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응찬 행장의 퇴진 여부가 올해 신한은행 주총의 최대 이슈지만, 아직 단정적인 예측이 어렵다. 지난 주말까지 은행장 후보 추천위원회가 구성되지 않아, 후임 행장 인선 준비가 시작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라 행장 본인의 의사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 라행장 본인이 스스로 퇴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설도 있었지만, 이 역시 확실치는 않다. 늘 스스로에게 경영책임을 묻는 라행장 특유의 책임사퇴론일 수는 있지만, 간헐적으로 표명해온 辭意를 주주들이 선뜻 받아들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이번 주총에서 라행장이 퇴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할만한 근거 또한 없다. 홍세표 외환은행장마저 사의를 표명하는 등 최근 은행권에는 ‘고참 은행장’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무엇보다도 금융당국이 그런 흐름을 강요하는 듯한 분위기다. 주총이 24일로 잡혀있긴 하지만, 설연휴 이후에도 서둘기만 하면 행추위 구성 및 후보 추천등의 절차를 밟을 시간은 있다. 따라서 라행장과 신한은행의 지배주주들이 어떤 결론을 내릴지는 이번주말까지 지켜봐야할 것 같다.
다만 분명한 것은 라행장이 여전히 신한은행의 정신적인 구심점이며, ‘최우량 민간은행’을 일군 주역이라는 사실이다. 은행장중에서 나이가 많기는 하지만, 그를 ‘구시대 인물’로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격동기에 신한은행이 리스크를 피하려면 오히려 1~2년쯤은 라행장 체제가 이어져야한다는 견해가 많다. 다만 이미 지난해부터 ‘새로운 지배구조’를 준비해왔고, 신한은행이 라행장 1인에 모든 것을 의존해야 할 정도로 불안한 조직은 아니라는 점에서 모종의 ‘결단’ 이 내려질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을 것 같다.
라행장 퇴진을 전제로 한 후임 행장 후보들은 이곳 저곳에서 거명되고 있지만, 신한은행의 인사 특성을 고려할 때 막연하게 예측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집행위원회에 들어갈 3명의 경영진과 나머지 계약직 경영진등을 고려하면 전체 경영진 숫자는 종전과 비슷하거나 한 둘이 줄어드는 정도가 될 전망이다.
한미은행은 지난 12일 정기주총에서 신동혁 행장을 선임, 1개월여의 공백 끝에 새 사령탑을 맞게 됐다. 물론 신 행장은 공식 취임 전인 지난 1월부터 주요 부서로부터 업무 브리핑을 받고 사업부제 시행과 관련해서도 깊숙히 의견을 개진하는 등 직간접으로 경영 준비를 해왔으며, 주총에서도 사실상의 임원인사권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신행장은 이번 주총에서 감사를 포함한 3명의 상임 임원과 2명의 상임위원(이사 대우)을 임기와 무관하게 퇴진 시킴으로써 예상보다 훨씬 경영진을 파격적으로 물갈이 했다. 초임 임기를 확실하게 채운 경영진은 조국현 씨 밖에 없고, 황정환닫기

신 행장이 경영진 개편을 과감히 시도한 것은 최근 은행가 전반의 개혁 기류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한미은행이 비록 우량은행그룹에 들어있고, 지난해 경영실적도 괜찮은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예년과 같은 평이한 인사로 마무리짓기에는 최근의 금융환경이 너무 각박하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조직 내부에 긴장을 불어넣고 부분적인 승진인사를 단행함으로써 간부진에 동기부여를 하는 효과도 얻기를 바랬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인사에 대한 직원들의 시각도 비교적 호의적이다. 상임위원으로 승진시킨 서방현, 정경득씨등은 이미 승진이 예상됐던 인물들이다. 전남 여수 출신으로 광주고와 서울대를 나온 서방현씨는 45년생으로 늦깎이 승진을 한 셈이다. 그동안 호남출신 임원이 하나도 없었다는 점을 고려한 지역안배 케이스이기도 하다. 정경득씨는 51년생, 부산출신으로 부산고와 연세대를 나왔다. 정경득씨가 승진함으로써 처음으로 경영진 연령이 50년대 출생자로 넘어가게 됐다. 정본부장은 부점장급의 서열과 실적, 고과등을 종합할 때 승진 1순위로 꼽혀왔다. 결국 신행장은 이번 주총에서 과감한 경영진 물갈이와 함께 여러가지 정황을 고려한 예측범위 내의 승진인사를 병행함으로써 새롭고 안정적인 진용을 갖추게 됐다.
성화용 기자 yong@kf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