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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이성을 잃은 ‘비만약’ 열풍

양현우 기자

yhw@fntimes.com

기사입력 : 2025-12-29 05:00

▲양현우 기자

▲양현우 기자

[한국금융신문 양현우 기자] “병원에 가니까 마른 사람도 처방해달라면 다 주더라.”

최근 만난 지인의 비만치료제 처방 후기다. 비만치료제는 의사 처방이 있어야 하는 전문의약품(ETC)이다. 하지만 누구나 가서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OTC)이라고 착각할 만큼 처방 기준이 무너졌다.

비만치료제의 처방 기준은 명확하다. 체질량지수(BMI) 30 이상이거나, BMI 27 이상이면서 고혈압·당뇨·고지혈증 등 동반 질환이 있을 경우다. 그러나 현실에선 기준이 무색한 지경이다. 비만이 아닌 사람들까지 미용 목적의 체중 감량을 위해 비만약을 찾고 있다.

국내 포털사이트의 다이어트 카페에는 ‘정상 체중이어도 충분히 처방해준다’, ‘목표 체중을 의사에게 말하면 도움이 된다’는 후기와 팁이 어렵지 않게 보인다. 처방의 문턱이 낮아졌다는 인식이 이미 소비자들 사이에 퍼진 셈이다.

이 같은 열풍의 중심에는 노보 노디스크의 비만치료제 ‘위고비’가 있다. 2022년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체중 감량 비결로 언급한 이후 유명 인사들의 경험담이 잇따르며 주목받았다. 위고비는 2023년 전 세계 매출 6조 원을 넘겼고, 국내에는 지난해 10월 출시됐다.

국내 시장에서도 성장세는 가파르다. 출시 9개월 만에 분기 매출 1000억 원을 돌파했고, 올해 상반기 매출은 2133억 원으로 국내 비만치료제 시장 점유율 82%를 차지했다. 위고비에 이어 지난 9월에는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가 국내 판매를 개시, 경쟁에 불을 붙였다.

비만이 질환으로 분류되는 만큼, 의학적 필요에 따라 약물로 체중을 감량하는 것을 잘못이라고 할 순 없다. 문제는 비만약이 치료 목적을 벗어나 미용과 수익의 수단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남희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위고비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8월까지 만 12세 미만 환자에 대해 69건 처방됐다. 임산부에게 투여가 금지된 약임에도 임신 중 처방 사례가 194건에 달했다.

처방 진료과 역시 비만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곳까지 확산됐다. 심평원의 공급 내역을 보면 정신건강의학과, 산부인과, 이비인후과, 소아청소년과, 비뇨기과, 치과 등에서도 위고비가 처방됐다.

무분별한 처방은 부작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심평원에 따르면 위고비 복용 이후 급성췌장염 151명, 담석증 560명, 담낭염 143명, 급성신부전 63명, 저혈당 44명 등 총 961명이 부작용 의심 증상으로 진료를 받았다.

그럼에도 열풍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 위험의약품 지정 논의, 12세 이상 처방 허용 등 제도적 허점이 수요를 부추기고 있다. 의료 현장에서는 비만약이 수익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소비자들은 ‘쉽고 빠른 다이어트’에 익숙해지고 있다.

비만약이 ‘쉬운 다이어트 수단’이 아닌 치료제로 자리잡기 위해선 의료 현장과 소비자 모두의 자제가 필요하다. 처방의 기준이 다시 작동하고, 약의 목적이 분명해질 때 비만약은 비로소 치료의 이름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양현우 한국금융신문 기자 yhw@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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