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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당신이 못 떠난다는 사실까지 계산한다 [장준환의 AI법 네비게이터⑧]

장준환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 2026-09-23 08:01

Stanford HAI가 던진 시장 집중과 소비자 보호의 질문

최근 국내 한 대형 항공사의 장거리 비즈니스석을 이용하면서 항공 서비스 보상 문제를 겪었다.

비행 중 벌레 물림으로 의심되는 피해가 발생했고, 이후 기내 방역과 좌석 관리, 승무원 응대, 그리고 항공사의 사후 대응과 보상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이었다. 항공사의 데이터베이스를 기준으로 보면 나는 아마 나쁘지 않은 고객일 것이다. 10년 넘게 같은 항공사의 장거리 노선을 이용해 왔고, 앞으로 9개월 동안에도 이미 여섯 장의 항공권이 예약되어 있거나 대기 상태에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충성도 높은 VIP 고객에 가깝다.

사진출처: Pixabay, Korean Air

사진출처: Pixabay, Korean 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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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제 보상 논의를 하다 보니 소비자의 위치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불편을 겪었고, 대응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내가 곧바로 다른 항공사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서울과 뉴욕을 오가는 일정, 직항 노선, 마일리지, 좌석 등급, 라운지, 서비스의 익숙함, 언어와 연결성까지 고려하면 실제 대안은 생각보다 제한적이다. 이 장면은 나에게 한 가지 질문을 남겼다. 항공사는 나를 좋은 고객으로 볼까, 아니면 쉽게 떠날 수 없는 고객으로 볼까.

시장이 집중될수록 데이터도 집중된다

과거의 시장 집중 문제는 주로 가격과 공급의 문제였다. 특정 기업의 힘이 커지면 항공권 가격이 오르는가, 노선이 줄어드는가, 서비스가 나빠지는가를 보았다. 그러나 AI 시대의 시장 집중은 여기에 하나의 층위를 더한다. 기업이 소비자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그리고 그 정보를 보상, 가격, 고객 응대, 서비스 우선순위에 어떻게 활용하는가의 문제다.

항공, 금융, 통신, 플랫폼 산업은 모두 고객 데이터를 많이 축적하는 산업이다. 소비자가 언제 구매하는지, 어떤 가격에 반응하는지, 얼마나 자주 불만을 제기하는지, 어느 정도의 보상에 만족하는지, 실제로 다른 회사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는지까지 데이터로 분석할 수 있다. 여기에 AI가 결합하면 기업은 소비자를 더 정교하게 분류할 수 있다. 좋은 의미에서는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그러나 나쁜 의미에서는 소비자의 약한 위치까지 계산할 수 있다.

물론 특정 항공사가 실제로 이러한 방식으로 AI를 활용했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앞으로의 가능성이다. 예를 들어 오랜 기간 특정 항공사를 이용해 온 고객이 있고, 이미 향후 여러 차례 항공권까지 예약되어 있으며, 현실적으로 다른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기업이 알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기업은 그 고객을 더 정성껏 대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이 고객은 쉽게 떠나지 못한다”고 판단해 최소한의 보상이나 형식적 응대에 그칠 유인도 생긴다. AI는 고객의 충성도를 파악할 수 있지만, 동시에 고객의 포획 상태도 파악할 수 있다.

Stanford HAI가 던지는 시장 집중의 질문

최근 Stanford Institute for Human-Centered Artificial Intelligence, 즉 Stanford HAI의 여러 정책 논의에서도 시장 집중은 중요한 의제로 다루어진다. 특히 파운데이션 모델과 AI 생태계에서는 막대한 컴퓨팅 자원, 데이터, 인재, 자본을 가진 소수 기업이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Stanford HAI는 오픈 파운데이션 모델이 혁신과 투명성을 높이고, 시장 집중을 완화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사진출처: Pixabay, Data Collection

사진출처: Pixabay, Data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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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의는 항공이나 금융 같은 전통 산업에도 시사점을 준다. AI가 새로운 기술 기업 안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집중도가 높은 기존 산업의 힘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결합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다. 경쟁당국은 노선, 슬롯, 운수권, 운임, 좌석 공급 같은 전통적 기준을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여기에 데이터의 집중도 함께 보아야 한다. 장기간 축적된 탑승 기록, 마일리지 정보, 고객 등급, 불만 처리 이력, 보상 패턴, 향후 예약 정보는 모두 소비자 대응의 기준이 될 수 있다.

과거에는 “싫으면 다른 회사를 선택하면 된다”는 말이 어느 정도 가능했다. 그러나 선택지가 줄어든 시장에서는 이 말이 공허해진다. 더구나 기업이 AI를 통해 소비자가 실제로 떠날 수 있는지까지 예측할 수 있다면, 소비자의 선택권은 겉으로만 존재할 수 있다. 이것이 AI 시대의 반독점과 소비자 보호가 새롭게 봐야 할 지점이다.

법은 가격만이 아니라 선택권을 보아야 한다

반독점법과 소비자 보호법은 앞으로 가격뿐 아니라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만드는 힘의 불균형을 함께 보아야 한다. 소비자에게 실제 대안이 있는가.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가 소비자의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사용되는가. AI가 고객 대응, 보상 산정, 가격 차별, 서비스 우선순위 결정에 활용된다면 그 기준은 설명 가능한가. 자동화된 결정에 대해 소비자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가.

변호사로서 주목하는 부분도 바로 여기에 있다. AI 시대의 소비자 보호는 단순히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데이터가 소비자의 위치를 어떻게 해석하고, 그 해석이 계약 조건과 가격, 보상, 서비스 대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아야 한다. 특히 시장 선택지가 제한된 산업에서는 기업의 데이터 활용이 소비자의 약한 위치를 더 약하게 만들 수 있다.

AI 시대의 약자는 데이터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데이터로 너무 잘 분석된 사람일 수 있다. 기업은 그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고, 무엇을 참을 수 있는지도 알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람이 쉽게 떠날 수 없는지도 알 수 있다.

이제 한국도 반독점과 소비자 보호의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특정 기업이 시장을 얼마나 점유하고 있는가만 물을 것이 아니라, 그 기업이 소비자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가격이 올랐는가만 볼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실질적 선택권이 남아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AI를 썼는가만 볼 것이 아니라, AI가 소비자의 약한 위치를 계산하는 데 쓰이고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AI 시대의 시장 지배력은 더 조용하고 더 정교하게 작동할 수 있다. 소비자는 자신이 차별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수 있고, 기업은 그것을 효율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래서 법과 제도는 기술의 편리함 뒤에 숨어 있는 힘의 구조를 보아야 한다. AI는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이것이다. AI는 당신이 못 떠난다는 사실까지 계산한다.

AI는 당신이 못 떠난다는 사실까지 계산한다 [장준환의 AI법 네비게이터⑧]이미지 확대보기
장준환 뉴욕 변호사 (Private Wealth & Investment)

충북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겸임교수/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KSEA) 고문변호사

미국 뉴욕주 프라이빗 웰스 로펌의 대표 변호사로 자산 구조와 투자전략 설계 전문가다. AI를 비롯한 IT 관련 법률 지식에 정통해 충북대 컴퓨터공학과 겸임교수와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 고문변호사를 맡고 있다.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등 개발사업과 글로벌 갤러리 운영도 하면서 다양한 사회·문화 활동도 하고 있다. 차세대 한인 리더로서 AI 시대의 인간다움을 지키는 인프라를 구축해 입법·제도화한다는 비전을 갖고 오는 2028년 뉴욕주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를 준비 중이다.

장준환 칼럼니스트/뉴욕 변호사

장준환 칼럼니스트/뉴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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