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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오늘의 삶을 품다…은평이 만드는 전통과 현대의 공존 [지역 역사 보존·미래 가치로 발전 ①]

주현태 기자

gun1313@fntimes.com

기사입력 : 2026-09-14 00:00

은평구, 역사한옥박물관 중심 전통문화 공간 조성
북한산 자연과 한옥 잇는 문화관광 거점으로 진화

▲ 지난 9월 8일 은평한옥마을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옥 골목 곳곳을 둘러보고 한국의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있다. 사진설명 = 주현태 기자

▲ 지난 9월 8일 은평한옥마을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옥 골목 곳곳을 둘러보고 한국의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있다. 사진설명 = 주현태 기자

[한국금융신문 주현태 기자] [공익 콘텐츠]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협찬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서울의 지역자산은 과거의 흔적에만 머물지 않는다. 역사와 문화는 지역의 정체성이 되고, 잘 보존된 공간은 관광과 교육·일자리와 도시재생 등 새로운 지역발전의 기반이 될 수 있다.

한국금융신문은 이번 기획에서 서울 10개 자치구를 찾아간다. 지역의 유산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지금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으며, 주민과 행정은 이를 미래의 가치로 어떻게 이어가고 있는지 현장에서 살펴본다. 과거를 보존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과거가 미래의 자산이 되는 서울을 찾아본다. <편집자 주>

“새로 만들어진 한옥마을이라면 더 훌륭한거죠,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개량된 한옥이 탄생한 사례니까요.”

전통을 지키는 방법이 꼭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남겨두는 것만은 아니다. 서울 은평구 진관동 은평한옥마을은 이 생각을 꽤 흥미롭게 보여주는 공간이다. 오래된 한옥을 복원해 만든 마을이 아니라 뉴타운 개발 과정에서 새롭게 조성된 한옥마을이기 때문이다.

무더위가 한풀 꺾인 날 찾은 은평한옥마을은 생각보다 한적했다. 햇볕은 여전히 따가웠지만 한옥 처마가 만들어낸 그늘을 따라 골목을 걷다 보면 잠시 쉬어갈 공간이 나타났다. 카페에서 차 한잔을 마시고 다시 밖으로 나오자 빤들빤들 윤이 나는 나무와 단정한 기와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은평한옥마을에 한옥은 오래된 한옥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흔적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새로 지은 집이지만 분명 전통의 모습을 품고 있었다. 대부분 복층구조로 깔끔하고 정돈된 설계로 만들어진 점이 특징이다.

이 풍경이 조금 더 특별했다. 은평구민으로서 두 아이를 키우는 아빠이기 때문이다. 길 건너에는 하나고등학교가 자리하고 있고, 뒤편으로는 북한산이 펼쳐진다. 평소 아파트 생활에 익숙하지만 이곳을 걷다 보니 문득 ‘아이들이 이런 곳에서 자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뛰고 소리 지르는 두 딸이 한옥의 처마와 마당, 나무가 있는 골목에서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상상해본 결과, 이 같은 한옥에서 살아가는 삶도 꽤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평한옥마을의 시작을 들여다보면 이 풍경은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이곳은 원래부터 한옥이 있던 마을이 아니었다. 은평한옥마을은 은평뉴타운 개발 과정에서 탄생했다. 당초 진관동 일대는 단독주택용지로 계획됐지만 은평구는 북한산의 자연환경과 진관사 등 주변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하면서 난개발을 막을 방안을 고민했다.

그 결과 2011년 4월 한옥마을 조성계획이 마련됐고, 2012년 1월 한옥 지정구역이 지정됐다. 같은 해 10월에는 서울시로부터 특별건축구역으로 지정됐다.

은평한옥마을은 은평뉴타운 3-2지구 하나고등학교 맞은편에 조성됐다. 2층 이하 한옥 156필지로 구성됐으며 전체 규모는 약 6만5000㎡다. 서울시는 당시 이 사업을 아파트 중심으로 개발된 뉴타운에 새로운 주거 유형을 제시하고 한옥의 현대적 가능성을 모색하는 사업으로 설명했다.

오래된 한옥을 되살린 것이 아니라 현대적인 도시개발 과정에서 한옥이라는 전통적인 주거 형태를 새롭게 끌어들인 셈이다. 그래서 이곳의 기와와 처마는 과거를 보여주지만 골목과 주택은 현대적인 생활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은평한옥마을의 가능성도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전통을 그대로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금의 도시에서 전통적인 공간과 생활방식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에 대한 실험이다.

