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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디지털자산 판 키운다

장종회 기자

jhchang@fntimes.com

기사입력 : 2026-08-11 09:18

AI데이터센터로 몰려가는 글로벌 은행들
신용장·채권으로 AI 인프라 뒷받침 나서
토큰화예금·스테이블코인으로 예금 사수

생셯형 AI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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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금융신문 장종회 기자] 글로벌 은행들이 디지털자산 판을 키우는데 속도를 붙이고 있다. 이자 장사에 몰두하던 전통적인 상업은행들까지 디지털자산사업 경쟁에 속속 뛰어드는 형국이다.

전선은 두 갈래다. 하나는 AI 데이터센터 건설 붐에 올라타는 신용 비즈니스, 다른 하나는 스테이블코인 공세에 맞서는 토큰화 예금사업이다.

국제금융센터가 10일 내놓은 '글로벌 은행산업 트렌드' 보고서와 외신 보도들을 종합해보면 두가지 흐름이 뚜렷하게 잡힌다. 모두 은행들이 실물 대출에서 벗어나 새로운 수익원 발굴에 골몰한 결과다. 문제는 그 이면에 적잖은 리스크도 함께 쌓이고 있다는 점이다.

신용장 하나로 발전소 짓는다

데이터센터 개발업체들의 가장 큰 고민은 돈이 아니라 신뢰다. 전력회사 입장에서는 수천억원을 들여 송전망을 깔고도 데이터센터사업이 중간에 엎어지면 고스란히 손해를 떠안게 된다. 이런 리스크를 은행이 메우겠다고 나섰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데이터센터 개발사 QTS는 20억 달러 규모의 보증계약 확대를 은행권과 논의 중이다. 또다른 개발사 스위치는 이미 35억 달러 규모의 신용장 약정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은행이 임대차 계약 확정이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성사 이전 단계부터 신용장을 내주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통상적인 은행권의 여신심사 관행에 비춰볼 때 이례적으로 공격적인 행보다.

은행권이 이같은 위험을 감수하려는 이유는 명확하다. 신용장 수수료 자체가 크지 않지만 이후에 계속되는 인수합병(M&A) 자문이나 리파이낸싱 주선 등에서 부가수익 기회를 잡을 수 있어서다.

몸집이 더 큰 거래는 채권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모건스탠리가 주도하는 은행 컨소시엄은 텍사스주 허버드에 들어서는 대규모 데이터센터 캠퍼스 관련 부채 150억 달러를 채권으로 차환해줄 계획이다. 이 시설은 클로드를 개발한 AI업체 앤스로픽이 임차해서 쓰고 구글이 지급보증에 나선다. 이 채권에는 단서가 붙어 있다. 구글의 보증 효력이 데이터센터가 완공된 이후에 발동된다는 조건이다. 공사가 지연되거나 비용이 초과되는 경우에는 무방비다. 그래서 이 채권은 투기등급으로 발행된다.

월스트리트저널과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이번 대출은 오라클이 임차한 별도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의 건설대출 500억 달러 규모에 대해 매수자를 찾기 힘들었던 월가가 위험을 분산하려 선택한 방식이다.

AI 인프라를 둘러싼 신용보강 경쟁은 빅테크로도 번지고 있다. 엔비디아는 오픈AI가 오하이오주에 추진하는 10기가와트급 데이터센터 단지에 최대 2500억 달러 규모의 지급보증을 검토 중이다. 구글이 자체 AI 반도체 채택을 조건으로 앤스로픽의 데이터센터·발전소 프로젝트에 지분 20%를 받는 대가로 보증을 선 데 대한 맞대응이다.

골드만삭스는 2031년까지 전 세계 AI 인프라 구축에 누적 기준으로 7조6000억달러가 투입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지난 6월 연례보고서를 통해 이같은 '순환금융' 구조가 세계 경제에 주요 위험요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구글이 신용을 빌려주고 앤스로픽 프로젝트 지분을 챙기는 사이에 정작 대출을 내준 월가 은행들은 그 채권을 서둘러 시장에 팔아 넘기고 있다. 빅테크에서 우발채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동안 알파벳은 5년 만기 신용부도스왑(CDS) 프리미엄이 확대돼 채권시장에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말에는 오라클이 임차한 별도의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 대한 건설대출 500억 달러를 소화할 매수자를 찾는 데 월가가 애를 먹기도 했다. 가스관이나 공항 같은 전통 인프라 프로젝트를 지원해오던 기존 은행 대출시장의 수용 능력이 AI 인프라 투자 확대에 따른 폭발적 자금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 상황이다. 일부 대주단은 이 부담을 신용파생상품 등 위험전가 거래로 분산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오픈AI도 예외는 아니다. 이 회사는 2030년까지 컴퓨팅 인프라 투자계획을 기존 6000억 달러에서 7500억 달러로 상향했다. 반도체·서버 확충용 자금 3500억 달러도 추가로 조달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20년간 부담할 리스 비용만 수백억 달러에 달한다. 결국 엔비디아의 지급보증 여부가 이 프로젝트의 성패를 가를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생성형 AI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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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신용 시장과 밀월 깊어진다

