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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영 한국금융연구소장/WM 편집인] 멀틸레마(多重苦)에 빠진 금융정책

홍기영 기자

kyh@fntimes.com

기사입력 : 2022-05-23 00:00 최종수정 : 2022-09-19 18:32

고물가·고금리·고환율 3高에 스태그플레이션 공포
시장기능 회복으로 금융 왜곡 바로잡는 ‘정상화’ 필요

▲ 홍기영 한국금융연구소장/WM 편집인

▲ 홍기영 한국금융연구소장/WM 편집인

[한국금융신문 홍기영 기자] 윤석열 정부가 용산시대를 열었다. 청와대를 처음으로 국민에게 돌려준 새 정부의 각오가 남다르다.

그런데 새 정부 출범에 대한 희망과 설렘보다 걱정과 근심이 앞선다. 사실 새 경제팀은 총체적 위기 국면과 맞닥뜨렸다. 나라 안팎으로 IMF 사태 이후 최악의 경제 여건이 전개되는 현실이다.

거센 파도와 폭풍우처럼 수많은 난제가 몰아닥친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라는 ‘3高 현상’이 뚜렷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중국의 코로나19 봉쇄정책, 공급망 차질 등으로 원유·곡물 가격이 폭등한다. 원·달러 환율은 1300원에 육박하고 주식 가격은 약세장 수렁에 빠졌다.

가상화폐 폭락사태도 불안을 키운다. 물가 상승에 경기는 침체에 빠지는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엄습한다. 청년 취업난은 가중되고 자산가격 버블 형성 후 빈부격차는 커진다. 25년 만에 재정·경상수지 ‘쌍둥이 적자’까지 우려된다. 우리 경제가 이중고(二重苦·dilemma), 삼중고(三重苦·trilemma)를 넘어 다중고(多重苦·multilemma)에 직면한 것이다. 초대형 복합위기인 ‘퍼펙트스톰’이 다시 한국 경제를 덮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최대 정책 변수는 금리 인상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한 번에 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밟고 있다. 이르면 7월 미국 정책금리가 한국 기준금리를 10년 만에 추월하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래서 한국은행은 치솟는 물가 불안을 잠재우고 달러 유출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더 올려야만 하는 압박을 받는다.

급격한 금리 인상은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켜 경제 성장을 저해한다. 4%대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이어지면 한국은행도 빅스텝에 나설 수 있다.

더욱이 가파른 금리 인상은 가계와 기업에 큰 충격을 입힌다. 대출 이자 상환 부담이 커질 경우 부채가 많은 한계기업과 취약 계층의 고통은 가중될 것이다. 결국 빈부 양극화가 심화하고 소득 분배는 더욱 악화될 수 있다. 이 와중에 예대마진 장사에 몰두하는 은행에게 매달 예대금리차를 공시토록 하고 이를 점검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소상공인 지원은 새 정부의 국정과제 1호다. 정부는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소상공인 영업력 회복을 위해 1조5000억원의 금융부문 민생지원방안을 추경예산에 반영했다. 정부는 부실 우려가 있는 소상공인 채무조정에 나서고, 맞춤형 특례 자금을 지원한다. 그리고 대환보증 제도를 통해 비(非)은행권 고금리 대출을 은행 저금리 대출로 바꿔준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공공 대환 대출 플랫폼’은 이미 실패한 정책으로 판정 난 바 있어 실효성이 의문이다.

게다가 소상공인 금융회사 대출 만기 연장 및 원리금 상환유예 조치가 오는 9월 종료된다. 소상공인이 대출 상환에 몰리겠으나 만기를 더 연장해준다고 갚아야 하는 누적 채무가 줄지는 않는다.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한 상환 능력이 없는 자영업자의 잠재 부실 위험은 금융회사 경영에 위협이 된다. 그래서 취약·고위험 자영업자에 대해서는 구조조정을 유도하고 금융회사별 맞춤형 위기 관리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정부는 부동산 시장 정상화를 주요 국정과제로 내세웠다. 부동산 대출규제를 합리화하고 실수요자의 주거 사다리 형성을 지원할 예정이다. 생애 최초 주택을 구입하는 청년층 가구에 대해서는 LTV(담보인정비율) 규제가 80%까지 완화된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산정 시 청년층 미래소득을 반영하는 조치도 병행한다. 은퇴 후 소득이 없는 주택연금 대상자 확대도 추진된다.

문제는 부동산 대출 수요가 여전히 공급을 압도한다는 점이다. 임대차법 시행 2년 사이 서울 아파트 전세값이 35%나 올랐다. 대다수 세입자들은 전세자금 마련에 발을 동동 구른다. 그렇다고 전세자금대출 규제를 다시 확 풀기는 어려운 일이다.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1900조원에 도달한 가계부채는 시한폭탄이다. 빚으로 집을 산 20~30대는 금리 상승기에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을 걷는 처지다.

낮아진 법정 최고금리에 따른 부작용도 심각하다. 저축은행, 카드사, 대부업체는 대출금리를 연 20% 이상으로 올릴 수 없다. 금융회사가 대출심사를 강화하자 저신용자들은 제도권에서 갈 곳을 잃고 불법 대출로 내몰린다.

정부에 등록하지 않은 불법 사금융 업체가 저신용 차주부터 받는 이자율은 지난해 연 46.4%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법정 최고금리 연 20%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기준금리가 빠르게 인상되는 만큼 금융시장이 제 기능을 회복하려면 법정 최고금리를 다시 올려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난제가 뒤얽힌 고차방정식을 풀어내는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해야만 한다.

196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얀 틴버겐은 복수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정책수단을 목표별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제 곳곳에 도사린 폭탄의 뇌관을 제거해야 한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통화정책뿐 아니라 재정·산업 구조조정 정책을 통합적으로 수립해 일관된 정책을 펴나가야 한다. 연금제도 개혁 등 당장 국민에게 인기가 없는 정책이라도 장기적으로 경제에 보약이 되는 정책을 조명하고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해야만 파국을 예방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자유와 시장경제 창달을 강조하고 반지성주의 타파를 앞세운다. 어려운 과제일수록 국민과 소통하고 고통 분담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대선공약이라고 해서 모두 이행할 필요는 없다.

공약의 타당성을 재검토해 우선순위를 재정립해야만 한다. 물가만 자극하는 현금 퍼주기식 포퓰리즘 정책은 가려내자. 향후 금융정책 추진에 있어 정부는 시장기능 회복과 산업 경쟁력 강화, 금융소비자 보호에 역점을 둬야 할 것이다.

홍기영 기자 kyh@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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