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삼성전자는 ‘포스트 하만’을 찾기 위한 조직을 정비하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실적 악화에도 자산 유동화 노력 등을 통해 충분한 실탄을 확보한 만큼 올해 M&A 성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전자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회사의 미처리이익잉여금(유보금)은 약 146조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미처리이익잉여금은 순이익 중 배당, 시설투자 등을 제외하고 기업 내부에 남아있는 자금을 뜻한다. 해당 자금은 성장과 재투자에 사용되는 등 기업의 현금 운용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다.
다만 미처리이익잉여금이 역대 최대라는 말은 반대로 그동안 쌓아온 자금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삼성전자는 사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지난해 역대 최대 규모 R&D(연구개발) 비용과 시설투자를 단행했지만, 직접적이고 미래 성장동력 확보 방안인 M&A 시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지난해 말 연결기준 삼성전자 유동자산도 약 227조원으로 최근 3년 중 역대 최대다. 이중 당장 가용할 수 있는 현금 및 현금성 자산도 약 53조원에 이를 만큼 M&A를 위한 실탄은 충분한 편이다.
삼성전자가 조단위 규모 M&A를 실행한 것은 지난 2017년 하만 인수가 마지막이다. 당시 삼성전자는 국내 기업의 해외 기업 M&A 사례 중 역대 최대 규모인 약 9조2000억원을 투자해 하만을 인수했다. 하만은 2023년 인수 이후 첫 영업이익 1조원을 돌파한 이후 지난해에도 영업이익 1조3076억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하는 등 삼성전자의 새로운 캐시카우로 자리 잡았다.
이 밖에도 삼성전자는 2014년 인수한 ‘스마트싱크’를 통해 본격적인 사물인터넷과 가전을 결합한 생태계를 구축했으며 올해 이를 기반으로 ‘홈 AI’ 전략을 가속하고 있다. 또한 2015년 인수한 ‘루프페이’를 통해 ‘삼성페이’를 출시한 바 있다.
다만 이 사례 모두 하만에 버금가는 빅딜은 아니었다.
대형 M&A는 회사 미래 동력 확보와 탄탄한 재무구조를 입증하는 만큼 실적은 물론 주가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지난달 19일 열린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에서도 하만 이후 소식이 없는 대형 M&A 추진 현황에 대한 주주들 목소리도 높았다.
삼성전자는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M&A를 계속 추진해왔지만, 아쉽게도 큰 성과를 내지 못한 게 사실”이라며 “올해는 AI, 반도체, 로봇, 메디테크, 공조 등 분야에서 유의미한 M&A를 추진해 가시적 성과를 보여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가장 최근 인수설이 나타난 곳은 국내 미용 의료기기 업체 ‘클래시스’다. 이 회사는 피부과 전문의 출신 정성재 창업자가 2007년 설립했으며, 초음파 에너지를 피부 진피층에 쏘아 눈썹 리프팅과 얼굴, 복부, 허벅지 피부 탄력을 높이는 의료기기 ‘슈링크’로 M&A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클래시스 인수설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선을 그은 바 있다.
클래시스 외에도 지난해 삼성전자가 추진 중이라고 알려진 독일의 독일 콘디넨탈 전장사업부 인수도 관심이다. 삼성전자 하만이 차량용 오디오, 디지털 콕핏에 강점이 있는 만큼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이 주력인 콘디넨탈 전장사업부 인수가 성사될 경우 시너지가 기대된다. 하지만 해당 사업도 1년째 별다른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가 올해 가시적 M&A 성과를 약속한 만큼 내부적으로 발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DX부문 산하에서 미래 사업 발굴을 위해 설립한 ‘신사업 태스크포스(TF)’를 3년 만에 ‘신사업팀’으로 격상시켰다. 그동안 신사업 TF가 M&A와 미래 사업 발굴을 위한 기본적인 계획을 구상했다면, 신사업팀 격상으로 본격적인 M&A 추진에 나설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미래 성장 동력 발굴을 위해 지속적으로 M&A를 준비해 왔다”면서도 “정확한 추진 현황은 확인해 주기 어렵다”고 전했다.
김재훈 한국금융신문 기자 rlqm93@fntimes.com