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트렌드에도 불구하고 오래전부터 실용성 상징으로 불리는 ‘해치백’이 국내에서는 좀처럼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기아는 물론,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도 고배를 마셨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일각에서는 한국 소비자들이 ‘자동차=명함’으로 인식하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자동차는 부의 상징이기도 한데, 해치백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인식이 강해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공간성에서 더 뛰어난 SUV 등장으로 해치백은 ‘마니아들 카’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하지만 유럽과 일본 등 주요 자동차 시장은 물론 최근 신흥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인도, 아프리카 등에서 해치백은 여전히 강세다. 현대차·기아도 신흥 시장 공략을 위해 국내에서는 단종된 해치백 모델을 내세울 정도다.
i10은 아프리카 최대 자동차 시장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질주하고 있다. 남아공은 아프리카 자동차 산업 거점이다. 지난해 기준 아프리카 대륙 전체 판매량 약 105만대 중 절반 수준인 약 51만대가 이 나라에서 판매됐다. 자동차 출고량도 전체 약 120만대 중 60만대가 남아공 공장에서 출고됐다.
현대차 남아공 현지화 제품 ‘그랜드 i10’은 소형 차량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현지 소비자들에게 인기다. 이 차량은 I4 자연흡입 엔진에 최고출력 82마력, 최대토크 11.6kg.m 스펙을 가지고 있다. 특히 동급 경쟁차 대비 넓은 실내 공간과 약 19km에 이르는 연비를 앞세워 현지에서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i10은 지난해 남아공에서 총 1만3538대가 판매돼 전체 차종 중 판매 순위 5위를 기록했다. 지난 4월에도 1425대가 판매되며 3월 대비 73% 증가하는 등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인도 시장에서 i10은 ‘국민차’로 불리고 있다. 인도 내수 시장에서 매년 10만대 넘게 팔린다. 지난 2008년 ‘인도 올해의 차'에 선정되기도 했다.
i10 상위 모델 i20도 한국에서는 볼 수 없지만 해치백 본고장 유럽에서 톡톡히 제 몫을 다하고 있다. i20는 가솔린 I3 싱글터보 엔진이 장착됐으며 최고출력 100마력, 최대토크 17.5kg.m을 기록하고 있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에 따르면 현대차는 올해 1분기 유럽 시장에서 총 12만8802대를 판매했다. 이중 i20이 1만6205대 판매되며 투싼(2만9858대), 코나(1만9519대)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특히 스페인에서 선전이 눈에 띈다. i20은 지난달 스페인에서 총 2650대 팔렸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05.4% 증가한 수치다. 4월 스페인 판매 순위도 2위를 기록하며 3월 대비 무려 53계단 상승했다.
현대차가 i10과 i20으로 신흥시장과 유럽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면 기아는 올해 하반기 ‘K4 해치백’으로 북미 시장을 공략한다.
지난 4월 뉴욕 오토쇼에서 처음 공개된 K4 해치백은 K4 편의사양과 스포티한 디자인을 계승하고 넓은 실내 공간을 확보해 실용성을 극대화했다.
K4 해치백은 최대 190마력 1.6리터 터보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 GT라인 전용 스포츠 서스펜션을 적용해 경쾌한 주행 감성을 제공한다. 고급형 트림에는 고속도로 주행보조 2(HDA-2), 회피 조향 보조, 서라운드 뷰 모니터 등 첨단 주행보조시스템이 탑재돼 안전성과 편의성을 높였다.
K4 해치백은 세단 모델과 유사한 전면부 디자인을 공유하지만, 비율은 확연히 다르다. 후면부에는 새로운 블랙 트림 장식이 측면 윈도와 리어 글라스를 시각적으로 연결하며, 와이드 LED 라이트 바와 일체형 스포일러를 통해 독립적 디자인 정체성을 구축했다.
기아는 EX, GT-라인, GT-라인 터보 등 다양한 트림으로 올해 4분기부터 미국 시장에서 K4 해치백 판매를 시작한다.
폭스바겐은 지난 3월 자사 대표 해치백 모델 ‘골프’ 8세대 부분 변경 모델을 국내에 출시했다. 골프는 2005년 폭스바겐코리아 법인 설립 이후 지난해까지 약 19년간 수입 해치백 차량 최초로 누적 판매 5만대를 돌파하기도 했다. 신형 골프가 국내에 출시된 것은 약 3년 만이다.
신형 골프는 EA288 evo 2.0 TDI 엔진을 탑재했다. 두 개 SCR 촉매 변환기를 이용한 ‘트윈도징 테크놀로지’를 통해 이전 세대 대비 엔진 질소산화물(NOx)을 약 80% 저감하고 유럽 최신 배기가스 규제인 유로 6D 기준을 충족했다.
2.0L TDI 엔진과 7단 DSG 변속기의 조합으로 최고 출력은 150마력, 최고토크 36.7㎏.m을 구현했다. 공인 복합연비는 17.3㎞/L(도심 15.2㎞/L, 고속 20.8㎞/L)로 동급 세그먼트 중 최고 수준이다. 폭스바겐에 따르면 신형 골프는 1회 주유만으로 복합 860㎞, 고속 주행 시 1000㎞가량 주행할 수 있다.
틸 셰어 폭스바겐코리아 대표는 “SUV와 세단이 주를 이루는 한국 시장에 새로운 가치를 제공할 것”이라며 “더욱 매력적인 포트폴리오로 한국 고객들에게 최고 선택지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국내 수입차 판매 1위 BMW도 올 하반기 1시리즈 해치백 모델 BMW 120을 국내에 출시할 예정이다. 특히 이번 120 모델은 부분 변경 없이 6년 만에 완전변경 모델로 관심을 받고 있다. 120 모델은 지난 3월 환경부 배출가스 및 소음 인증시스템 절차를 마무리하고 본격 출시 준비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형 120 모델은 1.5리터 3기통 터보 가솔린 엔진을 탑재해 192마력과 최고토크 28.6kg.m을 발휘한다.
스텔란티스코리아 산하 푸조는 지난달 준중형 해치백 308 스마트 하이브리드 모델을 국내 시장에 출시했다. 308이 하이브리드 모델로 국내에 상륙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푸조 308 스마트 하이브리드는 1.2L 퓨어테크 가솔린 엔진, 48V 리튬이온 배터리, 하이브리드 전용 6단 듀얼 클러치 자동변속기(e-DCS6)를 조합했다. 이를 통해 시동·출발 시 전기모터 구동, 회생 제동을 통한 에너지 회수 등으로 효율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김재훈 한국금융신문 기자 rlqm93@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