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금융계에 따르면 거의 준비없이 사업부제를 시작한 몇몇 대형은행들은 사실상 외형만 사업부를 덮어 씌운 기형적인 조직운영이 지속되고 있다. 이들 은행의 특징은 사업부별 독자경영과 전문화에 거의 진전이 없어 사실상 사업부제의 기본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 관리회계시스템을 아직 개발중인 국민은행은 사업부 형태로만 조직을 바꿨을 뿐 아예 사업부별 실적평가 및 원가배분이 불가능해 과거의 조직운영방식과 다를 바 없는 형태다. 오히려 사업본부장들의 책임경영이 안되는 상태에서 부행장(전무)제 마저 폐지돼 은행장의 업무 부담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한빛은행은 지난 1월 사업부제 원론에 비교적 충실하게 제도를 도입했지만, 5개월만에 다시 조직개편을 검토중이다. 사업본부간의 업무분장이 비효율적이고 임원수가 부족하다는 내부 분석에 따른 것으로, 국제금융본부 신설·지역본부 확충등을 모색중이지만, 사실상 과거의 大部제와 유사해 사업부의 후퇴가 아니냐는 관측이다. 실제로 사업부제 도입후 부작용이 크다고 느끼고 있는 대형시중은행들은 기존 조직시스템으로 돌아가 충분한 준비기간을 거쳐 재도입 여부를 결정하는 편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지만, 금융당국의 눈치를 보느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사업본부장들에게 모두 부행장 직위를 주는 등 외견상 가장 구미식에 가깝게 접근했던 주택은행 역시 합리적인 원가배분과 성과평가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안돼있어 최고경영자 의존도가 가장 높은 곳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CEO(은행장)’가 사실상 사업본부장의 의견을 조율하고 대외적으로 대표기능만하는 구미식 사업부와는 전혀 개념이 다르며, 전문인력 양성과 연봉제 도입등 사업부제에 맞는 인사제도 도입 역시 요원한 일로 여겨지고 있다.
사업부제 도입을 검토중인 조흥은행은 태스크 포스에서 이같은 타행들의 문제점을 집중 분석, 지동현 비상임 이사를 중심으로 신중한 접근법을 모색하고 있다.
이에비해 지난해 2월 사업부제 도입에 이어 1, 2차 영업점 구조조정을 마치고 6개월간 본격적으로 사업부제를 운영해온 신한은행은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새로운 경영체제에 적응, 이미 그 성과가 영업실적에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한은행은 올들어 중소기업대출 순증액만 5천억원에 달해 치열한 경쟁의 와중에서도 시장점유율이 대폭 신장했다. 또 사업부제 시행과 함께 점진 도입한 CRM·CSS 등 위험관리시스템의 정착으로 타행을 압도하는 대출자산 증가에도 불구하고 신규대출의 신용등급(1~8등급)이 기존 거래에 비해 평균 3등급이상 상향 조정된 것으로 집계됐으며, 신규 개인대출의 연체율도 1%대에 머무는 등 외형성장과 함께 자산구조의 질적 개선도 이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신한은행측은 영업력이 크게 강화된 요인으로 RM·PB등 직능별 전문가들이 제기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초기에 우려했던 점장급 상위직 간부들도 SRM(Senior Relationship Manager)등으로 순조롭게 정착, 특유의 기업문화와 융화되는 단계에 와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신한은행의 사업부제가 이처럼 빨리 정착되고 있는 것은 지난 95년 BCG로부터 컨설팅을 받아 사업부제를 권유받은 후 즉시 도입하는 대신 2년여간 관리회계시스템등 인프라를 구축, 비교적 준비기간이 길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상당 기간동안 투자비용을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부제 도입시점까지 준비가 충분치 않아 망설일 수 밖에 없었다”며 “사업부 시스템의 완성과 내부 구조조정을 끝내는 시점을 2천년으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성화용 기자 yong@kf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