈치를 보느라 협력관계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 금융산업 구조조정의 또 다른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박태준 기자 june@kf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