한옥을 보는 데서 배우는 데까지

마을에 도착해 기자가 처음 들른 곳은 ‘마을어울림터’였다.

한옥마을을 찾은 주민과 방문객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단순히 한옥을 둘러보고 지나가는 곳이 아니라 주민들이 잠시 쉬고 이야기를 나누는 생활 공간이라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침 쉽게 공개되지 않는 2층 공간도 눈에 들어왔다. 궁금한 마음에 관계자에게 부탁했고, ‘소원권’을 사용해 어렵게 2층에 올라갈 수 있었다. 한옥마을에서 만나는 2층 공간은 생각보다 색다른 모습이었다. 나무로 된 공간과 구조가 어우러져 마치 옛 서당에 들어온 듯한 느낌도 들었다.

한옥을 단순히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머물고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이런 경험은 한옥을 과거의 건축물로만 바라보지 않게 만든다.

마을어울림터를 둘러본 뒤 은평역사한옥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은평구민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지만, 취재를 위해 입장권을 직접 확인하고 입장료를 내고 들어섰다. 막상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 보니 단순히 전시물을 관람하는 공간만은 아니었다. 전통건축과 공예를 직접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었다.

한옥, 오늘의 삶을 품다…은평이 만드는 전통과 현대의 공존 [지역 역사 보존·미래 가치로 발전 ①]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은 은평의 역사와 문화유산, 한옥 등을 전시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자 은평의 지역사를 보여주는 전시와 한옥 관련 자료들이 이어졌다.

특히 2층에서는 은평과 관련된 역사적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지역의 지명과 옛 마을, 역사적 사건 등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지명에도 오랜 시간이 쌓여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기자가 그중에서도 눈여겨본 것은 ‘구파발’이었다. ‘파발’은 조선시대 공문서나 긴급한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사람이나 말을 이용해 소식을 전하던 제도와 관련된 이름이다. 지금은 서울 서북권의 익숙한 지명이 됐지만 그 이름에는 과거 한양과 의주를 잇던 길의 흔적이 남아 있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과거 구파발 일대에 자리했던 기자촌 역시 이런 역사적 배경과 관련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기자촌과 구파발의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한국기자협회 관계자에게 연락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의외였다.

이 관계자는 “참신한 아이디어인 점은 확실하다. 기자촌이 구파발 일대에 자리했던 것은 맞지만, 기자촌이 구파발의 역사적 기능이나 파발이라는 지명 때문에 조성된 것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단순히 기자촌과 구파발의 연결고리는 역사적 인과관계라기보다 지리적 관계에 가까웠던 셈이다.

은평구 역사를 공부하며 새로운 정보를 얻었다. 이런 작은 의문을 따라가는 과정 자체가 지역을 알아가는 방법이라는 기적의 논리를 펼치며 다음 행선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옥마을을 둘러보며 만난 전통은 이처럼 거창한 역사 속에만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지명과 골목, 건축물 곳곳에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은평구가 한옥마을과 박물관에서 이어가고 있는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가 ‘소목교실’이다. 국가무형유산 소목장 전승교육사와 함께 나무를 직접 깎고 다듬으며 전통 목가구 제작 과정을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단순히 전통공예를 관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참가자가 직접 손을 움직이며 전통 목공예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한옥마을에선 특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한옥, 오늘의 삶을 품다…은평이 만드는 전통과 현대의 공존 [지역 역사 보존·미래 가치로 발전 ①]
최근에는 김병주닫기김병주기사 모아보기 고령기와 대표가 강연에 나서 전통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이후에도 전통건축과 관련한 강연이 이어진다. 9월 19일에는 민홍지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 10월 31일에는 김영성 국가무형유산 대목장, 11월 28일에는 김진욱 대한민국명장 한식미장과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는 단순히 한옥을 구경하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 기와와 처마를 바라보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통건축과 공예를 직접 배우고 손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한옥을 보존하는 일에서 중요한 것은 건물만이 아니다. 그 안에 담긴 기술과 생활문화가 함께 이어져야 한다.

누군가 나무를 다듬고, 전통 방식으로 가구를 만들고, 장인의 기술을 배우는 과정 자체가 전통을 현재로 가져오는 일이 될 수 있다.