은행권이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나서는 흐름은 사모신용 시장에서도 확인된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보스턴 연방준비은행이 집계한 미국 내 사업개발회사(BDC)에 대한 은행대출 규모가 지난 2013년 100억 달러에서 2025년 500억 달러로 5배가 됐다. 물론 대형은행 기준으로 BDC 대출 약정이 핵심자본의 2%에 못 미치기 때문에 부실이 터져도 은행시스템 전체로 번질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그렇지만 뉴욕·댈러스 연준은 1조3000억 달러 규모로 커진 사모신용 시장을 차입자 규모별 3그룹으로 나눠 파일럿 설문조사에 나섰다. 잠재적 위험이 적잖은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하겠다는 뜻이다.

최근엔 조달비용이 오르면서 사모신용에서 은행 대출로 갈아타는 차환이 늘고 있다. 올해 2분기 사모신용에서 은행 대출로 넘어간 딜은 9건, 45억 달러에 달했다. 반대로 신디케이트론에서 사모신용 시장으로 옮겨간 규모는 3건, 13억 달러에 그쳤다. 제약회사 카탈렌트가 대표적이다. 달러화·유로화 사모대출을 은행 대출로 갈아타 차입 비용을 225bp 낮췄다. 은행 대출이 사모신용에 비해 더 싼 국면이 된 것이다.

스테이블코인 맞선 은행권 ‘토근화 예금’

디지털자산 쪽에서는 예금을 빨아들이는 스테이블코인에 맞서 은행권이 토큰화 예금이라는 새로운 상품을 들고 나왔다. 국제금융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웰스파고는 올해 기업 고객 대상 토큰화 예금을 출시한다. 달러화와 파운드화 국경 간 결제에 먼저 활용하고 대상 통화와 국가를 넓혀나간다는 계획이다.

디지털자산 플랫폼업체인 다코타는 통화감독청(OCC)에 전국 신탁은행 인가를 신청했다. 인가가 나면 디지털자산 수탁서비스와 달러연동 스테이블코인 발행까지 사업영역을 넓히게 된다. 송금업체인 웨스턴유니언은 스테이블코인 결제플랫폼 레인과 손잡고 자체 스테이블코인 USDPT 기반의 디지털지갑 겸 비자보증 신용카드 '스테이블카드'를 내놨다. 마스터카드는 디지털자산 기술기업 BVNK를 인수해 스테이블코인 지급결제 처리 역량을 강화하고 나섰다.

대형 은행들은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JP모건은 지난해 말 코인베이스의 베이스 네트워크에서 기관고객용 예금토큰 JPMD를 선보였고, 올 들어 캔튼 네트워크로 서비스를 확대했다. JP모건은 이 상품을 스테이블코인이 아니라 온체인 프로그래밍 기능을 갖춘 은행 예금 채권으로 규정했다.

씨티그룹도 24시간 연중무휴 달러 청산시스템에 토큰화 유동성을 접목한 '씨티 토큰서비스'를 개시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JP모건, 씨티, 뱅크오브아메리카, 웰스파고 등 미국 4대 은행은 결제회사 '더 클리어링 하우스'를 통해 공동 토큰화예금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2027년 상반기 출시를 벼르고 있다.

