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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생산적금융과 밸류업 사이, 은행의 딜레마

장호성 기자

hs6776@fntimes.com

기사입력 : 2025-11-17 05:00

▲ 장호성 기자

▲ 장호성 기자

[한국금융신문 장호성 기자] 이재명정부 출범 당시 ‘코스피 5000 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한 것을 보고 다소 허황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당시만 해도 코스피는 3000도 넘기지 못하며 2800~2900선을 횡보하고 있었다.

부동산 편중이 기형적으로 고착화된 우리나라 자산구조상 정부의 계획대로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흘러갈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정부가 부동산 중심에서 주식 시장으로의 자금 이동을 꾸준히 독려해온 결과, 거짓말처럼 3분기 들어 코스피는 가파르게 상승하며 꿈의 4000선을 돌파했다. 물론 여기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분야 대장주들의 급상승이라는 착시효과가 있지만, 어쨌거나 지수가 오른 결과 금융지주의 주가도 연초 대비 두 자릿수의 상승을 보이며 주주들을 기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도체와 조선, IT 등 기술주들이 시장의 주목을 받으며 연일 고공행진하고 있는 반면, 금융지주 주가는 좀처럼 시원하게 오를 기미가 없다. 장중 1~2% 반짝 상승에 그치고, 이내 제자리로 돌아오는 흐름이 반복된다. 이익은 꾸준히 내고, 배당도 후하건만 시장의 평가 잣대는 여전히 냉정하다.

사실 그 이유를 단순히 성장성 부족으로 돌리기엔, 올해 금융권의 기류는 복잡하다.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밸류업’과 ‘포용금융’이 한 몸처럼 병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정부는 금융지주와 은행들이 그간 ‘손쉬운 이자장사’에 치중해왔다며, 부동산과 가계대출 중심의 사업구조에서 탈피해 벤처·모험자본 투자를 비롯한 ‘생산적 금융 대전환’을 로고로 내걸었다.

그런데 이보다 앞선 지난해에는 금융지주들이 주주가치 제고에 적극 나서야 한다며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도 주문했다.

문제는 이 두 가지 방향이 단기적으로는 상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수익을 늘려야 배당을 확대할 수 있지만, 동시에 사회적 재원 출연과 정책금융 참여가 늘면 자본비율과 순이익은 줄어든다.

은행으로선 어느 쪽도 쉽게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이다. ‘금융이 공공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원칙에 반대할 순 없지만, 그러면서 주주환원율을 높이라는 요구까지 맞물리면 경영전략은 꼬일 수밖에 없다.

시장은 바보가 아니다. 지난해 밸류업 정책이 선언된 이후 단기적으로 일부 금융주 주가가 반짝했지만, 결국 상승세는 주춤했다. 실제로 주요 기술주들이 연초 대비 5~10배 가까이 오르는 동안 금융주들은 약 1.5배 정도 오르는 데에 그쳤다.

밸류업이 실제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기엔 시간이 필요하고, 당국이 요구하는 생산적·포용 금융은 곧바로 비용으로 반영되기 마련이다. ‘밸류’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현금흐름’이다. 자본이 묶이는 구조가 유지되는 한 주가 부양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금융지주들이 기업으로써 일정 부분 사회적 책임을 나눠져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 책임이 ‘의무적 자본투입’ 형태로만 나타나면, 결국 또 다른 형태의 ‘관치금융’으로 흐를 수 있다. 은행들은 ‘적정선’이라는 얇디 얇은 외줄 위에서 리스크라는 짐을 지고 위험한 곡예를 이어가야 한다.

금융지주들이 진정한 밸류업을 이루려면, 자율적인 자본 운용과 투자의 자유가 전제돼야 한다. 수익성과 공공성의 균형을 잡는 일은 결국 금융회사 스스로의 전략적 판단이어야 한다.

최소한 생산적금융을 장려하고 싶다면, 적어도 정부가 중기대출 관련 RWA 규제의 미세조정만큼은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망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여신에 대해서는 위험가중치를 일부 완화해, 은행이 자본규제 부담 없이 시장금융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기업대출을 동일 잣대로 평가하면, 은행들은 자연스럽게 ‘리스크 대비 수익’이 높은 부동산이나 우량차주 대출로 다시 쏠리게 된다. 이는 생산적 금융의 취지에도 어긋난다.

올해 금융지주들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임무를 부여받고 있다. 국민경제의 버팀목이 되라는 요청과 함께, 주주가치를 높이라는 명령이 동시에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두 명제가 모두 성립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금융을 ‘정책 수행의 수단’이 아닌 ‘시장 주체’로 대우해줘야 한다. 밸류업은 결국 신뢰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신뢰는 자유로운 시장에서 검증될 때만 비로소 힘을 가지기 마련이다.

장호성 한국금융신문 기자 hs6776@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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