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 IBK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이 특히 이번 총파업의 전면에 섰다. 임금과 노동시간을 둘러싼 노사 갈등으로 시작된 올해 산별교섭에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문제가 겹치면서 이번 총파업의 무게중심도 달라진 모습이다.
시중은행 직원들에게 주 4.5일제와 임금이 핵심 현안이라면 국책은행 직원들에게 지방이전은 근무지뿐 아니라 가족의 생활환경과 조직의 업무 방식까지 바꿀 수 있는 문제다. 국책은행이 이번 총파업의 전면에 선 배경이다.
다행히 우려했던 은행 영업점의 대규모 업무 차질은 나타나지 않았다. 본지가 이날 서울 시내 주요 은행 영업점을 둘러본 결과 대부분 평소와 다름없이 창구를 운영 중이었다. 직원 부족으로 고객 대기시간이 눈에 띄게 길어지거나 일부 업무가 마비되는 모습도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국책은행 3사 전면에, 4일 총파업에도 현장 불편 최소화 노력
지난 4일 오전 11시부터 광화문 세종대로 앞에는 주최측 추산 3만 여명, 경찰 추산 1만5000여명의 금융노조 조합원들이 모여 총파업을 진행했다. 광장 앞에는 국책은행 3사인 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노조원들이 주로 포진한 가운데,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등은 이들보다는 뒤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금융노조는 지난달 12일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96.05%의 찬성률로 총파업을 결정했다. 지난 4월부터 사측과 수십 차례 교섭을 이어가고 중앙노동위원회 조정까지 거쳤지만 임금과 주 4.5일제 등을 놓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다만 높은 찬성률이 곧바로 실제 파업 참여율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특히 이날 서울지역 주요 시중은행 영업점에서는 파업 여파를 체감하기 어려웠다. 모바일·인터넷뱅킹 등 비대면 거래가 보편화된 데다 은행들도 파업에 대비해 대체인력 배치 등 비상근무체계를 마련한 영향도 있다.
총파업이 진행되는 날 인근 은행들을 직접 방문해봤지만, 소비자 불편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경우는 찾지 못했다. 평일임을 감안해도 예상보다 한산한 곳도 있었고, 평소와 다른 혼잡함이나 업무 과밀도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전산 시스템도 점검하고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국책은행 관계자 역시 “노조 총파업으로 고객 불편이 없도록 내부적인 준비는 해뒀기 때문에 대고객 업무 지연이나 제한 등의 문제는 최소화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광화문부터 시청에 이르는 넓은 범위의 교통이 통제되면서 발생한 다소의 불편도 있었다. 인근 한 직장인은 “점심에 미팅이 있어서 차로 이동하려 했는데 총파업과 도로통제 소식을 미처 듣지 못해 약속시간에 한참 늦는 불상사가 있었다”고 말했다.
주4.5일제·임금 6% 평행선…산별교섭 숙제는 그대로
지방이전이 이날 총파업의 새로운 불씨가 됐지만 애초 금융노조가 파업에 나선 직접적인 배경에는 산별교섭 결렬이 있다.
노조는 올해 임금 인상 요구율을 당초 8%에서 6%로 낮췄지만 사용자 측은 2.5%를 유지하고 있다. 금융노조는 과거 임금교섭에서 공무원 보수 인상률이 참고 기준으로 활용돼 왔던 만큼 내년도 공무원 보수 인상률 3.9%보다 낮은 사용자 측 제시안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주 35시간을 골자로 한 주 4.5일제도 핵심 요구다. 금융노조는 AI와 디지털 전환으로 금융산업 생산성이 높아진 만큼 이에 따른 성과를 노동시간 단축으로 노동자에게 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근로시간 감소로 필요한 인력을 신규 채용해 청년 일자리 확대와 연결해야 한다는 논리도 편다. 정년 연장과 임금피크제 개선, 과도한 실적 경쟁을 유발하는 KPI 개편, 금융공공기관 총인건비제 개선도 요구사항에 포함돼 있다.
