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한국금융신문이 단독으로 확보한 녹취 내용에 따르면 조합 직원은 대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현대건설 발의로 위원회를 다시 열게 됐다”며 “찬성하면 사업이 늦어지니 이번에는 반대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또 “기존 회의에서 이미 통과된 사안이니 빨리 일을 진행하려면 반대해야 한다”는 등 표결 방향을 사실상 지시하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는 대의원의 독립적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회유 행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논란이 커지자 조합은 2일 공식 입장문을 내고 사과했다. 황상현 조합장은 “조합원 발의로 소집된 대의원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임시직원을 고용해 전화 안내를 하던 중 실수가 있었다”며 “조합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대의원회 참여를 종용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어 “다시는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철저히 업무를 진행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조합 측 해명에도 불구하고 업계 안팎에서는 “사과로 모든 의혹이 해소되기는 어렵다”는 회의적 시각이 우세하다. 일부 대의원들은 “공사비만 2조가 넘는 사업의 문제된 입찰지침 수정을 반대해 달라고 GS건설은 복숭아 상자를 들고 찾아오고, 조합은 일용직 직원을 고용해서 부결을 종용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이러니까 조합과 시공사 유착설이 도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일부 조합원들은 “전화를 건 직원이 조합이 고용한 임시직원이 아니라 GS건설이 고용한 직원”이라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조합은 100페이지가 넘는 입찰지침을 대의원회에서 충분한 검토 없이 통과시켰다. 해당 지침에는 조합원에게 로열층 분양 약속 시 입찰 무효 처리, 지침 위반 시 조합 결정으로 유효 인정 가능, 무제한 책임준공 의무 부과, 일조권·조망권 시뮬레이션 자료를 조합 지정업체에 사전 제출 등 업계 기준을 벗어난 조항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이 중 일조권·조망권 시뮬레이션 자료를 조합 지정업체에 사전 제출 조항은 성동구청이 직접 개입해 삭제될 정도로 문제시 됐다.
이 같은 상황에 현대건설과 HDC현대산업개발은 지침이 불합리하다며 반발했고, 결국 현장설명회에 불참했다. 입찰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지침이 현 상태로 유지된다면 사실상 GS건설만 단독 참여하는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결국 조합원들은 경쟁입찰을 통한 가장 좋은 조건이 아니라 특정 건설사가 제시하는 수의계약 조건만 손에 쥐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조합이 임시직원을 동원해 대의원에게 표결 방향을 사실상 지시한 것은 단순 실수가 아니라 그동안 제기됐던 특정 건설사와 유착을 드러낸 것”이라며 “공정경쟁이 무너진다면 사실상 수의계약으로 귀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조합이 사과문을 냈지만 근본적인 독소조항과 특정사 유착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며 “서울시와 성동구청이 보다 엄정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권혁기 한국금융신문 기자 khk0204@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