한옥 골목에서 북한산까지 이어지는 전통

은평한옥마을에서 눈여겨볼 또 하나의 특징은 자연과 역사·문화자원이 함께 있다는 점이다.

마을 주변에는 북한산과 진관사가 자리하고 있다. 실제 프로그램도 한옥마을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2025년 운영된 ‘북한산의 작은 이웃, 새와 만나요’는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서 시작해 은평한옥마을 생태습지와 북한산둘레길을 걸으며 새를 관찰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한옥을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연으로 발걸음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전통문화와 자연, 여기에 주민과 방문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더하면서 한옥의 쓰임도 넓어지고 있다. 전통건축물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화와 관광, 교육으로 활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현장에서 만난 방문객들의 반응에서도 이런 변화가 느껴졌다. 벨기에에서 은평한옥마을을 찾은 Eunice(26세·여)씨는 “도심에 있는 한옥과는 다른 느낌”이라며 “도심 속 한옥은 웅장하고 멋있지만 조금 과대평가된 느낌도 있는데, 여기는 사람이 실제로 살아가는 것처럼 더 평화로워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다채로운 색깔과 평화로운 이곳이 정말 마음에 든다”며 “이곳이 또 기억에 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노원구민인 박소민 씨(31세·여)는 한옥마을에서 전통과 현대가 함께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느꼈다고 했다. 박씨는 “현대에 맞게 사람이 자연스럽게 지내면서 보낼 수 있는 옛것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며 “한옥은 많이 불편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현대적인 생활을 하면서도 한옥을 유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한복이 현대적으로 변형돼 일상에서 활용되는 사례를 떠올리기도 했다. “예쁘면서도 역사를 이어가는 느낌이라 실제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에서 은평한옥마을이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주거공간으로서 가진 가능성도 엿볼 수 있었다.

다만 한옥마을이 주민의 삶과 관광이 공존하는 공간인 만큼, 방문객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분위기가 달라진다. 한 은평한옥박물관 관계자에 따르면 주말에는 등산객과 외국인 관광객, 단체 방문객 등이 몰리면서 한적한 한옥마을의 분위기를 온전히 즐기기 어려울 수 있다. 반면 평일에는 비교적 여유롭게 골목을 걸으며 한옥과 북한산의 풍경을 살펴볼 수 있다.

결국 관광객을 얼마나 끌어들이느냐 만큼 중요한 것은 주민의 일상과 방문객의 경험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느냐다.

한옥, 오늘의 삶을 품다…은평이 만드는 전통과 현대의 공존 [지역 역사 보존·미래 가치로 발전 ①]
은평한옥마을과 은평역사한옥박물관·진관사·북한산을 하나의 흐름으로 바라보면 은평이 그리고 있는 그림도 보인다. 한옥이라는 건축물을 중심에 놓되 역사와 자연·문화와 교육을 연결하는 것이다.

결국 은평한옥마을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단순한 ‘옛날 집’이 아니다. 뉴타운이라는 현대적인 도시개발 과정에서 탄생한 한옥마을에 전통건축과 공예를 배우는 프로그램이 들어서고, 자연과 역사문화가 연결된다.

과거를 박제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사람들이 직접 경험하고 사용하는 공간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기자도 이날 마을을 걸으며 한옥의 새로운 가능성을 생각했다. 아이들과 함께 다시 온다면 박물관 3층에 마련된 나무 전통공예 체험부터 해볼 예정이다. 아이들에게 나무를 직접 만지고 전통공예를 배우는 경험도 시켜보고 싶다. 이후 한옥마을을 천천히 걷고 북한산을 바라보며 잠시 쉬어가도 좋겠다.

아직 아이들에게 한옥은 그저 예쁜 집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공간에서 놀고, 무언가를 만들고, 옛이야기를 듣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면 언젠가는 한옥이라는 공간 자체가 하나의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전통을 지킨다는 말은 거창하게 들리지만 결국 사람이 이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전통건축을 배우고, 누군가 장인의 기술을 익히고, 아이들이 한옥에서 놀고 걸으며 그 공간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쌓인 경험이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면 전통은 더 이상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은평한옥마을에서 느낀 것은 바로 그 가능성이었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새로운 사례가 더 많아진다면 서울의 오래된 역사 역시 박제된 유산이 아니라 지금도 숨 쉬는 지역의 자산으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주현태 한국금융신문 기자 gun1313@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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