지역은행들도 서론 손잡고 대응책 마련에 부심 중이다. 헌팅턴, 퍼스트호라이즌, 키코프, M&T, 올드내셔널 등은 '카리 네트워크'를 공동구축하고 소매고객을 붙잡겠다고 나섰다. 미국만이 아니다. 일본에서도 3대 메가뱅크가 2026회계연도 안에 공동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기 위한 협의체를 구성했다. 일본 금융청(FSA)은 오는 11월 시범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핀테크업체인 소파이도 지난 5월 자체 은행토큰 '소파이USD'를 약 1500만명의 회원에게 제공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은행권이 이처럼 디지털자산사업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나선 배경에는 지난해 7월 제정된 미국 지니어스법(GENIUS Act)이 자리잡고 있다. 이 법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에 1대1 준비금 보유와 월별 공시의무 등을 부과해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 지급수단으로 편입시켰다. 이 조치는 역설적으로 비은행 발행사들에게 성장 기회를 줬고, 기존 은행들에는 예금이 이탈하기 전에 온체인 대안을 서두르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위기감을 심어줬다. 아직까지는 토큰화 예금 실수요가 크지 않지만 방어선을 미리 쳐두지 않았다가는 낭패라는 우려가 팽배해진 상태다.

중국 은행권은 아예 다른 방향에서 디지털자산 결제인프라 경쟁에 뛰어들었다. 중국계 은행 6곳은 달러화 결제망을 우회해 위안화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려 태국, 브라질, 카자흐스탄 등 12개국 통화와 위안화를 직접 결제·청산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갖췄다. 대부분 신흥국 통화로 일대일로 사업과 얽힌 곳들이다. 스테이블코인이나 토큰화 예금과는 결이 다르지만 '달러 패권을 벗어난 결제망 구축'이라는 목표는 미국 은행권의 토큰화 예금 네트워크와 방향이 유사하다. 결제 인프라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이 은행, IT업체들과 국가간에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부가 수익 뒤 숨겨진 그림자

글로벌 은행들의 AI 데이터센터 신용사업과 디지털자산 진출은 겉보기엔 서로 다른 트렌드다. 하지만 중심을 관통하는 논리는 같다. 전통적인 예대마진만으로는 성장의 한계가 뚜렷해진 은행들이 신용도와 결제 인프라라는 자신들의 핵심 자산을 새로운 무기로 재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무기가 양날의 검이라는 점이다. 완공 전 단계부터 신용장을 내주는 관행, 빅테크의 지분 참여와 뒤섞인 순환금융 구조, 서둘러 채권시장에 되파는 은행들의 행태는 2008년 금융위기 전 서브프라임 모기지 유동화 과정에 비견된다. 알파벳의 CDS 프리미엄 확대는 시장에서 이런 위험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는 방증이란 지적이다.

영국에서는 규제 압박도 나타나고 있다. 노동조합 총연맹이 은행 부담금을 3%포인트 인상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새로 들어선 번햄 정부가 은행세 인상 가능성을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AI와 디지털자산이라는 신성장 동력을 좇는 은행들 앞에 과세라는 걸림돌이 등장하고 있다는 얘기다. 씨티그룹 최고경영자(CEO)이 세율 인상이 이뤄질 경우 영국 내 투자가 위축될 것이라고 경고한 것은 이런 우려를 반영한다.

뒤쳐진 국내 은행권 ‘위기감’ 증폭

한국 금융권도 글로벌 은행들의 디지털자산사업 가속화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내 은행들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이나 토큰화 예금 논의에 시동을 건 상태지만 미국·일본·중국 은행들처럼 컨소시엄 차원의 속도전까지는 못미치는 상황이다. 국내 AI 데이터센터 신용사업도 걸음마 단계다.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와 자금 조달구조가 글로벌 공급망과 맞물려 있어 국내 은행들과 금융당국이 해외 사례를 예의주시하면서 대응해야 한다. 무엇보다 디지털자산사업은 '속도'가 관건인 만큼 대응이 늦어지면 경쟁 대열에서 이탈이 불가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센터 임대차 계약은 완공까지 통상 2~3년이 걸리지만 전력망 계약과 자금 조달은 그보다 훨씬 먼저 확정돼야 한다. 스테이블코인도 지니어스법 시행 이후 발행 잔고가 빠르게 불어나는 추세라는 걸 감안하면 은행권이 대응이 늦어질수록 예금 이탈 폭이 커질 수도 있다. 관건은 은행들이 새로운 수익원을 좇으면서도 우발채무와 순환금융 리스크를 얼마나 잘 관리할 것인가다.

글로벌 은행들이 신용을 무기로 디지털자산시장에서 새 판을 짜는 상황에서 국내 은행들의 대응에 귀추가 주목된다.

장종회 한국금융신문 기자 jhcha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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