다만 주 4.5일제를 실제 은행 영업현장에 적용하기까지는 풀어야 할 문제가 적지 않다. 직원 근로시간을 줄이면서 현재와 같은 영업일과 창구 운영시간을 유지하려면 교대근무를 늘리거나 추가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근로시간 단축을 영업시간 축소로 연결할 경우 모바일 금융 이용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고령층 등 대면금융 의존 고객의 접근성이 낮아질 수 있다.
은행들이 점포와 전통적인 창구 인력을 줄이는 대신 AI와 비대면 채널을 확대하며 비용 효율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도 변수다. 금융노조는 AI가 만든 생산성 향상을 노동시간 단축과 고용 확대에 써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은행 입장에서는 디지털 전환을 통한 생산성 개선과 비용 절감 효과를 다시 인력 확대로 되돌리는 데 부담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올해 4분기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대상과 배치 방안을 구체화할 예정인 만큼 갈등 역시 이제 시작일 가능성이 크다. 금융노조는 향후 교섭과 정부의 지방이전 논의 결과에 따라 추가 총파업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정부도 인정한 1차 이전 한계…'더 옮겨야' vs '검증부터’
정부는 총파업 하루 전인 지난 3일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추진 방향을 발표했다.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 약 350곳을 대상으로 올해 4분기 구체적인 이전계획을 마련하고 2027년부터 이전에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제시한 핵심 원칙은 '수도권 잔류 최소화'다. 1차 공공기관 이전 당시 적용했던 수도권 잔류 기준을 전면 재검토하고 반드시 수도권에 있어야 할 기관이 아니라면 원칙적으로 이전 대상에 포함한다는 방침이다. 청사 신축까지 기다리지 않고 민간 건물을 임차하는 방식 등을 활용해 내년부터 선도이전에도 착수할 예정이다.
산은과 기은, 수은 등의 이전 여부나 지역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금융위원회 역시 1차적으로 발표된 중앙행정기관 우선 이전 대상에서는 제외됐다. 하지만 정부가 금융위를 비롯한 금융 관련 기관을 최종 이전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금융권의 긴장감은 여전하다.
금융노조는 금융기관의 지방이전을 일반 공공기관 이전과 같은 잣대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금융산업은 은행과 증권사, 기업, 금융당국, 법률·회계 등 전문서비스와 인력이 한곳에 모이면서 발생하는 '집적효과'가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인데 국책은행과 금융공공기관을 지방으로 분산할 경우 기관 간 협업과 시장 대응 속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금융노조는 1차 공공기관 지방이전의 효과에 대한 충분한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본점 하나를 지방으로 옮긴다고 지역경제가 자동적으로 활성화되는 것은 아니며, 정주여건이나 전문인력 확보 문제까지 포함해 실제 이전의 비용과 편익을 먼저 따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날 집회에서도 정책금융기관이 서로 떨어질 경우 유기적인 협력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무엇보다 노조는 기관만 옮기는 것이 아닌 정주여건 개선이라는 현실적 문제 역시 해결되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반대로 정부는 1차 지방이전의 한계를 오히려 2차 이전을 더 정교하게 추진해야 하는 이유로 보고 있다. 정부도 1차 공공기관 이전만으로 수도권 집중 추세를 근본적으로 뒤집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점은 인정한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1차 이전으로 지역 핵심산업 성장과 지역인재 채용, 지방세수 확대 등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지만 수도권 집중을 반전시키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정부가 내놓은 해법은 '이전을 멈추자'가 아니라 '이번에는 흩어놓지 말고 모아서 옮기자'에 가깝다.
1차 이전 당시와 같은 '나눠먹기식' 분산 배치를 지양하고 기존 혁신도시를 중심으로 업무 연관성이 높은 기관들을 함께 배치하겠다는 것이다. 지역 전략산업과 대학, 이전 공공기관을 연결해 해당 기관을 지역 산업생태계의 '앵커'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교통·교육·의료·문화 등 이전 직원들의 정주여건도 동시에 개선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와 금융노조는 1차 지방이전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정반대의 결론을 내리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1차 이전만으로 수도권 집중을 해소하지 못했으니 2차 이전은 더 강하고 정교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보는 반면 금융노조는 "1차 이전의 효과가 충분하지 않았던 만큼 추가 이전에 앞서 객관적인 검증이 먼저"라는 입장이다.
장호성 한국금융신문 기자 hs6776@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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